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머니는 이렇게 더운데 왜 길바닥에 앉아 있어? 또 집에 안 들어오고 도로 옆 움막에서 잠을 자,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왜?"
2015년 태어난 순자씨의 손주는 길바닥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이해되지 않아 가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제 9살이 된 손주의 눈에는 멀쩡한 집을 두고 움막에서 잠을 자는 할머니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순자씨 손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올해 47살이 된 저 역시도 일흔이 넘은 순자씨의 삶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울산과학대학교 앞 노동자분들의 저항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근처에 위치한 '더불어숲작은도서관'과 3년 전 맺은 개인적 인연 때문입니다.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울산과학대학교 정문 앞에서 종종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 자연스럽게 투쟁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분들의 삶을 인식하고 궁금해하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우연한 기회 덕분입니다.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올해 3월부터 <작은책> 발행인 유이분 선생님이 한 달에 한 번씩 생활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고,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된 저는 수업 전에 선생님을 따라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선생님은 이분들과 오랜 인연이 있다며 인사를 드리러 가셨고, 저 역시 낯선 천막과 그곳의 낯선 사람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천막 안에 들어가자마자 낯섦은 사라지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그분들의 오래된 인연은 덩달아 따라간 저까지 오래된 인연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습니다. 그곳을 방문하기 전에 선생님께 말한 제 이야기가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저렇게 할 시간이 없었어요. 불의를 보거나 불공정한 일을 당해도 맞서서 싸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전혀 없었어요. 내 삶이 워낙 바빴기에..."
울산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울산과학대학교 동부 캠퍼스 정문 앞 도로변 인도에는 비닐 천막과 스티로폼으로 지어진 낡은 움막이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허름하게 보이는 이곳은 10년 넘게 부당한 해고에 투쟁하고 있는 청소 노동자들의 집입니다.
순자, 상분, 순남, 영석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름의 네 분의 노동자분들은 어느새 막내의 나이가 69세로 모두 고령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견디신 어르신들의 삶과 더불어 지난 6월 16일, 불합리한 해고에 저항한 지 10년이 됐다기에 그동안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은 약한 자를 돕고 사랑할 힘을 얻기 위함이니라."
2004년 울산과학대학교에 면접을 보러 온 첫날 순자씨는 학교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적힌 이 문구를 보고 감명받았습니다. 당시 순자씨는 학문을 공부하는 대학교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0년 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약한 자, 청소 노동자들은 사실상 해고를 당했습니다.
2014년 6월 당시 최저시급 5210원, 한 달에 108만 원을 받던 청소 노동자분들은 이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시급 790원 인상과 상여금 100퍼센트를 요구했습니다. 시급 790원 인상은 한 달 209시간 기준으로 16만5110원, 총액으로는 125만4000원입니다.
2014년 6월 16일 이 요구안을 거부한 학교 측에 맞서 청소 노동자분들은 파업에 돌입합니다. 이에 대한 학교 측의 대답은 퇴거 단행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었습니다. 또, 울산과학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던 중, 용역업체의 계약 기간이 끝났고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결국 해고자 신분이 되었습니다.
당시 순자씨를 비롯한 20명의 청소 노동자분들은 그들의 투쟁이 이렇게나 긴 10년의 세월을 넘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2007년에도 울산과학대학교에선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집단 계약해지가 있었고, 이에 대한 투쟁은 79일 만에 끝났습니다. 2007년 해고는 점심 식사 제공과 울산연대노조 가입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울산과학대학교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고, 이에 청소 노동자분들은 함께 저항했고 이겼습니다. 노동자들은 '당시 합의서에서 총장은 고용승계를 보장하는 문서에 서명했지만, 이 합의서는 지켜지지 않았고, 고용승계를 이행하지 않은 학교에 부당 해고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2007년 합의서 제3항: 울산과학대학은 ㈜한영의 도급계약해지로 타 업체와 계약 시 동부 캠퍼스 내에서 근무하는 울산연대노동조합원이 타 업체에 고용 승계를 원할 때는 동부 캠퍼스로 고용 승계를 담보한다).
2014년 10월 본관 1층 로비 강제 퇴거, 2015년 2월 중앙광장 천막 철거, 2015년 7월 강제 퇴거 집행, 2017년 2월 농성장 강제 철거를 당하며 서서히 밖으로 내몰린 청소 노동자들은 결국 학교 정문 앞에 비닐 천막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움막을 지었습니다. 이 허름한 움막 역시도 3천만 원이라는 큰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1인당 강제 이행금 8200만 원과 압류된 통장, 지금도 늘어만 가는 빚으로 20명으로 시작한 투쟁은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4명으로 줄었습니다.
60대였던 청소 노동자들은 이제 70대가 되었습니다. 도로변 인도에 지은 열악한 천막에는 바로 앞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격한 냄새와 더불어 매연과 소음이 심합니다. 이로 인해 고령의 청소 노동자분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네, 모기, 쥐들을 비롯한 각종 곤충과 비위생적인 동물들로 인해 10년 내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 사용 문제입니다. 이들은 학교와 10분 거리의 대송시장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학교 측에서 움막 옆 경비실에 있는 화장실을 몇 개월 전부터 개방하여 그나마 불편함이 줄었습니다.
낡은 움막 안에는 2015년 태어난 순자씨 손자의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제목은 '농성장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손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한 순자씨의 투쟁은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순자씨를 비롯한 청소 노동자분들의 제일 큰 아쉬움은 울산과학대학교 학생들의 무관심과 냉대입니다. 손자 같은 학생들의 각종 오물을 치우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는데, 그들의 무관심과 냉대가 너무나 가슴 아팠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종 단체의 연대와 후원 덕분에 지금까지 자신들이 버틸 수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도 용역업체 소속 청소 노동자 생활 10년째입니다. 취재하는 동안 10년이 넘은 울산과학대학교 청소 노동자분들의 투쟁과 저항이 제게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고령이 되신 청소 노동자분들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10년이 넘는 거리 투쟁은 저 같은 젊은 사람도 견디기 힘든 세월이었을 겁니다.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이분들의 투쟁과 저항이 좋은 열매를 맺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 개인적 삶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무더운 여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바닥에 앉아서 투쟁하고 있는 고령의 노동자분들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네 분의 청소 노동자분들이 따뜻하고 풍성한 추석을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작은책〉 2024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