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일주일 식단을 금요일 저녁부터 심사숙고한다. 각자의 선호도에 맞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수라간의 상궁은 이 몸, 글 쓰는 나다. 때문에 이것저것 주문은 받지만 큰 고려대상은 아니다. 최대한 신경 쓰는 부분은 딸아이의 질환. 딸이 아토피라서 최대한 좋은 재료들로 만들어 먹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주일 중 가장 바쁠 때는 주중이 아니라 주말이다. 퇴근 후에 요리하는 것은 '미션 임파써블', 거의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식재료 창고를 열어 보니 아빠가 농사지어 보내주신 오이, 양파, 감자가 있다. 이걸로 무얼 만들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감자와 양파 조림'을 만들기로 했다. 내 취향 내 식대로 하자면 중요한 건 '싱겁고 덜 달게'이지만, 이렇게 하면 가족들 중 아무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살짝 달게 만들기로 했다. 설탕은 비정제 사탕수수 원당과 저염간장, 그리고 올리브 오일 이렇게 세 가지 양념을 베이스로 한 첫 번째 요리에 돌입한다. 감자는 깨끗이 씻어 껍질째 쑹덩쑹덩, 양파도 깍둑깍둑 썰어서 볶았다.
중간에 간을 보니 짠 거 같아서 물을 부었다가 '간장 감자 양파 국'이 될 뻔했다. 다시 물을 조리는 사이 아침에 간단하게 먹을 빵을 만들어야 한다.
물 조리는 사이 빵 만들기... 양파 구출 대작전
내가 가장 쉽게 만드는 빵은 포카치아(이탈리아식 빵)이다. 이미 미리 강력밀가루와 통밀, 이스트를 섞어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만큼만 대충 반죽을 해서 금요일 저녁에 냉장 보관했다. 그러면 적당히 저온 발효되어 그다음 날 아침에 찬기를 빼주고 구워주면 사 먹지 않아도 빵은 뚝딱 만들 수 있다.
집에 넘쳐나는 양파를 쓸 때다. '양파 구출 대작전'의 일환으로 '양파포카치아'로 노선을 살짝 변경한다. 그냥 생양파를 반죽에 넣어도 좋지만 발사믹 식초에 양파를 볶아서 반죽에 넣어 구우면 그냥 먹어도 맛있고, 슬라이스 햄 끼워주면 파리바게트 모닝빵이 안 부러운 포카치아가 완성된다. 바쁜 아침엔 포카치아에 우유 한잔이 최고다.
그리고 발사믹 식초에 볶은 양파 조림을 좀 덜어내어 내가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를 올려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또 별미다.
리코타 치즈는 원래 우유와 생크림 두 가지를 섞어 냄비에 넣고 가열하다가 끓어오르기 직전 식초를 적당량 넣어 덩어리지게 만든 다음 면 보자기에 걸러 수분을 짜주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생크림이 없으므로 우유와 요구르트를 만들고 나온 유청과 값싼 식초만 가지고 만들었다. 이건 요즘 유행인 그릭요구르트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다.
냉장고 야채칸을 보니 시들어가는 오이가 보인다. 오이는 이렇게 저렇게 요리해도 맛있지만 나는 그냥 생으로 먹을 때가 제일 맛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입에 넣기에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위에 모차렐라 치즈 한 덩이 쿰척 올려주고 발사믹 식초 세네 바퀴 휘휘 돌려 뿌린 뒤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얹어 먹는 것. 이렇게 먹으면 내 집이 브런치 식당이 된다. 이래서 밖에 나가 외식을 못 한다.
냉장고 파먹기, 내겐 쉬운 일이지만... 딸에겐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엔 냉동실 정리를 하다 보니 저번에 반죽은 해두고 너무 힘들어 넣어둔 블루베리 머핀 반죽이 보인다. 땅땅하게 얼어있어서 다시 해동시켜 머핀을 만들기까지 내 인내심이 기다려 주질 않는다.
그래서 그냥 몽땅 철판에 철퍼덕 엎는다. 비스코티(이탈리아식 쿠키)를 만들기로 방금 결정했다. 비스코티는 '두 번 굽는다'는 뜻으로, 통째로 한번 굽고 나서 한 김 식힌 후 잘라서 다시 구워 바삭바삭한 식감이 도드라지는 쿠키이다.
말이 쉽지 한번 굽고 나서 자르려니 다 부서지고 난리가 났다. 비스코티 두 번 다시 굽지 않으리라고 결심한다. 그래도 맛은 좋으니 다행이다. 커피에 폭 담가 먹으면, 유명카페에서 굳이 돈 주고 가서 먹지 않아도 될 근사한 맛이다.
고무장갑을 벗은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땀이 차서 잘 벗겨지지도 않았다. 새벽에 러닝머신을 타고 와서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창작 요리가 정오를 넘어가도 끝나지 않는다. 그나마 빵 반죽도 미리 다 해놨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우리 가족 모두 점심은 스킵할 뻔 했다.
감자양파볶음을 밥이랑 줄 수도 있지만, 예전에 만들어둔 통밀포카치아와 곁들여 주니 식구들이 다 고개를 박고 먹어준다. 내게는 이때가 가장 큰 기쁨이다.
'먹는 게 곧 나 자신이라는 말'을 나는 강력하게 믿는다. 가능하면 우리 가족들의 뱃속에 좋은 것만 넣어주고 싶다. 맛이 없고 제멋대로인 내 요리를 맛있다고, 어떤 때는 갓 익힌 컵라면보다 맛있다고 칭찬해 주는 식구들에게 감사하다(내겐 엄청난 칭찬이다).
때로는 싱거워서, 때로는 맛이 조화롭지 않아서. 또 때로는 정체불명의 요리로 가족들이 당황하고 때론 식사를 거부한 적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포기하고 '오늘은 또 뭐야?'라며 궁금해한다. 심지어 내 요리에 입맛이 길들여졌다!(그래도 건강식이잖아, 항변해 본다).
요리하는 건 즐겁다. 내 손으로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는 재료의 조합을 만들어 창작물을 접시에 내어 놓는 기쁨이 크다. 이럴 때면 몸은 고돼도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 토요일,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는 부엌에 붙어있어야 일주일 치 음식이 완성되지만, 하고 나면 뿌듯하고 든든하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마지막에 딸에게는 이렇게 조언을 해준 뒤에 소파에 드러눕는다.
"딸, 근데 너는 돈 많이 벌어서 꼭 사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