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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시끄럽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새로 임명된 이충상, 김용원 상임위원이 인권단체와 언론들을 상대로 막말을 일삼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인권위 전현직 직원들이 두 상임위원에 대해 보고 들은 내용을 익명으로 보내와 몇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은 인권기준에 맞게 지명권을 행사하라!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인권감수성과 경험을 가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인권·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은 인권기준에 맞게 지명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은 인권기준에 맞게 지명권을 행사하라!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인권감수성과 경험을 가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인권·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은 인권기준에 맞게 지명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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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임기를 마치는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의 후임 후보자들이 추천되었다. 인권위 직원들은 이충상, 김용원 위원이 추천되지 않은 것에 일단 안도하면서, 새로운 위원장에 대한 기대를 한다. 최근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경험칙상 인권위원들은 인권위 오기 전과 온 이후가 달랐다. 이전에는 인권에 대해 별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인권위에 적대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이후 긍정적으로 바뀐 경우를 많이 봐왔다.

현병철 위원장은 임명된 직후 자신이 인권문외한임을 스스로 인정했었을 만큼 인권과 거리가 멀었다. 전원위원회에서 용산참사 가해 경찰관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던 재판부에 제출할 의견을 심의할 때,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라며 의결을 막기도 했었다. 하지만 연임을 거쳐 두 번째 임기 후반부에는 전원위원회에서 '인권 발전의 역사는 노동인권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명언을 남겨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산 증인으로 두고 두고 회자되었다.

소위 뉴라이트 출신으로 상임위원으로 온 어떤 이는, 직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인권위가 너무 나대니까 불을 끄러 왔다"라고 자신의 자리매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인권위가 인권침해 운운하면서 기존의 법이나 제도 등 질서를 바꾸라고 하니 꼴불견이라는, 보수 세력의 인권위에 대한 인식의 단초를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던 사람도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누구보다 앞장서 많은 권고 결정을 이끌어 내었다.

직접 접하면 외면할 수 없는 '인권'

이들이 인권위에 와서 이렇게 바뀐 데에는 인권이라는 가치가 원래 탄생 배경에서부터 보수적 이념과 친하다는 사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의 키워드를 '자유'로 잡았듯이 보수주의자들은 자유라는 가치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그런데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목록에도 자유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보수주의자들이 자유를 빙자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게 아니라면, 국민들의 인권보장에 앞장서는 게 당연하다.

또 밖에서 볼 때는 막연히 '인권위가 이념적으로 편향된 행보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막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권위 업무의 대부분이 평범한 일반시민들이 겪는 인권문제라는 점이 변화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구치소에서 의료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용자가 사망한 경우나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장시간 결박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인권위원으로서는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당연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 중인 외국인이 일명 새우꺾기 고문을 당한 경우나 군 복무 중인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전역을 당한 경우에도, 인권위원으로서는 자신의 이념성향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인권이 침해된 현실을 목도하면 인권위 조사와 조치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든 인권은 서로 나눌 수 없는 한 덩어리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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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보수세력은 인권과 인권위를 진보세력이 독점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인권위가 설립되었고, 시민단체들의 명동성당 농성 등의 투쟁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만들어져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인권은 자유주의 체제의 핵심가치였다.

인권은 인간의 오류를 인정하는 겸손의 철학에 기초하여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가치이므로 특정 이념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이유로 4대 안경환 위원장의 인권위 경험을 담은 책의 제목은 <좌우지간 인권이다>였고, 송두환 위원장 역시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닌, 인류 문명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계인권선언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은 국제사회가 다시는 전쟁의 야만을 겪지 말자고 합의해 탄생한 역사적 기록이다. 이 선언의 탄생 과정에 자유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간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선언의 기초위원회는 미국, 호주, 프랑스 뿐만 아니라 소련, 중국 등 다양한 국가가 참여했다. 이런 논의 끝에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것이다.

46년 뒤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는 171개국의 정부 대표와 수천 명의 인권옹호자들이 모였다. 세계인권대회가 열린 가장 큰 계기는 냉전의 종식과 관련 있었다. 그 곳에 모인 인권옹호자들은 전문 및 총 17조로 된 비엔나 선언과 행동프로그램을 채택한다.

모든 인권은 서로 나눌 수 없는 한 덩어리이고(불가분), 모든 권리들이 서로 기대어 있으며(상호의존), 모든 권리들이 서로 연결된다(상호연관)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또한 민주주의, 발전, 인권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자유로서의 발전' 원칙도 이때 나왔다. 즉, 좌와 우로 세계를 나누는 낡은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인 것이다. 최근 '좌파의 해방구' 운운하며 냉전적 시각을 드러낸 김용원 위원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인권위 23년의 의미, 그리고 미래

인권위가 설립된 지 23년이 되어간다. 인권위 역사를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같이 소위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핍박을 받고 어려움에 처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조직의 21%가 강제로 축소되었고 공직사회에서는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면 (정권으로부터) 찍힌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의 태도는 인권을 핵심적 가치로 삼고 있는 보수정치철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현 정부가 권력의 남용과 전횡을 일삼았던 군사독재의 정치철학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보수의 정신을 실천하고, 평등과 연대의 정신을 아우를 수 있는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을 임명해야 한다.

인권위가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과 연대의 정신과 인간의 존엄을 전파하는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중심에는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권고한 국제인권규범의 국내이행이라는 시대적 과제 실천이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민주공화국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철학"의 핵심은 바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기초로 한 인간존엄성의 추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인권위 전현직 직원들이 함께 쓰는 기고를 마치려 한다. 이충상, 김용원 두 위원으로 인해 인권위에 실망한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한 두 사람의 돌출된 행동으로 평가 받아서는 안된다. 인권위는 위원장의 것도, 몇 몇 인권위원의 것도, 직원들의 것도 아니다. 사회 내 필요에 의해, 또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호소가 끝나지 않는 한 인권위는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긴 여정에 함께한 우리 직원들은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 인권위가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들의 노동으로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다. 새로운 위원장으로의 교체 시기, 다시 새롭게 나아가는 인권위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인권위#보수정권#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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