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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해룡 경정의 국회 증언을 계기로 터져나온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흔히 '경찰판 채 해병 사건'이라고 부른다. '채 해병 수사 외압 사건'을 '채 해병 사망 사건'을 빼고 설명하기 힘들듯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역시 '세관 마약 수사'를 빼고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백 경정은 "사건 자체가 잘못 알려진 것도 많다"면서 "사건을 먼저 알아야 그 외압이 무슨 의미인지, 수사팀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경찰 사상 역대급 마약 수사로 평가받는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의 수사 막전막후를 추적했다. 이 기사는 마지막 세번째다.

이 기사는 청문회를 위해 국회에 제출된 자료와 자체 취재에 기반하고 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다만 여기에 기술된 문장은 모두 근거가 있음을 밝힌다.

- [막전막후①] 백해룡 경정은 왜 인천공항세관을 주목했나 - 베일에 가린 한국 조직 https://omn.kr/29sya
- [막전막후②] 마약 공범 세명이 "세관 직원" 말하고, 두명은 같은 인물 찍었다 - 문제의 날, 2023년 1월 27일 https://omn.kr/29syi

 2023년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대회의실에서 수백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필로폰을 국내로 대량 밀반입해 일부 유통한 한국,중국,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연합 마약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나무 도마를 이용한 마약 은닉 수법을 공개하고 있다.
 2023년 10월 1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대회의실에서 수백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필로폰을 국내로 대량 밀반입해 일부 유통한 한국,중국,말레이시아 3개국 국제연합 마약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히고 나무 도마를 이용한 마약 은닉 수법을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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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0일 브리핑 이후 세관 연루 의혹이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걸까. 10월 6일 사건 이첩을 구두로 통보했던 서울경찰청 폭력계장은 10월 11일 저녁 이첩 공문을 보내는 대신 '마약 유통 조직 사건 서울청 이관 필요성 검토'라는 문서를 보내왔다. 기존 이첩 지시를 주워담는 내용이었다.

백 경정은 사실상 해체된 수사팀을 다시 꾸렸다. 이때부터 그는 옷 벗을 각오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각종 전화통화를 녹음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하지만 이제 경찰이 아니라 검찰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언론 브리핑 날, 서울 남부지검에서 있었던 일

10일 브리핑 직후 이 때까지 수사팀과 호흡을 맞춰온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6부 검사로부터 '대검에서 엄청 깨졌다'면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 있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짜로 남부지검에 대대적인 인사이동과 사무분장이 생겼다. 이전까지 이 사건을 담당하던 2차장(허정) 산하 형사6부(부장 이준동)가 7명에서 5명으로 축소되고, 마약 사건 업무 자체가 1차장(박성민) 산하 형사3부(부장 서원익)로 이관됐다. 차장과 부장 모두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는 잘 나오던 영장이 검찰 단계에서 막히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10월 18일 ▲ 세관 피의자 및 직계가족 계좌 압수수색영장 ▲ 휴대폰 압수를 포함한 현장검증영장 ▲ 공항 CCTV 관련 영장을 신청했다. 남부지검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사팀은 26일 영장을 다시 신청했다. 이번엔 뒤에 두개는 나왔지만, 계좌 영장은 여전히 막혔다. 영장 집행 결과 CCTV는 이미 보존 기한이 지난 뒤였고, 세관 피의자의 휴대폰은 그 사이 수차례 초기화로 인해 소위 '깡통폰'이 된 후였다.

강제수사가 막히니 수사는 속도가 나지 않은 채 해가 바뀌었다. 2024년 2월 2일 김찬수 영등포경찰서장이 용산 대통령실 자치행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발령나고, 보도자료에서 세관 내용을 빼며 '사건 이첩'을 언급했던 강상문 서울청 형사과장이 영등포경찰서장으로 왔다.

4월 12일 수사팀은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다. 남부지검은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기각 결정문이 지금까지와 달리 한 페이지에 걸쳐서 꽤 상세했다.

'사건 내용을 잘 아는 사람인데, 누구지?'

기각한 검사는 2월에 새로 형사3부로 발령난 E 검사였다. 수사팀은 보강을 통해 같은 영장을 신청했다. E 검사는 또 반려했다.

그러자 수사팀은 6월 11일 남부지검에 E 검사의 직무배제(회피)를 요청한다. 영장 신청을 반려했다고 해서 경찰이 검사 회피를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수사팀은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숨겨진 배경이 있다.

그 검사는 1년 전 공범을 체포했었다

 2015년 5월 인천공항세관검사장에서 세관 직원들이 마약탐지견을 활용한 단속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자료사진)
 2015년 5월 인천공항세관검사장에서 세관 직원들이 마약탐지견을 활용한 단속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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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2023년 2월 5일 인천공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의 또다른 유통책 D는 역시 몸에 필로폰 4kg을 부착한 채 국내로 들어오다 세관에 적발된다. D의 몸에서 필로폰이 나오자, 세관은 관할인 인천지방검찰청에 연락해 긴급 체포했다. 이때 출동한 검사가 E 검사였다.

E 검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압수한 D의 휴대폰 위쳇을 통해 그날 공항을 빠져나간 공범이 더 있음을 확인한 E 검사는 구속영장청구서 등을 통해 공범 색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2월 20일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는 각종 정보를 분석하여 마약 운반책 12명을 특정한 보고서를 인천지검에 제출한다.

보고서 제목은 '말레이시아발 마약운반 우범여행자 정보 분석보고'. 이 보고서는 인천지검 수사에 활용되지 않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전달된다. 그리고 중앙지검 강력부가 2월 27일 김해공항으로 장소를 옮겨 필로폰을 들여오던 유통책 세 명(2편 기사에서 언급된 C 포함)을 현장에서 검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내용은 C의 1·2심 판결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세관의 보고서에 적시된 마약 운반책 가능성이 높은 12명에는 1월 27일 범행에 가담했던 A, B, C가 포함되어 있었다(1·2편 기사 참고). 이는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의 정보 분석 기간이 D가 잡힌 2월 5일로 한정되지 않고 그 전까지, 문제의 1월 27일 일당 6명이 입국하는 상황까지 거슬러 올라갔음을 의미한다.

수사팀이 신청한 영장은 보고서를 작성한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의 컴퓨터였다. 상당 기간의 CCTV를 가져와 분석했을 것이고, 그중 문제의 1월 27일도 포함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D를 체포하고, 그의 핸드폰을 통해 공범을 확인했으며, 세관으로부터 우범자 보고서를 받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E 검사는 영장을 계속 반려했다. 반려 사유는 'CCTV 영상이 보관되어 있다고 인정할 만한 소명이 부족하고, 어느 컴퓨터에 해당 영상이 저장되어 있는지 특정이 필요하다'는 것.

불과 일년 전 사실상 같은 사건의 공범 색출을 위해 노력했던 검사가, 일년 후 공교롭게도 남부지검 형사3부로 발령이 나서, 신청 족족 영장을 기각시키는 상황. 이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수사팀의 선택이 E 검사 회피 요청이었다.

남부지검 무대응 "경찰 요청은 법령에 근거 없는 것" ... 길 막힌 백 경정의 선택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창청.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창청.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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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회피 요청에 남부지검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찰의 요청 자체가 법령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면서 "검사가 영장을 기각했다고 경찰이 검사를 업무에서 배제시켜달라고 하면, 판사가 영장을 기각한다고 해서 검사가 판사를 배제시켜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해당 검사의 기각 결정문을 봤는데 언론에 난 것처럼 한두 줄로 되어 있지 않다"면서 "한 페이지 정도에 걸쳐 나름 설득력 있게 사유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E 검사가 인천지검 근무 당시 공범을 체포한 상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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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6일 백해룡 경정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과 고광효 관세청장 등 경찰과 관세청 고위 간부 9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7월 18일 백 경정은 지구대장으로 좌천됐고, 19일 경고 통지를 받았다. 경고 사유에는 검사 직무 배제 요청이 포함됐다.

7월 27일 백 경정은 국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관세청, 경찰, 검찰, 세 기관을 움직일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오는 20일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회에 E 검사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E 검사는 진행중인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부록] 이 기사의 등장인물

- 백해룡 경정 :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 마약수사전담팀의 팀장으로서 수사를 이끌어 혁혁한 공을 세우지만 세관 직원으로 수사를 확대하다 강서경찰서 화곡지구대장으로 좌천된다. 남부지검 E 검사가 인천공항세관 압수수색 영장을 계속 기각하자 검사 업무 배제 신청서를 제출한다.

- A(37. 여) : 2023년 1월 27일 인천공항 인편 필로폰 밀수에 가담한 말레이시아 마약조직 유통책. 그해 9월 5일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에 검거된다. 공항 세관 직원의 조력을 실토할 뿐 아니라 얼굴을 보고 세명을 찍는다.

- B(45. 여) : A와 함께 2023년 9월 5일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에 검거된 말레이시아 마약조직 유통책. 역시 그해 1월 27일 인천공항 인편 밀수에 가담했는데, 잘 걷지 못한 자신을 세관 직원이 다른 통로로 빼냈다고 진술한다.

- C(46. 남) : 2023년 1월 27일 인천공항 인편 필로폰 밀수에 참여하고, 한달 뒤인 2월 27일 김해공항 인편 밀수에 또 가담한 말레이시아 마약조직 유통책. 김해공항에서 우범자 명단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던 서울중앙지검과 세관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된다. 그해 말 경찰 조사에서 세관 직원의 조력을 받았다고 실토하고 세관 직원 두 명을 찍는다.

- D : 2023년 2월 5일 공범 두 명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필로폰을 들여오다가 혼자만 세관과 인천지검에 긴급체포된다. D의 적발 이후 인천공항세관 마약조사1과는 CCTV 등 자료를 분석해 말레이시아 마약 운반책 12명을 특정한 보고서를 인천지검에 제출하는데, 여기에 A, B, C가 포함되어 있다.

- E 검사 : 2023년 2월 5일 D를 체포한 인천지검 소속 검사. 이후 공범 체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인천공항세관으로부터 우범자 분석 보고서를 받아낸다. 그런데 2024년 2월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로 발령난 이후 영등포경찰서 수사팀이 요청한 인천공항세관 압수수색 영장을 족족 기각한다.

#백해룡#필로폰#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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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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