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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드 호수 한쪽 높이 100m  절벽위에는 블레드 성이 있고 성에서 내려다보는 블레드 호수와 시가지 모습은 절경이다
 블레드 호수 한쪽 높이 100m 절벽위에는 블레드 성이 있고 성에서 내려다보는 블레드 호수와 시가지 모습은 절경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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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부터 7월 4일까지 발칸반도를 여행했다(관련 기사: 실제 커플이 이별 뒤 만든 '실연박물관'이 있답니다 https://omn.kr/29f1f ).
   
발칸반도를 여행하면서 '슬라브~'라는 이름이 들어간 국가명 때문에 헷갈리는 게 많았다.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유고슬라비아?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왜 그렇게 복잡한지, 또 왜 그렇게 서로들 물고 뜯으며 싸우는지가 궁금했다. 

과문한 탓일까? 그래도 전 유럽을 거의 다 돌아본 필자가 이렇게 헷갈리는 데 처음 가본 분들은 오죽할까? 해서 여러 자료를 모아 '슬라브~'가 들어가는 국가들과 종교들을 검색해 보았다. 

슬라브족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말을 쓴다. 슬라브족은 세 부류로 나뉜단다. 

동슬라브족 – 주로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 
서슬라브족 – 주로 폴란드인·체크인·슬로바키아인 및 벤드인 또는 소르비아인 
남슬라브족 – 주로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마케도니아인·불가리아인 


종교면에서 슬라브인은 전통적으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진다. 

동방정교회 –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세르비아인 및 마케도니아인 
로마가톨릭 – 폴란드인, 체크인,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및 우크라이나인 일부와 대부분의 벨라루스인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조각가 야코프 조각상 옆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 모습.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조각가 야코프 조각상 옆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관광객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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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슬라브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가 연합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탄생시켰다. 유고슬라비아는 한국어로 '남 슬라브인의 땅'이란 뜻이다.

1941년 나치의 유고 침공으로 멸망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르티잔 운동의 주역으로 두각을 나타낸 정치가 티토(1892~1980) 주도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재탄생(1948년)한다. 

티토는 냉전 상황에서 밖으로는 실리를 챙기는 실리외교를 펼쳤고 내부적으로는 각 민족들이 화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다음은 티토가 유고슬라비아를 출범하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누구도 누가 세르비아 사람인지, 크로아티아 사람인지, 혹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인지 또는 정교회나 카톨릭을 믿는 사람인지 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유고슬라비아 없이는 힘 있고 행복한 크로아티아도 없다. 우리가 통합하지 않고는 어떤 공화국도 홀로 설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일 유고슬라비아의 역사를 세워야 하고 또 미래에도 그래야만 한다."
   
덕분에 유고슬라비아는 번영을 누리지만 이 상황은 오로지 티토의 능력과 명성만으로 지탱되는 것이었기에 1980년 티토가 죽자 유고슬라비아는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동유럽 혁명으로 공산당마저 무너지자 유고슬라비아 내 민족 갈등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1990년 자유 총선에서 공산당은 완패했고 민족주의 정당들이 각 구성국들의 의회를 독차지했으며, 보스니아는 누구도 과반의석을 차지하지 못해서 2년 동안 내각을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고 세르비아가 이를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한다. 10년에 걸친 참혹한 전쟁은 끝내 유고슬라비아를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전쟁 결과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가 독립했고, 코소보는 NATO의 개입으로 세르비아군이 물러나고 UN의 관리를 받았다. 

휴양지로 각광받은 '블레드'... 김일성이 2주나 머물렀다는 곳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돌아본 일행이 슬로베니아의 크란에서 1박 한 후 방문한 곳은 율리안 알프스의 보석으로 불리는 블레드. 안내서에 따르면, 알프스 서쪽 작은 마을 블레드는 인구 6천 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싱그러운 자연경관으로 '율리안 알프스의 보석'이라고 불린다. 

1855년 스위스 출신의 의사 아놀드 리클 리가 요양소를 운영하면서 유럽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고 골프, 스키, 하이킹, 온천을 즐기기에 최적인 곳이다. 1937년에 개설된 골프장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유럽 최고의 필드와 경관을 자랑한다.
  
 블레드 호숫가에 있는 티토별장 모습.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었다.
 블레드 호숫가에 있는 티토별장 모습. 지금은 호텔로 개조되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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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레드 섬으로 가는 방법은 베네치아 곤돌라처럼 생긴 플래트너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플래트너를 운전하는 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블레드 섬으로 가는 방법은 베네치아 곤돌라처럼 생긴 플래트너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플래트너를 운전하는 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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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곤돌라와 비슷한 플래트너 선착장 인근에는 구 유고연방 대통령 '티토 별장'이 있다. 지금은 호텔이 되어버린 티토별장을, 과거 김일성이 방문한 적이 있었단다. 그는 블레드의 아름다움에 반해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도 2주나 더 머물렀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동방정책을 펼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독일의 빌리브란트, 영국의 찰스 왕세자, 요르단 후세인 국왕, 인디라 간디, 비비안리 같은 유명인들도 이곳을 찾았다.
    
 '율리안 알프스의 보석'이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 모습
 '율리안 알프스의 보석'이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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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보기에도 환상적이었다.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블레드 호수는 슬로베니아 최고 관광명소다. 길이 2120m, 폭 1380m, 수심 30m이며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짙은 옥색을 띠고 있다. 호수 북쪽에는 온천수가 솟아 봄부터 가을까지 수영할 수 있다. 

또한 절벽 위에는 블레드 성이 있고 호수 한가운데는 블레드 섬이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 나룻배 플래트너가 한가롭게 떠다니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블레드 호숫가 약 100m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는 1004년 브릭센 대주교가 독일 황제 헨리크 2세에게서 블레드 지역을 하사 받아 짓기 시작해 18세기에 지금 모습을 갖추었다. 블레드 관광을 마친 일행의 다음 행선지는 슬로베니아 수도인 류블랴나다. 

다음은 슬로베니아 건국 신화 내용이다.
 
"옛날 옛적에 그리스 왕자 아존은 임금님에게서 아티라는 황금깃털을 훔쳐 바다로 달아났다가 도나우 강에서 사바로, 사바에서 다시 류블랴나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이때 그는 엄청난 괴물을 만나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게 됐는데 그 괴물이 바로 류블랴나의 용이었다. 아존은 용을 물리쳐 성에 가두고 승리를 기념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류블랴나의 건국신화에서 아존은 류블랴나의 창시자로 등장하고 이때부터 용은 류블랴나의 상징이 되었다." 

보든코브 광장 근처에 있는 용의 다리는 원래 1901년 '푸줏간의 다리'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목조다리였으나 이후 아르누보 양식으로 다시 건축되었다. 늠름한 4마리 용이 다리의 각 귀퉁이에 앉아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날개부터 꼬리까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생동감 넘치는 류블랴나 거리, 그러나 전쟁의 그림자도

류블랴나는 슬로베니아의 수도이다. 사방이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인 전원도시일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대학도시로 발달해 젊은이들로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 민족시인 프레셰렌 동상은 언제나 그의 연인 유리아를 바라보고 있고 동상 뒤로는 류블랴니차 강이 흐른다.

류블랴니차 강변카페 인근 도로에는 과일나무 형상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길이 약 50㎝로 맨 아랫부분 뭉툭한 씨앗 부분은 어른이 두 손바닥으로 감싸 안을 정도의 크기이고 씨앗의 끝부분에는 새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니차 강변 카페 인근 도로에서 본 조각상 모습. 군복무시절 죽을뻔했던 트라우마 때문일까? 내눈에는 포탄으로 보였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니차 강변 카페 인근 도로에서 본 조각상 모습. 군복무시절 죽을뻔했던 트라우마 때문일까? 내눈에는 포탄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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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손을 잡고 지나가던 여자아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만져보고 있었지만 어른들은 무관심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과일나무 형상이 포탄으로 보였고 수많은 내전을 겪은 발칸반도 역사가 떠올랐다. 

왜 포탄이 떠올랐을까. 나는 1976년 강원도 화천 인근 부대 수색중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우리 분대가 담당한 일은 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6.25 전사에 의하면 부대가 주둔한 지역은 북진하던 유엔군이 인민군의 기습작전에 걸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때문에 삽으로 땅을 파다 보면 녹슨 미군 야전잠바의 쟈크가 나오기도 하고 미군 군번줄이나 허벅지뼈(!)를 발견하기도 했었다. 

분대원들은 선임하사의 지시로 지름이 약 4~5미터, 깊이 약 60센티미터 정도의 웅덩이를 파 부대에서 나온 쓰레기에 불을 붙이기 직전이었다. 그때였다. 선임하사가 다시 돌아와 "야, 이 새끼들 봐라? 쓰레기 다시 걷고 1미터 정도 깊이로 땅을 파서 소각해!"라 한다. 군대는 소위, '까라면 까야'한다. 

분대원들은 구시렁거리며 웅덩이에 모아놓은 쓰레기를 걷어내고 다시 삽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분대원의 삽 끝이 안 들어가고 뭔가 쇠붙이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상하게 여겨 파보니 녹슬었지만 어른 팔뚝만 한 80미리 박격포 불발탄이었다. 분대원들은 모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선임하사 명령을 듣지 않고 쓰레기에 바로 불을 붙였더라면? 가정이긴 하나, 분대원들은 뼈도 못 찾았을지도 몰랐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민족주의와 종교의 차이를 내세우며 폭압과 학살에 시달린 사람들은, 요즘 들어 티토를 재평가하고 있기도 하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발칸반도국가를 여행하면서 내 눈에 보인 현지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보였다. 외관상 차이가 없었다.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 민족시인 '프레셰렌' 이 그의 연인이었던 '유리아'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세워진 광장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 민족시인 '프레셰렌' 이 그의 연인이었던 '유리아'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세워진 광장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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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베니아 건국신화에서는 '아존'이 괴물인 용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때문인지 슬로베니아 관광지에서는 용을 상징하는 조각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슬로베니아 건국신화에서는 '아존'이 괴물인 용을 물리쳤다는 내용이 나온다. 때문인지 슬로베니아 관광지에서는 용을 상징하는 조각들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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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에선 아담과 하와가 인류 최초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후손에서 후손으로 내려간 후대의 사람들에게 타민족은 무엇이며, 사랑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종교가 타 종교를 말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편협한 정치가들의 권력욕이 평민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몰아치고 있는 건 아닐까. 눈앞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슬로베니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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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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