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미래는 누가 그리는 것일까. 그 누구도 아닌 마을에 사는 '주민'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주민 자치'라고 한다면 주민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읍면 단위 풀뿌리 자치기구가 바로 '주민자치회'이다. 주민자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민총회가 13일,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과 황산면에서 잇따라 개최됐다.
폭염과 올림픽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는 이때, 그보다 더 열정적인 '주민 전사들'은 자발적으로 내가 사는 동네에 '행복한 삶'에 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삼산면 주민자치회는 총회의 이름을 '행복한 삼산을 만드는 우리는 하나'라고 지었다.
올해 그들은 '마을로 찾아가는 이미용 서비스', '독거노인 반찬배달 서비스', 삼산주민 건강 100세 요거트 지원', '소외계층 집수리 봉사', '삼산초등학교 학생 아침급식' 지원을 했다. 큰 틀에서 그들의 활동은 섬세하게 살펴야 할 우리 이웃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이웃에게 마음의 곁을 내주고, 삶의 근방에 손을 내민 주인공이 또 있다. 바로 황산면주민자치회이다. 황산면에서 주로 관심을 갖는 키워드는 '소통과 교육'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하브루타 독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다.
학과 민이 하나되어, 중학교 1학년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질문하는 독서를 통해 내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의 삶을 관찰하는 쉬후르(사후평가) 단계를 거치면서 '문자'로서만 읽는 책이 아닌 삶의 결을 더하는 문해력을 기르는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동력을 삼은 것이다. 또한 해남 이크누스의 고향 답게 마을 공룡 캐릭터 등대를 설치하고 마을의 안전을 기원하고, 공룡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맞춤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은 없는 시대, 마을에 사는 개인의 욕구를 조율해가며 한 단계 격상하여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꿈을 설계하는 이들의 '자치 계획 안'에 담을 의제는 주민총회를 통해 어떻게 수렴될 것인가. 삼산면의 경우, 위원들이 삼산초등학교와 협의하여 두륜관이라는 넓은 체육관을 빌려 이날의 총회를 개최했다.
학생들이 이용하는 체육관의 바닥이 상하지 않도록 포장을 깔고, 연배, 지위에 개의치 않고 의자를 날랐다. 서열을 두지 않는 '하나'를 통해 '당사자'라는 대등한 지위에서 행하는 '주권'의 인정이 '자치'임을 회의, 프로그램 운영, 역량강화 교육 이수, 마을자원 조사 등을 통해 익혔기 때문이다.
삼산면주민자치회 윤문희 회장은 '하나라는 구호 아래 주민들과 소통하고 만나는 것이 바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산면의 통합 돌봄 체계 구축이라는 의제 안에서 부터 천년사찰 대흥사가 있는 고장답게 벚꽃과 두륜 오색 단풍을 활용한 축제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황산면주민자치회 명시경 회장은 이번 주민총회에서는 마을 자원조사와 주민자치회 위원 회의를 통해 3개의 추천 의제가 선정되었고, 주민총회를 통해 선정된 최종 주민 의제는 이후 해남군 실무 부서와의 검토와 협의를 통해 세부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총회가 잇따라 열리는 현장 어느 곳에서도 '독단'이라는 용어는 허용되지 않았다. 주민의 대표로 의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사전투표로 결정된 수치와 현장집계 수치가 합산되어 객관적 지표가 설정되었으며, 총회장에서 공포되었다. '결정'과 '납득'의 영역이 존재하는 미묘한 공론장에서 '합의'를 위한 '절차'가 표시되는 숫자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황산면은 해남군 주민자치회 시범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에 명시된 150명의 과반이 넘는 주민들의 찬성에 따라 세개의 의제가 상정됐다. 동백나무 군락지 조성 사업, 체력단련장 건강증진 프로그램, 어르신 자서전 만들기 사업이 그러했다.
이러한 자치위원, 주민들의 역량이 행정에도 가감없이 전달되었다. 이날 총회장을 들른 민선 8기 명현관 해남군수는, '주민총회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하며 해남군도 협치의 주체로서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란 말을 남겼다.
주민이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의 모델을 제시하고, 여기에 행정이 협치할 방안을 모색하면서, 해남군의 '주민자치'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있는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그런 까닭에, 숙의와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주민자치위원들의 움직임은 당장의 성과를 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긴호흡으로 세우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내가 사는 공간에 주인임을 아로새기는 주권재민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