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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역을 오래 해왔다. 오랫동안 해왔지만 번역하는 일은 항상 두렵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한참 전, 번역업계에 첫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자신만만했다. 한국말을 영어로 바꾸는 일도,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는 일도, 그 무엇도 쉽지는 않았지만, 애쓰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었다.

퇴근이 가까워졌을 때 상당한 분량의 번역을 들이밀어도 당황스럽지 않았다. 커피와 콜라를 들이부어 카페인과 당을 충전하기만 하면 밤이 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얼마든지 쓰고 또 쓸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말을 옮기는 약간의 기술을 갖고 있을 뿐인 초보 번역가였다.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그런 나를 사로잡은 것이 "번역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세밀한 독서 방법"이라는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의 말이었다. 직접 글도 쓰고 번역도 하는 망구엘의 말이니 세상에서 가장 세밀하게, 그리고 제대로 책을 읽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의 말은 오랫동안 나를 지탱하는 신념이 되었다.

그 무렵, 내가 했던 번역은 자기만족을 위한, 다시 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제대로, 세밀하게 읽기 위한 행위에 가까웠다. 독서는 오랫동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자신 있는 일 중 하나였기에 번역이 책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었다.

보통의 독서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좀 더 과감하고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이 번역이었다. 독서는 작가가 창조한 세계의 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가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는 것에 비유할 만한 일이었다. 반면, 작가의 세계를 철벽같이 지키는 거대한 성문을 과감하게 열어젖힌 다음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탐험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곧 번역이었다.

시간 쌓일수록 자신감이 줄어든다

하지만 내 손으로 타이핑한 글자가 쌓이고, 내가 옮긴 무수히 많은 활자가 엮여서 탄생한 책이 늘어날수록 이상하게 자신감은 줄어들었다.

옮겨진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야 번역은 밑져야 본전 같은 일일 수도 있다. 어차피 이미 완성된 글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뿐이니 내용에 대한 비난은 작가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번역은 잘해야 본전인 일이다. 번역가가 아무리 훌륭하게 번역한들 글이 좋은 건 결국 작가의 공이고, 하나라도 실수가 있으면 번역가가 오역했다는 민원이 빗발친다.

한때 번역은 작가와 나 사이의 내밀한 대화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작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선물 같았던 시간은 언젠가부터 독자들이 내뱉을 날 선 비판을 미리 차단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됐다. 작가와의 대화가 독자와의 전쟁이 되자 일하는 시간이 점점 지루해졌다. 언제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훅과 잽에 대비해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고르는 시간은 더 이상 신나는 독서가 아닌 고행이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번역을 해야 할지 고뇌하는 동료 번역가들에게 정답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됐다는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건지, 영화번역가 황석희는 참으로 적당한 때에 이런 말을 남겼다.

"어떻게 옮겨도 원문에 진다면, 최선의 패배를 하겠다."

유명한 영화를 번역해내고도 오역을 이유로 대역죄인이 된 듯 세상의 비난을 받고,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다음 일을 해내는 그를 보며 내가 번역한 작품이 너무 유명해지지는 않기를 바랐던 내가 문득 비겁하게 느껴졌다.

번역이 이상하다고 온 세상이 조롱하고 떠들어대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또다시 일어서는 그를 보며, 어떤 마음이면 저렇게 도 닦는 사람처럼 덤덤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궁금했었다. 나는 모르고 그는 알았던 중요한 진실은, 번역가가 절대로 작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건 어렵다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인정하며 최선의 패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귀걸이와 귀고리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년)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1675년)
ⓒ 해당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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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가장 세밀한 독서'라고 믿었던 초보 시절부터 번역은 '최선의 패배를 꿈꿔야 하는 일'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게 된 지금까지, 누군가의 말을 정확하게 옮기는 일은 늘 어려웠다. 아무런 맥락 없이 등장한 어색한 문장의 정확한 의미가 이해되지 않아 한참 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참고문헌을 읽는 일이 허다하다.

어디 그뿐일까. 영어로 쓰인 글 곳곳에 숨어 있는 제3의 외국어를 제대로 번역하고 그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해 낯선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찾아 헤매는 일도 다반사였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세계를 또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서른 평짜리 아파트의 짐을 곱게 포장해 다른 집으로 옮기는 일을 넘어설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런 불확실하고 고독한 나의 번역 여정을 항상 말없이 응원해 준 것은 사전이었다.

재미있게도, 초보 시절에는 사실 사전을 뒤질 일이 많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단어가 나오면 별다른 의구심 없이 앞뒤 맥락을 따져 퍼즐을 맞추듯 문장을 완성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사전을 찾는 일이 늘어난다. 정확한 의미와 뉘앙스를 찾기 위해 국어사전을 몇 번이고 파헤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인터넷 용어 사전이나 슬랭 용어 사전까지 뒤지는 시간도 대폭 늘어났다.

생각해보면, 내가 두려운 건 번역이 형편없다는 독자들의 날 선 비판이나 오역으로 뒤범벅된 책이라는 비난성 기사가 아니다. 그보다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최악의 패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부족한 시간을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한 원고를 떠나보내는 순간. 그 순간이 항상 두렵다.

끝도 없이 이어진 낯선 산길을 홀로 걷는 듯한 고독감에 사로잡힌 내게 사전은 언제나 옳은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돼준다. 글을 쓸 때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전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보는 나의 감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너무도 익숙한 그림이어서 그런지 그림보다 그 옆 아홉 글자가 눈에 박혔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아홉 글자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귀걸이'가 표준어인지, '귀고리'가 표준어인지.

물론, '귀걸이'와 '귀고리' 사이에서 의문을 품은 적이 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사전을 뒤졌던 기억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정답은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또다시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정답을 찾는 게 중요했다.

답이 필요할 때 확실한 정답을 알려주는 건 사전밖에 없다. 사전을 뒤지기 전에 먼저 답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정답은 무엇인가? 마음속에 어렴풋이 답이 떠올랐는가? 자,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그 답이 정답이라고 확신하는가? 마음이 갈팡질팡 흔들리는가?

이번에는 다행히 틀린 답이 없었다. 둘 다 정답이다. 사전에 적힌 정의에 의하면, '귀걸이'와 '귀고리'는 모두 '귓불에 다는 장식품'을 뜻한다. 애당초 오답이 없는 문제라니 허탈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번역일을 시작하며 내가 처음 꾸었던 꿈은 원문보다 나은 번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터무니없는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번역은 원문과의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전제를 몰랐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로, 답을 찾으려면 직접 사전을 뒤져봐야 한다. 그 전제를 외면하고 그저 '귀걸이'와 '귀고리' 중 하나만이 정답일 것이라고 믿으면 결코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 삶에 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정답 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겠다. 하지만, 정답과 오답 사이에서 흔들릴 때, 오역이 두려울 때, 진실을 알려주는 사전을 믿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랜 번역일로 찾은 깨달음이다.

덧붙이는 글 | 차후에 기자의 SNS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진주귀고리를한소, #요하네스베르메르, #귀걸이, #귀고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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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사랑하는 번역가. 원작자의 글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다양한 형태의 예술 작품을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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