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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탐진강 풍경. 장흥과 강진들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간다.
 장흥 탐진강 풍경. 장흥과 강진들을 적시며 바다로 흘러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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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했다', '볼수록 매력 있다', 처음 본 낯선 사람한테서 큰 호감을 느꼈다는 말이다. 첫 번째 만남보다 두 번째, 세 번째가 더 좋았다는 표현이다. 전자보다는 후자의 만남이 더 오래간다. 경험칙이다.

여행지도 매한가지다. 첫 발걸음에 반한 풍경도 있지만, 갈수록 빠져들게 하는 여행지가 있다. 그 묘한 매력에 끌려 자주 찾게 된다. 장흥 탐진강변 정자(亭子)가 그런 곳이다.

남도 정자를 생각하면 전라남도 담양이 먼저 떠오른다. 담양엔 내로라하는 정자가 많다. 조선시대 민간원림을 대표하는 소쇄원을 비롯 가사문학의 산실 식영정과 송강정, 면앙정 등이 있다. 진분홍 배롱나무꽃으로 아름다운 명옥헌도 있다.

 담양 소쇄원 풍경. 남도 정자를 대표한다.
 담양 소쇄원 풍경. 남도 정자를 대표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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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정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건축물도 아름답다. 정자를 짓고, 그곳에 드나든 인물의 유명세도 한몫한다. 양산보, 정철, 임억령, 고경명, 김성원, 오희도…. 권력에서 한발 물러나 자연을 벗삼은 사람들이다. 담양의 정자가 다른 지역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유다.

전라남도 장흥의 정자는 어떤가? 장흥 정자를 얘기하면, '장흥에도 정자가 있어?'라고 반문하기 십상이다. 풍경과 건축물, 사람 얘기는 언감생심이다. 정자를 지은 사람의 지명도도 낮다.

장흥 정자는 첫눈에 반하게 하는 매력은 크지 않다.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두 번째보다는 세 번째가 더 좋다. 만남이 지속되고, 오래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저마다 풍치가 다르고 풍류가 넘실댄다. 볼수록 매력 있는 장흥 정자를 만나러 간다.

 장흥 경호정. 정자가 탐진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장흥 경호정. 정자가 탐진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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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경호정. 정자가 흡사 성곽 위에 자리한 것처럼 보인다.
 장흥 경호정. 정자가 흡사 성곽 위에 자리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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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정은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탐진강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흡사 성곽 위의 누각처럼 보인다. 성곽에 지은 집 같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정자가 강물에 반영돼 비친다.

경호정은 장흥위씨의 정자다. 1912년 위계훈(1866∼1942)이 석대 위에 처음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964년에 지었다. 인근 자미마을 수인산 아래에 있던 위원량의 정자 영이루(詠而樓)에서 뜯어낸 자재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석대와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한 다음, 장방형 석재로 2단의 기단을 쌓은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이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강변이 아름답다.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거목이 그늘도 드리우고 있다. 금방이라도 시 한 수 읊조리며 옛사람의 풍류 흉내 내기에 맞춤이다.

 장흥 동백정. 탐진강 지류인 호계천변 언덕 위 숲에 숨어 있다.
 장흥 동백정. 탐진강 지류인 호계천변 언덕 위 숲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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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정은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탐진강 지류인 호계천변 언덕 위 숲에 숨어 있다. 호계천 건너편 둔치에서 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청주김씨 김린(1392~1474)이 세조의 왕위찬탈 직후 낙향해 1458년 지었다.

정자는 당초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이었다. 1985년 중건할 때 측면으로 1칸을 더 내어 정면 4칸이 됐다. 동백정은 김린이 심은 동백나무가 울창하다고 이름 붙었다. 시인 묵객이 모여 시문을 나눈 건 당연했다.

주변 풍치도 아름답다. 물을 가둔 보(洑)를 건너 동백정을 오간다. 정자로 오가는 길에 동백나무와 소나무도 울창하다. 별천지 같다.

 부춘정 아래 물에 잠긴 바위. 횡서로 ‘龍湖(용호)’가 새겨져 있다.
 부춘정 아래 물에 잠긴 바위. 횡서로 ‘龍湖(용호)’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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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부춘정. 탐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장흥 부춘정. 탐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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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정은 장흥군 부산면 부춘리에 있다. 수려한 탐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마을 어귀다. 강변을 따라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부춘정원림'으로도 불린다.

정자는 본디 1598년 처음 지어졌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남평문씨 청영 문희개(1550~1610)가 벼슬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내면서다. 이름도 '청영정'이다. 청풍김씨 동강 김기성(1801∼1869)이 1838년 사들인 청영정 자리에 정자를 다시 지었다. 이름도 '부춘정'으로 바뀌었다.

부춘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대청을 두고, 앞뒤로 반 칸의 툇마루를 뒀다.

부춘정 아래 물에 잠긴 바위에 '龍湖(용호)'가 새겨져 있다. 횡서로 흘려 쓴 글씨다. '龍湖' 아래엔 작은 글씨로 '桐江(동강)'이 적혀 있다. 동강은 부춘정의 주인 김기성의 호다. 조선중기 문신 옥봉 백광훈이 썼다고 전한다.

풍류가 묻어나는 글씨는 부춘정 입구 바위에도 새겨져 있다. '三公不換此江山(삼공불환차강산)'이다. 한말 우국지사 송병선이 장흥 천관산을 유람하고 부춘정에 들렀다가 새겼다고 전한다. '삼공'과도 바꾸지 않을 강산이라니…

'삼공'은 중국 송나라 때 황제를 보좌한 높은 벼슬을 가리킨다. 조선에 맞춰 풀어보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세 벼슬을 이를 것이다.

 장흥 사인정. 바위 벼랑이 우뚝 솟은 설암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장흥 사인정. 바위 벼랑이 우뚝 솟은 설암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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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 사인정. 동서남쪽에 문을 달아 개방성을 높였다.
 장흥 사인정. 동서남쪽에 문을 달아 개방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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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정은 장흥군 장흥읍 송암리, 바위 벼랑이 우뚝 솟은 설암산 아래에 있다. 탐진강 하류 탐진2교와 평장교 사이다. 사인정은 조선시대 단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 김필(1426∼1470)이 지었다. 김필은 세조의 왕위찬탈을 위한 계유정난 이후 장흥으로 내려와 은둔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다짐했다.

김필은 북쪽을 바라보며 설암의 벽에 단종의 진영을 그렸다고 전한다. 김필은 설암산(雪巖山)의 이름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정자 이름은 김필이 지낸 벼슬 '사인(舍人)'에서 따 왔다. 산 이름은 낙향한 김필의 호가 되고, 김필이 지낸 벼슬은 산 이름이 된 것이다. 산정 바위 벼랑도 '사인암'이 됐다. 산과 바위, 그리고 거기 깃든 이가 서로 이름을 주고받은 셈이다.

사인정은 석축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초석을 놓고 건물을 올렸다.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가운데에 방을 들이고 사방으로 우물마루를 돌린 것이 특징이다. 동서남쪽에 문을 달아 개방성도 높였다.

사인정에는 생육신의 한 명인 김시습이 10년 동안 머물렀는데, 그는 날마다 단종이 묻힌 북쪽을 향해 절을 했다고 전한다. 백범 김구도 중국 상하이 망명길에 오르기 전,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이곳에서 하룻밤 묵었다고 한다. 사인정 주변 바위에 김구가 썼다는 '第一江山(제일강산)'이 새겨져 있다.

 장흥 탐진강변 용호정. 삼면이 트이고, 가운데에 방 한 칸 있는 소박한 구조를 하고 있다.
 장흥 탐진강변 용호정. 삼면이 트이고, 가운데에 방 한 칸 있는 소박한 구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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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정은 장흥군 부산면 용반리, 용소 위에 지어졌다. 낭주최씨 가문의 효심을 토대로 1828년 지어졌다. 지은 이는 최영택의 맏아들 최규문(1784∼1854)이다.

최영택은 이름난 효자였다. 세상을 떠난 부모를 용호 건너편 기산 자락에 모신 그는 3년 동안 날마다 세 차례, 그 뒤 3년은 하루 한 번씩 묘를 살폈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용호를 건널 수 없었다. 묘를 살피지 못한 아버지가 애태우는 모습을 본 아들이, 할아버지의 묘가 보이는 곳에 정자를 지었다.

용호정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3대의 효심이 담긴 정자다. 정자는 강 건너 묘가 잘 보이는 벼랑 안쪽에 축대를 쌓고 지었다. 정자는 삼면이 트이고, 가운데에 방 한 칸 있는 소박한 구조를 하고 있다. 처음에 초가지붕이었다. 1947년 고쳐 지으면서 당초보다 2칸 더 넓히고 기와지붕을 올렸다.

깎아 세운 듯한 벼랑에 세워진 용호정은 숲과 물과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정자 주변은 나무로 우거져 있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정자에 들면 안온한 느낌을 준다.

강변을 따라 걷거나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하나씩 만나는 재미까지 쏠쏠한 장흥 탐진강변 정자다.

 장흥 경호정 풍경. 탐진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정자가 강물에 반영돼 비친다.
 장흥 경호정 풍경. 탐진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정자가 강물에 반영돼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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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부춘정#장흥동백정#장흥용호정#장흥경호정#장흥사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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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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