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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대학 시절, 노부부가 조성한 동원장학회에서 받은 350만 원의 장학금이 인생의 터닝포인트 됐다는 남상원 대표는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에게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이 있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대학 시절, 노부부가 조성한 동원장학회에서 받은 350만 원의 장학금이 인생의 터닝포인트 됐다는 남상원 대표는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에게 인생의 이정표를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이 있다.
ⓒ 방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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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래도 대부분은 최소 평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머물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안락함이란 테두리를 박차고 나온 사람이 있다. 바로 사단법인 희망커넥트의 남상원 대표다.

남 대표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 굴지의 유통업계 기업에서 근무했다. 전형적인 일 중독자였던 까닭에 성과 위주의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기도 했다. 

이렇게 세상 부러울 게 없는 그가 마흔을 목전에 둔 지난 2020년 사표를 던졌다. 그 사유도 일반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표준편차에서는 한참 벗어난 엉뚱함이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어른이 될 때까지는 기초생활수급자였습니다. 정말 힘든 시절이었죠. 그런데 어려울 때마다 주변의 도움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 은혜를 갚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냥 후원자냐 전문가냐 고민했는데 전문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탄탄하게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험한 길을 자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남 대표의 결단을 막을 수는 없었다.      

힘든 시절 나중에 이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절실했던 상상 이상으로 성공했으니 다른 길에 도전하는 것도 좋겠다는 남다른 소망이 남 대표의 심장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불장군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면 착한 고집(?)을 끝까지 부릴 수 없었겠지만 남 대표에게는 자신만큼이나 특별한 생각을 가진 아내가 있었다.

"힘들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저만큼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터라 제가 하는 일을 늘 응원해 줬죠. 제가 머뭇거릴 때 아내가 '내가 늦게라도 공무원이 됐으니 당신 먹여 살릴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이래저래 행운아라 생각합니다."

이후 남 대표는 아동 국제구호 NGO에서 활동가에게 필요한 능력을 차곡차곡 쌓았고, 지난해 3월에는 한 번 더 진화해 희망커넥트란 봉사단체를 만들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원 없이 하는 중이다.

남 대표는 후원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투명한 단체를 만드는 게 1단계 목표다. 그리고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훌륭한 직장인으로 자라 사회의 약자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해주길 소망한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자신에게도 경영 마인드를 가진 활동가가 될 것을 항상 주문하고 있다. 

7월부터 희망나침판 사업을 통해 자립준비청년(보로종료아동)의 사회진출을 돕는 일을 계획하고 있는 남상원 대표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기부가 아니라 선행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널리 알리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면서 활짝 웃었다.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했던 한 남자가 얼마나 평균을 벗어난 삶을 살 것인지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뉴스라인에도 실립니다.


태그:#남상원대표, #희망커넥트, #위기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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