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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20분,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은퇴한 내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까닭은 손녀딸을 돌봐줘야 하기 때문이다. 딸과 사위의 직장이 자동차로 40분~50분 걸리는 곳에 있어, 딸과 사위는 늦어도 6시 30분쯤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우리 집에서 딸네 집까지는 자동차로 10분 정도 걸린다. 그러니 5시 2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때쯤은 일어나야 아내와 내가 씻고, 손녀딸 아침 먹을 것 간단히 준비해서 6시 10분쯤에 우리 집을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딸과 사위가 6시 30분쯤에 출근을 할 수 있게 된다.

오전 9시 전후 네 살 난 손녀딸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오후 4시쯤 하원시킨다.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다 보니 주말에 맞이하는 늦잠은 내겐 꿀 같은 보상이다.

힘은 좀 들지만 그래도 손녀딸 돌보는 일은 매우 즐겁다. 손녀딸이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손녀딸 커 가는 걸 보는 게 이즈음 최고의 낙이다. '손주가 자식보다 더 예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조부모인 우리의 돌봄노동이 불가능했다면
 
 손녀딸을 돌보며 문득, 친하게 지내는 주변 사람 중 나만 할아버지인 사실을 깨달았다.
 손녀딸을 돌보며 문득, 친하게 지내는 주변 사람 중 나만 할아버지인 사실을 깨달았다.
ⓒ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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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만일 아내와 내가 손녀딸을 돌보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우리 딸과 사위의 생활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과 사위 둘 다 직장 생활을 계속하려면 도우미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새벽 6시 30분까지 집으로 오는 도우미를 구할 수 있었을까? 또 만약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보수는 얼마나 지불했어야 할까?

가사도우미를 구할 수 없으면, 또 구하더라도 딸과 사위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를 내야 했다면, 둘 중 하나가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해야 했을 터이다.

십중팔구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했을 것이다. 딸의 경력에 단절이 생겼을 것이다. 또 사위 혼자 벌어서는 손녀딸을 키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듯하다. 요즘 아이 키우는 데 돈이 이만저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전문직 고수입이 아니라면 부부 중 한 명이 혼자 벌어서는 아이를 제대로 뒷받침하기 결코 만만치 않은 게 요즘 현실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내와 내가 손녀딸을 돌보아 줄 수 있는 형편인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 딸네 부부와 같은 상황인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돌보아 줄 상황이 아닌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에 처한 젊은 부부들은, 앞서 말했듯이 도우미를 구하거나 부부 중 하나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또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비슷한 연배의 세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할아버지가 된 사람은 나뿐이다. 얘길 들어보면 자녀들이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했더라도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 출산율이 OECD 꼴지, 세계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은 세상이 두루 아는 사실이다. 어떤 학자는 '압축 성장'한 우리나라가 '압축 소멸'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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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경쟁 사회...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그 다음 대비해줘야 

한국은 지금, 단군 이래 가장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운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나라는 풍요롭지만 개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벌어서는 도저히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어서가 아닐까?

부부 둘이 벌어야만 아이를 제대로 양육할 수 있다면 아이를 맡기고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곳이 과연 있기는 한가?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대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을 시사한 가운데 작년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 홍콩(0.77명)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꼴찌에서 2번째'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저출산 대책에 대한 근본적 전환을 시사한 가운데 작년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작년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고, 전 세계에서 홍콩(0.77명)에 근소한 차이로 뒤지는 '꼴찌에서 2번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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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시사 주간지의 기사에서 돈 이외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경우도 보았다. 아이를 낳지 않은 부부에게, 1억 원을 주면 아이를 낳겠냐고 물었더니, 낳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 얼마를 주면 아이를 낳겠냐고 물었더니. 100억 원을 주면 낳겠다고 했다. 단, 아이를 낳아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겠단다. 

그 젊은 부부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데 매력적이지 않다고 했다.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경쟁이 펼쳐지는 사회이고 승자 독식 사회라는 점을 지적했다. 자신들의 아이가 이런 사회 환경 아래에서 자라기를 결코 원치 않기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30년 넘게 재직했던 고등학교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방 소도시의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했는데, 그 고등학교들의 지상 목표는 대학 진학이었다.

학생들은 명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쳐야만 했다. 명문 대학 진학의 열쇠인 내신 성적은 상대 평가 방식으로 평가되었기에 경쟁 상대보다 단 1점이라도 더 받아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협력적인 경험을 할 여지가 없었다. 

대학에 진학한 다음에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취업해서는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 어떤 인간 사회라도 경쟁은 있기 마련이겠으나,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경쟁 사회라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 사회의 이런 점 때문에 젊은 부부들이 아이 낳기를 꺼린다면, 우리 사회의 체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 터이다. 한국의 '압축 소멸'을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그 어디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모두 자신의 눈 바로 앞에 있는 문제가 너무 어렵다보니 거기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경쟁 체제가 고착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단박에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없을 터이다. 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경쟁 체제에서 협력 체제로 서서히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먼저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정치권이 주도하여 우리 사회의 체질을 변화시키자는 담대한 제안을 하고 방안을 마련하고 차근차근 그 방안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압축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나라가 압축 소멸의 재앙에서 영영 벗어나기는 힘들리라는 생각에 몹시 우울해진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모습에서는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추동력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고 무한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경쟁 완화를 지향하는 사회 체제로의 변화를 주도하기를 바라는 건 애당초 언감생심일지도 모른다. 

번영은 번영대로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 정점에서 압축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 그 아이러니를 깰 마땅한 방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소멸의 길로 나날이 침잠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니, 자못 우울하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손녀딸, #소멸,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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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사로 재직 중. 2년을 제외하고 고등학교에서 근무. 교사들이 수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음.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몹시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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