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 서 있있던 '한 사람'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그 자리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동석하고 있었다.
그들이 브리핑실에 있었던 이유는 '대우조선해양 사태 관련 관계부처 합동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조직한 노조(하청노조)가 옥포조선소 1번 도크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을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손실이 엄청나게 누적되고 있다. 이는 일련의 사태로 위기를 겪었던 대우조선해양이 그동안 침체 중이었던 조선업계의 부활로 다시 재기하려는 상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하청노조는 당장 점거를 풀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 만약 현 상태를 유지한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
사실상 공권력 투입을 시사한 이 담화문엔 정작 하청노조가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일부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불법행위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동료 근로자 1만 8000여 명의 피해와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 행동"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하청노조의 불법성만 강조하는 담화를 발표하는 곳에 도대체 왜 고용'노동'부 장관이 다른 정부 부처 장관들과 함께 서 있어야 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검찰과 경찰을 각각 다루는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노동자가 점거농성을 벌이는 이유보다 그 행위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노동자의 권익보다 기업의 이익을 더 우선시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이 부처들의 시선과 다르게 노동자들의 파업을 바라봐야 하지 않았을까? 고용노동부는 정부 부처 중 유일하게 '노동'이란 용어를 품고 있기에 그 의미를 성실히 실현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 곳이자, 노동자가 부당하고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전문적인 역량이 구현돼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 하청노조는 왜 건조 중이었던 선박을 점거하였을까? 노동조건 개선이 목적이었다. 하청업체 소속의 조선노동자들은 선박 수주물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황일 때 삭감됐던 임금을 여전히 받고 있었다고 한다. 일례로, 20년가량의 경력을 보유한 용접공이 한 달 정도를 일하고 받은 급여는 최저임금에 맞먹었다고 한다. 또한 일하다가 죽음을 걱정해야 할 만큼 배를 만드는 작업장은 안전과도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이는 다단계의 형태로 무분별하게 형성된 하도급 구조에서 비롯된다.
원청이 도급계약의 명분으로 삼는 주요한 근거는 전문성이다. 기업이 모든 업무에 전문성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청이 직접 운영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한 일을 전문업체에 대신 맡기는 것이 오히려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일 수 있다. 문제는 악용되기 쉽다는 점이다. 원청이 하청업체를 통해 그 전문성을 터무니없이 싼값으로 이용하려 해도 문제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급제는 어떻게든 일을 따내야 하는 하청업체의 절박함과, 최소의 비용만 쓰고픈 원청 기업의 이기심이 합치된 결과다. 이 구조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존재는 하청노동자다.
그런데 최저가 입찰의 영향으로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겪거나 산업재해를 당하는 등의 책임은 그 액수를 '유도한' 원청이 아니라, 그리 '적은' 하청에 있다. 법이 그렇다. 도급제는 전문성이 부족한 원청이 전문성을 가졌다고 어필해야 하는 하청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순간부터 그와 관련된 책임까지도 떠맡길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최저 입찰가를 써낸 하청업체를 원청이 굳이 낙찰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할 베테랑은 거의 없을 터다. 더군다나 최저가의 도급비로 전문인력을 육성하기도 버겁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하청업체가 받는 도급비는 전문성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원청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대신 지는 것에 대한 값어치에 가깝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하청노동자들이 아무리 도급비 인상을 주장해도 원청은 들어줄 의무조차 없다. 이 역시 법이 그렇다.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이 하청노조의 교섭요구에도 제3자라는 명분을 대며 계속 거부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렇다면 하청노동자가 '합법적'으로 교섭요구에 응하지 않는 원청을 교섭 테이블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 '경제적' 접근법밖에 남아 있지 않다. 교섭하지 않으면 원청에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먼저, 불매운동이 있다. 하지만 모든 업종에서 유효한 방법도 아닐뿐더러, 소비자들의 참여율에 좌우되는 한계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청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원청 사업장의 조업을 방해하는 것뿐이다. 즉, 파업 말이다. 현행법상 이는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민·형사상의 소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합의해주지 않는 한, 하청노동자들은 거액의 손해배상액을 떠안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하청노동자가 노동조건을 개선하려면, 현재로선 이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하청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원청 기업이 단지 하청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책임 소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법에 빈틈이 있다는 증거로 해석해야 한다. 적어도 노동부 장관이라면 말이다. 그러므로 당시 이정식 장관은 하청노조에 무조건 법과 원칙을 지키라는 담화에 나서기보다, 법과 원칙을 지키기 어려운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더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그는 노동부 장관이기 전에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왔던 인물이었다. 현장에서 수없이 봐왔을 하청노동자의 현실이 명료하게 쓰인 법조문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복잡다단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태껏 잘 언급되지 않았던 용어인 '노사 법치주의'는 2022년 화물연대 파업 때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법치주의 노사문화'라는 단어를 2003년에 철도노조, 화물연대 등이 벌인 파업을 목격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신노사문화 확립을 위한 우리의 다짐'이란 결의문에서 사용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법치주의 노사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적대응을 엄정하게 취해 나간다." 노사 법치주의의 강조는 어쩌면 현행법이 얼마나 기업에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일지 모른다.
이제는 파업을 시작하는 하청노동자들을 불법파업을 주동한다고 비난하려 하기보다, 그들이 왜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피는 노동부 장관을 보고 싶다. 불어나는 기업의 손해를 막는 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법과 원칙이라는 잣대로 강제 해산하려 하기보다, 기업이 이익에만 매몰된 결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침해받고 있는지부터 조사하고 노사가 유의미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끝까지 중재하는 노동부 장관을 보고 싶다. 귀족노조와 노동약자를 갈라치려 하기보다, 노동약자의 노조 가입을 장려하는 노동부 장관을 보고 싶다. 대통령이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노동3권을 위축시키는 정책을 펴는데도 인사권자의 의중이니 그대로 따르려 하기보다, 직을 걸고서라도 반노동적이라 직언하는 노동부 장관을 보고 싶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내정된 김문수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런 노동부 장관이 될 수 있을까? 멀게는 '1970년대의 그'와 가깝게는 '2020년대의 그'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사측과 맞서던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의 모습과, "불법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 말하는 유튜버 또는 '무노조·저임금·휴대폰 사용불가' 사업장에 감동을 받은 경사노위 위원장의 모습 사이에서 어떤 노동부 장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현재의 김문수'를 반노동적이라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그는 "나는 노조 출신이고 아내도 노조 출신이고 형님과 동생도 노조 출신"이라며 '과거의 김문수'를 소환했지만, 분명한 점은 2022년 7월 18일의 브리핑실 현장이 재현될 것만 같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