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양보호구역 파란 탐사대(이하 '탐사대')는 하추자도 신양항 서남쪽의 석두청산 해안에서 바닷물이 빠져나간 조간대를 걸어다니며 물이 고인 웅덩이에 사는 다양한 생물을 기록하고 있었다.
"넓패다. 제주에서는 이제 못 보는 거다. 야~ 이게 살아있네."
추자도 탐사에 동행한 고광민 제주 생활사 연구자의 기쁨 어린 목소리를 들은 탐사대가 연구자 주위로 모여 섰다. 넓패란 이름을 지닌 암갈색 해조류를 모두 처음 본다고 했다. 매끈한 표면에 댕기 모양으로 갈래를 이룬 넓패는 바위에 개체군을 이루거나 패의 식물체에 붙어 산다. 예로부터 조간대 바위를 풍성하게 뒤덮었던 넓패였지만 연안이 오염되면서 이제는 제주도에서 보기 힘들어진 현실도 연구자의 말을 듣고 처음 알게 됐다.
추자도는 쓰시마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해수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지 않아 생물다양성이 높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바위가 발달한 연안이 많아 해조류가 무성하고, 제주도와 남해안의 특성을 모두 지닌 섬,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구성된 추자도는 기후변화를 알 수 있는 지표종 생물들의 북쪽 이동을 조사하는 데 중요한 지역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생물권보전지역은 서로 연관되어 있는 3개의 지역을 핵심, 완충, 협력구역으로 구분하는데, 추자도에서 해양 핵심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천연잘피 군락지가 있다.
멸종위기 근접종 '수거머리말'을 만나다
제주에서 추자도 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천연잘피, 수거머리말과 포기거머리말이 자생하는 예초리(0.69㎢)와 영흥리(0.49㎢) 주변 해역은 지난 2015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해양보호생물인 천연잘피 서식지와 정착성 회유성·어류의 성육장을 체계적으로 보전·관리하기 위해서다.
"영흥리에는 잘피가 많아요. 해녀들이 잘피숲에서 작업해서 잘 알아요."
추자도에서 다이빙 가게를 운영하는 주민의 말을 듣고 난 후 탐사대는 수중 탐사를 위해 영흥리 앞바다로 향했다.
다이빙 장비를 갖추고 수심 4m 정도 내려가자, 바다풀이 눈에 들어왔다. 온도는 19도, 혼탁한 시야 속 모래밭 위로 잘피숲이 조류에 따라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갈색으로 변한 거머리말 잎들을 보며 조금 더 앞쪽으로 나가 보니, 잎의 길이가 좀 더 길고 가늘며 리본 같은 잘피들이 수면에 맞추어 허리를 낮추고 물결을 따라 앞뒤로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탐사대원 중 한 명이 잘피잎을 팔에 갖다 대어 재어보니 남자 어른의 두 팔 길이보다 길었다.
잘피숲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를 장기간 저장하는데, 이는 기후변화를 억제하는 아마존 밀림의 탄소 흡수 역할과 유사하다. 잘피숲의 탄소 흡수 속도는 아마존 밀림보다 50배 빠르며, 저장 능력도 5배 이상 뛰어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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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거리말 군락 수거리말 군락은 어린 물살이에게 먹이와 숨을 곳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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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탐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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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피잎 위에는 작은 물고기알들이 붙어있었고, 검은색 줄무늬가 멋들어진 베도라치 한 마리가 나와 눈을 맞추며 지나갔다. 잘피숲은 정착성, 회유성 어류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기도 하고 거북이, 숭어, 독가시치 같은 물고기의 먹이가 되기도 하여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이러한 잘피숲의 기능은 자연이 본래 지닌 능력과 기능을 활용하여 사회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연기반 해법의 중요한 일환으로 주목받고 있다.
추자도에는 거머리말 속 잘피인 거머리말, 수거머리말 그리고 포기거머리말 3종이 출현하는데 모두 해양 보호 생물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수거머리말은 '멸종 위기 근접종', 포기거머리말은 '멸종 취약종'으로 분류되어 멸종위기 적색 범주에 속한다. 특히, 포기거머리말과 수거머리말은 한국, 일본, 중국에서만 발견되는 생물종이다.
해양생태계 종합조사에서 누락된 추자 해양보호구역 잘피 군락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해양수산부가 해양환경공단에 국가해양생태계 종합조사를 맡겨 전반적인 과학적 기초자료를 생산한다. 그런데 추자도 해양보호구역 내 잘피 서식지 변화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15년부터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던 해양보호구역 조사 관찰 사업 등이 전국의 연안과 갯벌 생태계를 조사하는 '국가 해양생태계 종합조사'로 통합되어 2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잘피가 속한 해초류를 암반 생태계 조사에 일괄 포함하는 것이 문제다. 현재 추자도 해초류의 국가 해양생태계 종합조사 지점은 대서리 다무래미 주변 암반 지역이다. 우리나라 동해안 해초류는 단단한 암반에 뿌리를 내려서 경성지반에 서식하는 반면, 추자도에 서식하는 거머리말, 수거머리말, 포기거머리말은 모래와 부드러운 퇴적물이 있는 연성지반에서 서식한다. 이러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조사했기 때문에 해양생태계 종합조사에 추자도 해양 구역 내 잘피의 서식지(영흥리, 예초리) 변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예초리 잘피 서식지에 작년에 다녀왔는데, 재작년과는 다르게 깜짝 놀랄 만큼 밑둥만 남아있었어요."
추자도 다이브 가게 주인은 지난해 예초리 보호구역에 들어갔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예초리 잘피군락 서식 면적 기록과 변화에 대한 기록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수중생태기술연구소에서 진행한 해양보호구역 내 잘피 서식지 면적조사에 의하면 영흥리 북측의 기존 수거머리말 군락(6417㎡)지는 확인되지 않아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원인도 파악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예초리 잘피 서식지는 어촌계 주민의 반대로 모니터링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추자도 해양보호구역 지정 이후 잘피 서식지의 변화는 일관되지 않고, 산발적인 조사로만 드러나고 있다. 해양보호구역 지정 후 일부 서식지는 확대된 곳도 있었지만, 일부 수거머리말 서식지는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온 것인지, 변화 원인을 파악하고 복원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육상 탐사는 추자항 동남쪽 해안인 영흥리 주변 해역을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는 소공원에서 시작되었다. 소공원에는 잘피 보호구역 표지판이 있었지만, 보호구역 해상에는 가두리가 보였다. 추자도 면사무소에 확인해 보니 활어 보관 시설이라고 했다. 다른 쪽 해상에는 바지선이 떠 있었고, 추자교 부근에는 꽤 큰 규모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을 것 같은 접안 시설과 정박 중인 바지선이 있었다. 드론을 띄워 확인해 보니, 수면 위에 떠 있는 가두리에는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보였다.
접안시설과 바지선이 정박하고 있는 추자교 부근으로 더 가까이 가 보았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한국전력 발전소와 추자 쉼터라 불리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 근처에는 굴착기가 멈춰 서 있었고, 공사 장비와 자재들이 쌓여 있었다. 바지선 옆에 주황색 부이가 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오염 물질과 부유 토사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에 대처한 조치겠거니 하고 가까이 가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해상에 설치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둘러놓았던 부이가 바지선 옆에 걸려있었다. 공사에 대비한 조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해 보였다. 만약의 사고로 선박 기름이 유출되거나 대량의 부유토사가 생성될 경우 인근 잘피 서식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됐다. 추자교 옆으로 올레길 관광객을 위한 인도교를 만드는 중이라는 팻말들이 여기저기 보였으나, 해양보호구역임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없었다.
예초항의 상황도 비슷했다. 해양보호구역 안내판은 사진이 떨어져 있고, 주위에는 폐자재와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보호받아야 할 바다였지만, 보호의 손길을 찾기는 어려웠다.
생태계 보호 사각지대를 초래하는 법령
해양보호구역에서 공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양보호구역 내에서는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해양생태계법)에 따라 해양 생물을 포획, 채취, 이식, 훼손하는 행위, 인공 구조물의 건축이 금지되어 있다. 또한 소리, 빛, 진동, 악취 등으로 해양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보호 생물의 산란지 및 서식지를 훼손하는 행위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해양생태계법 제27조 제1항 단서 규정에 따르면, 특정 조건에서는 예외가 허용되기도 한다. 군사 목적, 기존 영농 및 영어 행위의 지속, 학술적 조사 연구 그리고 다른 법령에 따른 관계 행정기관의 개발 행위 등이 예외 조건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지역에 항만법에 의한 해안 도로나 항만의 건설 혹은 확장, 도서개발 촉진법에 의한 도서 종합 개발 계획 혹은 자연공원법에 의한 공원 구역이나 문화재보호법 등이 진행되는 경우, 다른 법령들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법이 중복으로 적용되는 상황에서 해양생태계 보호에 덜 엄격한 규제가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더라도 추가 규제는 없다. 해당 지역이 여전히 그 국가의 주권과 법률을 따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실제적인 규제의 완화는 생태계 보호에 있어 사각지대를 만든다.
현재 제4차 항만기본계획에 따라 대서리 추자항 파제제 연장과 앞으로 예초항 개발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 추자대교에 인도교 시설 및 수변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개발들이 추자도 잘피 서식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필요하다.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고 할 때, 보호조치를 제대로 시행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멸종위기에 놓인 해양 생물들의 생태계는 심각한 위협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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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임·
박재영·
손민호(2012). 제주도와 추자도에 자생하는 잘피의 분포 현황. 환경생물, 30(4), 339-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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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 (2021). 추자도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 제 2차 관리기본계획 2022-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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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 해양환경공단. (2018, 2020, 2022). 국가해양생태계 종합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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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CN World Commission on Protected Areas. (2023). The MPA Guide User Manual, version 1.
덧붙이는 글 | 제주투데이에 중복투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