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역 근처 모임공간에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2025년도 R&D예산과 관련한 간담회가 열렸다.
우리 회사는 '물, 대기환경 경쟁력 강화를 위한 주요 기자재 국산화 기술개발사업'의 7개 과제 중 수처리 광촉매 관련사업으로 올해 2차년도 과제를 수행중이다. 해당 과제는 컨소시엄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우리 회사 포함한 총 4개 기관이 함께 하고 있다. 내년도 R&D예산이 증액된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던 터라 은근 기대감을 갖고 간담회에 참석했지만, 현장에서 접한 소식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간담회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위에 언급한 7개 과제의 내년도 예산은 총 110억 원인데 과기부를 통해 최종 승인된 예산은 11.96억 원임.
2. 7개 과제 전체가 구조조정을 하든지 아니면 일부 과제만이라도 제대로 된 예산으로 진행할지 선택해야 되는 상황.
3. 기업들은 2024년도 중단, 2025년도 조기종료 또는 중간평가 후 기존 예산의 30%의 예산으로 과제계속 중 선택해야 함.
이날 현장 간담회에 참여한 기업들은 너무 당황하여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있어, 내부적으로 의논을 해봐야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단할 경우 종전과 같이 기업에 부과되는 패널티 여부가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여기며 확인하였다.
이 자리를 주최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사무관은 "예산확보를 위해 과기부에 적극적인 어필을 했음에도 워낙 강경했고 다른 부처의 예산 자체가 삭감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고집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라며 "올해 예산이 삭감되었음에도 현장에서 어렵게 진행해주신 내용들을 알고 있어서 너무 죄송하다.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라 예산 삭감의 체감폭이 크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셔서 어떻게 결론을 내실지 의논을 부탁드린다. 올해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해도 기업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과제중단이란 초유의 사태... 너무 두렵다
간담회 다음날 우리 컨소시엄의 네 기업은 서울대학교에 모여 자체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우리와 IT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는 올해 중단, 총괄주관과 서울대학교는 2025년도 조기종료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과제 내용으로 보자면, 연구된 광촉매의 레시피대로 올해 생산을 시작하고 테스트 베드에 올렸어야 하는 단계였는데... 거의 시작 단계에서 중단하게 되는 것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예산이 보존된 R&D 분야는 윤석열 정부가 새롭게 발표한 '12대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것으로 환경분야는 거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문제는 환경기술은 당장에는 표가 안 나지만 첨단기술 못지않게 국가주도로 기술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이며 투자되지 않은 부작용은 모두 미래세대가 감당할 몫으로 넘어간다는 데 있다. 국가의 지속가능성은 경제성과 수익성 뿐만아니라 지속가능한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간다면 국가의 기술개발 정책과 방향은 긴 호흡으로 세계적 추세와 흐름에 맞게 설정되어야 하고 이렇게 설정된 정책과 방향은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바뀌어선 안 된다. 기술개발이란 한 해, 두 해에 결론이 나고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최종 목표에 다다르게 진행해 가는 것이 기술개발의 기본이다. 계획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누적된 기술이 없어서 결국에는 기술격차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과제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손해보단, 이렇게 중단되어버린 기술개발로 인해 미래에 우리가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될까 걱정스럽고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