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라는 구호를 기억하십니까? 코로나 19에 맞서 싸웠던 공공병원의 무너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의료원은 코로나19 환자만 전담하여 치료하면서 일반 진료를 중단하거나 축소했습니다. 이 기간에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력들이 떠나 전담병원 지정이 끝났지만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 영웅'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이제는 임금 체불을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위기에 놓인 지방의료원의 실상과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기자말] |
청주의료원은 1909년 관립 자혜의원으로 시작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583병상 규모이며, 지역주민의 건강증진과 지역의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의료취약계층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공공병원입니다.
저는 청주의료원에 1997년 간호사로 입사해 20년 넘게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입사했을 때 병원이 어렵다고 하여 임금 일부를 반납했고, 퇴직금 누진제가 없어졌으며, 도청 직원들이 파견 나와 구조조정도 했습니다. 퇴근을 했다 출근하면 경비실이 없어졌고, 자격증이 없거나 부서가 없어진 직원들은 하나둘 병원을 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전체 직원의 3분의 1 정도 되는 80여명의 직원들이 사직을 했습니다.
한 병동 간호사는 야간에 혼자 근무를 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의 폭행으로 코뼈가 부러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어 다음 근무자는 호신용품을 들고 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2016년 제가 노동조합 지부장으로 당선된 된 후에도 여전히 병원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과 2019년에는 병원 경영이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병원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도에서 빌렸던 지역개발기금 150억 원과 이자도 갚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1월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는 이런 기대를 송두리째 빼앗아 갔습니다. 당시 전체 병상의 90% 이상 환자가 입원한 상태였지만 정부의 긴급 명령으로 모든 환자들을 내보내고 병상을 비워야 했습니다. 전원하지 않겠다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설득해 주변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코로나가 끝나면 병원이 정상화될 때까지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처음 모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오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비닐을 치고 가벽을 설치한 채 불안한 마음으로 현관 앞에서 환자를 기다렸습니다. 커다란 관광버스가 환자들을 내려놓고는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전국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온 일반 환자, 요양병원에서 온 환자, 정신병원 환자를 입원시켰습니다.
코로나19 치료와 직접 관련이 없는 대부분의 진료과는 축소되었고, 병원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건강 검진, 외래진료, 장례식장 업무가 중단되었습니다. 직원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무급 휴가를 써야 했습니다.
비정상적 진료 체제로 진료 수입은 급감했으며 정부에서 주는 손실보상 차액금으로 겨우 겨우 병원을 운영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면 4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들 했지만, 팬데믹이 끝난 정부는 단 6개월간 '회복기 지원금'을 지급해주었습니다.
그러다 정부는 2024년도 감염병 대응 지원체계 구축 및 운영 예산을 126억1000만 원만 편성했습니다. 이는 전년(9530억7900만 원)보다 98.7% 적은 액수였습니다. 또, 의료기관 등 손실보상 예산 또한 전년(6935억3200만 원)보다 98.2% 줄어든 126억1000만 원에 그쳤습니다.
우리 지방의료원지부 조합원들은 정부가 회복기지원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투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23년 7월 기획재정부 앞 집회를 비롯한 수많은 투쟁을 했고 결국 10월 국정감사에서 쟁점이 되어 2896억 원을 증액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국회의원 면담, 예결소위 위원 면담, 12월에는 국회 앞에서 지부장들이 집단 단식농성까지 벌였습니다. 결국 지난 2023년 12월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감염병 대응 공공병원의 회복기 지원예산 1000억 원이 통과되었습니다(국비 510억 원, 연구비 3억5000만 원, 지방비 50% 포함).
하지만 국비 510억 원도 등급을 나누어서 35개 지방의료원과 6개 적십자 병원이 나누어야 받아야 했습니다. 더구나 지방 정부가 50%를 지원해주어야 예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충청북도는 하위 등급을 받아 겨우 16억 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청주의료원은 매달 적자 금액만도 16억 원에 이릅니다.
2023년 11월 도에서는 직원들의 임금 체불을 막아주겠다며 5년간 이자를 보전해 주는 조건으로 청주의료원 120억 원, 충주의료원 100억 원을 차입해 주었습니다. 경영이 회복되지 않는 한 청주의료원은 연말에 현금이 바닥이 날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병원에서 적자가 나느냐고 묻습니다. 청주의료원은 연간 수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충북 공공어린이 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친화 검진, 저소득층 간병비 지원, 수술비 지원, 사회복지시설 기초검진, 지역아동센터 예방 검진,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진료, 상담 회복프로그램, 가정간호, 만성질환관리, 보건소 연계 치매 예방사업, 괴산군 보건소 소아과 전문의 파견사업 등 지역 책임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들을 기다리며 비상 진료 및 야간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임상 과장님은 지원해줄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평일 진료, 병동환자, 수술, 당직 근무까지 서야 하는 상황입니다.
들려오는 주변 의료원들의 임금체불 소식, 퇴직연금 적립 재정 부족에 따른 과태료 보고서, 행정안전부의 부채 중점 관리 기관 대상 소식, 게다가 연장 당직과 수술로 피로에 젖은 원장님을 보면 미래가 암담합니다.
그런데 하반기 회복기 지원예산은 없습니다. 내년에도 예산이 없는 실정입니다. 지방의료원지부 지부장과 전임자들은 '뭐라도 해 봐야지' 하는 마음에서 5월부터 8월까지 회복기 지원예산 편성을 위해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앞에서 선전전과 집중행동을 했습니다.
지난 6월 19일 민주노총은 청주-충주의료원에 예산을 지원해 달라는 기자회견을 했고, 충청북도 보건정책과와 면담을 했습니다. 7월 17일 청주의료원-충주의료원 회복기 지원을 촉구하는 도청 앞 결의대회도 열었습니다. 공공의료를 지키겠다는 5109명의 충북지역 조합원들의 서명지도 도청에 전달했으며, 도에서는 병원이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대체 자구책이란 무엇일까? 지방의료원에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의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지역에 청주의료원과 비슷한 규모의 S병원의 경우 의사 숫자가 청주의료원의 2배에 달합니다.
충청북도는 도민들에게 미안해야 합니다. 충북의 북부라고 할 수 있는 제천, 단양지역에 사는 도민들은 아프면 강원도로 가고 있고 영동, 옥천 지역의 도민들은 아프면 대전 유성으로 가고 있습니다. 2027년에 수도권에 6600병상이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제 도민들은 KTX 열차를 타고 외지에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주민들은 세금을 낭비하고 더 많은 교통비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합니다.
이것은 건강보험료를 똑같이 내고도 지역주민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차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과연 충청북도가 마련하는 자구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역의료가 무너지고, 공공의료가 무너지면 민영화의 거센 바람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사측은 이대로 가면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고 올해 연차도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조합원들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목이 조여오는 오늘이 암담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경희씨는 보건의료노조 청주의료원지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