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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비를 지원 받아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하는 우리 동네 공동체활동 안내판
▲ 동아리활동 안내판 사업비를 지원 받아 작은 일부터 하나씩 실천하는 우리 동네 공동체활동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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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전북 옥정마을 부녀회 두 번째 동아리활동으로 도토리묵 만드는 날이다. 지난달에는 콩을 갈아 체에 거르고, 콩물 끓이고 간수를 넣어가며 정성을 담아 손두부를 만들었었다. 사 먹는 두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소하고 맛있는 두부를 직접 만들어서 마을 전체 집집마다 고루 나눠먹었다. 그리고 오늘은 올해 두 번째 동아리 놀이마당, 재미나게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마을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엄선된 도토리가루 4kg을 구입했다고 한다. 물론 이번에도 이경희 부녀회장의 진두지휘로 일곱 명의 회원들이 참여하여 일손을 보태며 하하 호호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도토리가루를 물에 타서 끓이기 때문에, 두부 만들기 작업보다는 훨씬 간편하고 덜 요란스러웠다. 지난번 두부를 만들 때 사용했던 커다란 솥이 이번에는 1kg의 도토리가루로 묵을 만드는 최적화된 솥으로 등장했다. 
도토리가루를 물에 개어서 불 위에 올려 센 불에 끓인다. 부드러운 커피라테 색깔이다
 도토리가루를 물에 개어서 불 위에 올려 센 불에 끓인다. 부드러운 커피라테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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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와 물의 비율은 1:6(가루 1, 물 6), 뭉치지 않게 잘 저어서 준비한 물의 색깔이 너무 예쁘다. 부드러운 라테를 똑 닮은 도토리물(도토리가루 1kg) 솥단지에 점화를 했다. 이제부터 쉼 없이 한 방향으로 저어줘야 한다. 

긴 나무주걱이 등장하고 목장갑을 나눠 낀 우리는 순번을 정해 이어달리기를 했다. 아니 '주걱 이어 젓기'를 했다. 혼자서 한다면 무척 힘들 일이겠지만, 여럿이 놀이처럼 주걱을 휘저으니 추임새와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10분쯤 센 불에서 계속 저어주자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죽처럼  응고되기 시작했다. 응고되기 시작하자 솥단지 안의 부드러운 커피라테빛깔은 차츰 진한 카레멜색깔로 변해 간다.

바닥이 눌지 않도록 우리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교대로 주걱질을 했다. 솥바닥을 긁듯이 둥글게, 가운데도 빠짐없이 골고루!  오늘의 묵대장인 부녀회장은 세심하게 불조절도 같이 한다. 물이 끓기 시작한 뒤로도 40분을 더 약불의 솥단지 안에서 노젓기를 하는 일은, 풍랑을 달래며 부드럽게 파도를 타고 넘는 일과 닮아있지 않을까?

응고되어 갈수록 나무주걱을 타고 전해지는 묵직한 묵의 무게, 낚시꾼의 손맛이 이런 것일 거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나는 오늘도 부리나케 다른 일정을 마치고 조금 늦게 합류하여 서툰 손을 보태며 묵 쑤기 체험을 했다.

마지막 10분을 남겨두고 우리의 제사장 부녀회장은 마지막 신의 한 수를 둔다. 고소한 들기름 한 스푼, 천일염 세 꼬집을 솥에 넣고 휘저어 풍미를 높여준다. 도토리향과 갓 짜낸 들기름의 향이 융화되며 번지는 향긋함이 코끝에 날아와 앉는다.

일반적으로 묵을 쑬 때 식용유를 몇 방울 넣는데, 이번엔 더 고소하라고 들기름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 큰 솥에 기름 몇 방울 떨어뜨리자 주걱 돌아가는 느낌이 한결 부드럽다.

마지막 5분을 남기고 불을 완전히 끈 다음 뚜껑을 닫고 뜸을 들인다. 마침내 완성된 묵을 준비한 틀에 조심조심 쏟아부었다. 준비한 틀에 꽉 찬 한 판이 되었다. 묵이 식어서 탱글탱글해지도록 놓아두고 우리는 부녀회장을 도와 점심을 준비했다.
50분 동안 쉼 없이 저어주고 화력을 조절하며 완성된 묵은 1kg의 성형 틀에 쏟아 놓고 식힌다. 시간이 지나면 탱글탱글한 묵이 완성된다.
 50분 동안 쉼 없이 저어주고 화력을 조절하며 완성된 묵은 1kg의 성형 틀에 쏟아 놓고 식힌다. 시간이 지나면 탱글탱글한 묵이 완성된다.
ⓒ 전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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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미리 만들어놓은 묵도 고명과 함께 먹음직스럽게 담아내고, 부녀회장은 이번에도 고소한 콩국수로 점심상을 차렸다. 두부를 만들 때 나온 콩비지에 감자를 갈아 넣고, 애호박을 채 썰어 넣어 지져낸 부침개는 너무 맛있어서 배가 불러도 자꾸만 손이 갔다. 

낭창낭창 탱글거리며 맛있고 향기로운 도토리묵, 꼬숩고 시원한 콩국수, 자꾸만 손이 가는 콩비지감자 부침개, 거기에 아삭아삭 맛있는 김치까지! 완전 건강식인데 맛까지 최고다.

옥정리부녀회 공동으로 건강먹거리 음식점을 차려도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도 수북하게 밥상에 올랐다. 그나저나 우리 동네는 아직까지 마을회관이 없어서 오늘도 이장님 댁에서 이렇게 시끌벅적 요란을 떤다.
 
성형 틀에서 알맞게 굳고 식은 묵을 쏟아 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 묵을 자르며 성형 틀에서 알맞게 굳고 식은 묵을 쏟아 놓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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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고 솜씨 좋고 맘씨까지 좋은 부부가 우리 마을 옥정리의 이장과 부녀회장인 것이 우리 모두의 큰 복이다. 더운 날씨에 제 식구 챙겨 먹이는 일도 귀찮을 텐데, 이렇게 일을 벌여 즐거운 놀이마당을 펼쳐놓고 온 동네 사람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옥정리 이장님과 부녀회장은 요즘 보기 드문 참 고맙고 괜찮은 사람들이다. 

평범하고 작은 시골동네 옥정리! 젊은이들은 다 떠나가고 아이들 웃음소리 끊어진 지 오래지만, 지금부터 우리끼리 마을에 활력을 심어보려 애를 쓴다. 올해 들어 남자회원들과 힘을 합쳐 담가둔 간장과 된장이 항아리 속에서 깊은 맛으로 익어가고, 부녀회원들은 따로 또 같이 이렇게 섬기고 웃으며 사랑을 키워간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공유합니다.


태그:#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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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간 교사로 봉직하고, 2007년 2월말 초등교감으로 명퇴 *시인,수필가 *2014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군산시평생학습관 글쓰기 강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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