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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시험이 끝나고 전자기기를 돌려주려고 반에 들렀다가 보고야 말았다. 한 학생이 "대학 못가요!"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학생은 급기야 시험지로 눈물을 닦으며 흐느꼈다.

내가 낸 시험문제였다. 다소 쉬웠던 지난 시험을 의식해 고득점 학생들의 점수는 어느 정도 내리고, 평균은 조금 낮출 계획이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점수가 전체적으로 내려가고 중하위권 학생들도 힘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몇몇 학생이 시험 종료 후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실로 올라가는 길에 시험 이야기를 하는 십여 명 학생들에게 인사 대신 '미안하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결국 교실에서 학생을 울리고 말았다. "미안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달래지도 못한 채 다른 친구들의 위로에 맡겼다.

잠시 후 다시 만났을 때 "미안해"라는 내 말에 "아니요, 제가 공부를 안 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와 눈이 심장에 박혔다. 지금까지 가장 슬픈 모습이었다. 나와 학교가 학생이 화를 참게 하고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게 했다. 밝게 웃던 그를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9등급제를 핑계로 학생들이 모두 잘하기를 바라지 않고, 틀리기를 바라며 문제에 함정을 파놓았다. 비겁하게 '등급 가르기'에 더 신경을 썼다. 그 결과 눈물을 쏟는 학생을 만들었다.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속으로 아팠을 학생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남은 시험 기간에 또 얼마나 많은 학생에게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할까? '학교는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라던 내 말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시험지로 눈물을 훔치는 그를 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과연 나는 선생 자격이 있는가? 제도를 신랄하게 비난하며 나는 그 뒤에 숨어 학생들의 상처를 후벼 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했을까?

시험 다음 날인 오늘 망설이며 교실 문을 열었다. 내일, 모레, 그리고 또 다른 날들에 나는 그들에게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있을까?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즐겁게 맞아주는 그 마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까? 마음 깊이, 무의식의 세계까지 긁혀진 상흔을 보며, 얼굴을 들고 그들을 괴롭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미안합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과연 다른 나라는 어떨까? 지금 교육정책 시행에 가장 책임 큰 교육부가 일부 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교육부는 작년 10월 10일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교육부는 주요국 사례로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 홍콩을 꼽았다.
 
학생들을 극도의 경쟁으로 몰아넣어 교실을 황폐화시키는 내신 9등급제 → 선진화된 5등급제로 개편

전 세계 유일한 상대평가 9등급제를 해외 주요국처럼 5등급 체제로 전환, 학령인구 감소 등 변화를 반영해 학교·과목 유·불리 해소

(교육부 2023년 10월 10일 보도자료, <2028 수능 국·수·탐 선택과목 없이 통합 평가 학업포기 내모는 내신 9등급제, 2025부터 5등급 체제로> 붙임 자료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시안>, 8쪽)
 
"학생들을 극도의 경쟁으로" 몰아넣고 "교실을 황폐시키는" 핵심은 9등급제가 아니라 상대평가에 있다. 교육부는 '황폐화'라는 극한 단어까지 사용했지만, 끝까지 상대평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마치 뜨거운 커피가 담긴 컵을 만지다 손을 데었다고 했더니 새로운 컵에 다시 뜨거운 커피를 담아주는 꼴이다.
  
미국 일부 주,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와 한국의 고등학교 평가 방식을 비교한 표이다.
 미국 일부 주,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와 한국의 고등학교 평가 방식을 비교한 표이다.
ⓒ 김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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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외국 사례로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호주는 고등학교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질까? 위 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18년 12월 보고서 <고교학점제 실행을 위한 교육평가 개선 방안 연구>와 학술지 <교육과정평가연구>에 실린 "고교학점제에서의 학생평가에 대한 국외 사례 연구"를 정리한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보고서는 이명애·박혜영·성경희·변태진·김성혜·김영은·박도영·양길석·임해미가 공동 작성했다. <교육과정평가연구> 23권 2호에 실린 논문은 이명애·김성혜·김영은이 함께 썼다.
 
"모든 사례에서 학점 이수를 위한 과목의 성적 부여는 절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 과목별 평가 방식으로 모든 사례에서 수업 단위 교사별 평가를 실시하고 교사의 평가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애·김성혜·김영은, 2020, "고교학점제에서의 학생평가에 대한 국외 사례 연구", <교육과정평가연구> 23(2), 269쪽)
 
9등급을 5등급으로 낮추고, 교사들이 정규분포에 가까운 학생 성적을 만들어내면 학생들의 '눈물'과 교사의 '미안함'은 사라질까? 누군가는 상위 20%에 들어 1등급을 받고, 다른 누군가는 하위 20%에 속해 5등급이 된다면, 쌓이는 눈물과 죄책감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학생평가 방식도 그에 걸맞게 바꿔야 한다. 학생에게 등수를 매기는 것과 '학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의 사죄는 계속 이어져야겠지만, 교육부는 제도를 통해 교사들의 집단적 죄책감을 덜어주길 바란다.

태그:#고등학교, #학교성적, #9등급제, #상대평가, #절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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