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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전통시장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해방 직후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60년대 들어서면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되면서 지역사회의 중요한 경제적· 사회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그리고 2000년대 초반부터 급성장한 온라인 쇼핑의 영향으로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전통시장은 시설이 낙후해 위생 문제, 주차 공간의 부족 등으로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주었으며, 현대화된 유통 시스템과 대규모 할인 판매를 하는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더구나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소비자들은 편리함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한 온라인 쇼핑을 선호하게 되면서 전통시장의 고객층은 줄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와 지자체는 전통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였으나 초기 단계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지역축제, 문화행사, 먹거리 골목 조성, 청년창업 프로그램, 온라인 판매채널, 모바일 결제 도입 등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적극적인 정책을 통해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레트로 감성을 갖고 있는 MZ세대들의 전통시장에 대한 관심 증가와 K-팝, K-드라마, K-미용, K-음식이라는 한류 열풍과 더불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통시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매력적인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서울의 광장시장, 남대문 시장, 통인시장 등은 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의 전통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운영방안이 필요하다. 오늘날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식료품 시장 중 하나이자,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된 보로우 마켓도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보로우 마켓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보자.

런던의 보로우 마켓

보로우 마켓은 런던에서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 13세기경에 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농산물, 고기, 어패류 등이 거래되는 길거리 시장이었다. 17세기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시장들도 재정비 되었고, 보로우 마켓은 현재 위치인 런던 브리지 주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 기간 보로우 마켓은 런던의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을 받았다. 시장은 현대화 되면서 더욱 확장되었고, 다양한 식료품과 산업용 제품들이 거래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런던이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을 하는 동안 런던 시민들의 식료품 수요를 충당하는 중요한 도매 시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서면서 영국 내 대형 유통업체와 슈퍼마켓 체인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소규모 도매시장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들은 더 효율적인 유통망과 대규모 구매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 편리하고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슈퍼마켓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통적인 도매시장의 역할은 축소되었다. 또한 런던의 도시개발과 교통체계의 변화로 교통 체증과 주차 문제 등으로 보로우 마켓의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방문객 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보로우 마켓 재개발 사업과 신탁 설립

1990년대 후반,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하고 경제적 성장을 촉진하려는 토니 블레어 정부의 도시재생 정책이 시작되면서 보로우 마켓과 그 주변지역이 재개발되기 시작했다.

런던시와 보로우 마켓이 위치한 사우스워크 구(London Borough of Southwark)는 보로우 마켓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보다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재개발을 이루기 위해 지역 주민과 상인들과 협력하여 재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보로우 마켓 재개발 사업에는 시장 건물의 보수 및 현대화, 상업적인 활성화, 공공공간 개선 등의 다양한 사업이 포함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인 시장의 운영과 유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시장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1998년 보로우 마켓 신탁이 설립되었다.

보로우 마켓 신탁은 지역 사회와 시장 상인들이 협력하여 설립한 비영리 단체로,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다시 시장의 유지보수, 개선, 그리고 지역사회 프로그램 등에 재투자된다. 신탁은 사우스워크 자치구가 갖고 있던 시장의 소유권과 관리의 책임을 인수하여 시장의 보존과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신탁 설립 이후, 보로우 마켓은 지역 비즈니스 중심의 도매시장에서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시장으로 전환되었다. 다양한 고급 식재료와 특색있는 음식점들을 유치하면서 미식가와 관광객들을 위한 명소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또한 영화, TV 프로그램, 미디어 등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시장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
 
 런던 보로우마켓 주말 풍경
 런던 보로우마켓 주말 풍경
ⓒ 경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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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우 마켓의 활성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보로우 마켓을 포함한 주변 지역의 재개발 프로젝트는 전체적인 지역의 가치를 상승시켰고, 고급 상점과 식당들을 런던 브리지 주변으로 모여들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이 경제적 압박을 겪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특히 상업용 임대료의 상승은 전통적인 소규모 상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어 일부 전통적인 상점들은 이로 인해 문을 닫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했다.

보로우 마켓 또한 런던의 중요한 관광지로서의 인지도 상승과 고급화된 서비스 제공으로 상업적 가치를 높이면서 시장 임대료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보로우 마켓에 입주하기 위해 기존의 상인들보다 더 높은 임대료를 지불할 의지가 있는 상인들과 고가의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층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로우 마켓 신탁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먼저, 임대료를 안정화하기 위해서 임대료 상승의 속도를 조절하여 기존 상인들이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시장을 떠나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두 번째, 전통적인 소규모 상인들이 시장에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임대료 보조, 시장 내에서의 마케팅 지원 등과 같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상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 번째, 보로우 마켓 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상인 구성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고급 제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을 제공하는 상인들을 시장 내에 유지함으로써 시장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네 번째, 지역 사회와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시장의 변화가 지역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보로우 마켓이 지역 주민들에게 경제적인 접근성을 제공하고, 지역 사회의 일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로우 마켓의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외부 투자자와 고급 상인들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임대료 상승 압박이 계속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전통시장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변화를 피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자체, 상인회,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보로우 마켓 신탁과 같은 전통시장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 및 관리할 수 있는 전문적인 시장 운영기구의 설치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전통시장살리기#런던#보로우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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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출간, 주택, 도시, 그리고 커뮤니티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다소 낯설지만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의 여러 도시들을 탐색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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