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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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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서워요."

8월 26일 새벽 2시 40분 카카오톡 대화방에 한 여학생이 보내온 문자가 찍혔다.

"딥페이크(불법합성물) 피해 학교 지도에 저희 대학도 올라와 있어요. 어떡해요."

박지현(28·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분 뒤 여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특정 학번 학생들이 '집단 피해자'로 분류돼 있다며 그 학생은 엉엉 울었다. 정치인들이 여성들의 공포를 '이슈'에서 제외하고 있을 때 여성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떠다니는 '피해 학교 지도'를 자발적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박지현은 그날 아침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수많은 여성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딥페이크'는 정치권에서 말해지지 않았다. 그는 대학생 기자이던 2019년 취재한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을 떠올렸다. 게시글 말미에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고 적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가해자가 피해자 옆에서 살아가는 상황"이 5년 만에 같은 현실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일부.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일부.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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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일부.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지난 8월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일부.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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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페이크 성범죄는 국회 안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

장혜영(37·전 정의당 의원)은 그날 페이스북을 뒤지다가 박지현이 올린 글을 읽었다. 거대 양당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들이 박지현의 글에서 발견됐다. "정부는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아야 합니다." 장혜영도 여성들의 목소리에 문장을 보태기로 했다. "권력을 분점하는 국회 양당의 공식 입장"을 촉구하기 위해 그는 국회 밖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무작위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장혜영은 국가의 특별수사를 촉구하는 정의당 논평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리고 피해자 목소리를 경청하는 정치가 시급하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결합한 성폭력 착취 구조로부터 여성들이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 원내외를 막론한 정치인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거대 양당이 딥페이크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8월 27일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디지털성범죄 근절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그전까지 딥페이크에 관한 공식 논평조차 없었다. 박지현과 장혜영의 언어는 그전까지 사건이 되지 못한 여성들의 고통을 사건으로 주목받게 하는 시작이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오른쪽)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오른쪽)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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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두 사람이 공동 기획한 딥페이크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가 두 사람을 만났다. N번방 사건을 최초로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출신 박지현과 디지털성범죄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장혜영이 언론 인터뷰에 함께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또다시 마주한 디지털성범죄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이자 처절한 정치의 실패"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성범죄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을 결정하고 보여주는 것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라며 "당리당략을 넘어 공동 대응이 필요하고 상임위를 넘어 국회 차원의 특위도 필요하다. 디지털성폭력이 대한민국에서 용납되지 않도록 모든 정치인이 합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싸워야지 바뀌는 여성들의 현실"과 "성폭력을 박멸하기 위한 정치"를 말할 때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박지현 "본질 호도하고 축소하는 이준석"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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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넷에서 웹하드로, 웰컴투비디오와 텔레그램으로, 경로를 달리해 수십 년간 반복돼 온 폭력이었다.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는 학교·군대·가정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미성년자들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했다는 점에서 다시 충격을 줬다. 이 불안과 혼란 앞에 놓인 여성들이 느끼는 바를 장혜영은 "사회적 신뢰의 붕괴"라고 규정했다.

"자라나는 10대 여성 청소년들이 성폭력에서 안전한 공간이 대한민국에 없다고 느끼고 있어요. 더는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사회를 믿을 수 없다고 느끼고 있어요. 이전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신뢰의 붕괴예요."

박지현도 "여성 폭력의 심각성이 축소되고 있다"며 말을 보탰다. "여성이 겪는 범죄는 너네끼리의 문제 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아요. 하루에도 수십 건씩 벌어지는 불법촬영은 여성에게 더 빈번하지만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만큼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잖아요." 이미 온라인에선 딥페이크 성범죄가 발생한 피해 학교 수백 곳이 전국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공유된 터였다.

 딥페이크 피해학교 지도
 딥페이크 피해학교 지도
ⓒ https://deepfakemap.x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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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정치인들은 여성들의 고통을 '폭력'의 문제로 다루지 않았다. "위협의 과대평가"(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급발진 젠더팔이"(허은아 개혁신당 대표)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었다. 박지현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려는 노력조차 일부 정치권이 하지 않고 있다"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사건을 축소시켜서 지지 세력에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엔 박지현의 말을 장혜영이 받았다.

"이준석 의원은 딥페이크를 플랫폼의 문제로만 규정하고 윤리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어요. 사실 이 의원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딥페이크 사태가 엄중할수록 개혁신당과 이 의원이 져야 하는 정치적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큰 위협이 아니라고 축소해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죠."

국회가 성폭력에 주목하지 않고 정치가 약속을 배반할 때 디지털성범죄는 '텔레그램'에서 사라지고 돌아오길 반복했다. N번방 사태로 여론이 들끓었던 2020년 정치에 입문한 장혜영은 지금의 상황이 "처절한 정치 실패"라고 진단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우리가 처음 다뤄보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4년 전 N번방 방지법을 입법하고 또다시 이런 국면을 마주하게 된 거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그 시기 정치를 했던 모두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자며 텔레그램 핫라인으로 딥페이크를 자율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박지현은 이 '자율 규제'의 문제점을 분명히 꼬집었다.

"자율 규제로는 텔레그램 같은 플랫폼 기업이 수사에 협조하지도 않고 수사 진행 상황을 알려주지도 않아요.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게 기업의 방침이에요. 국가가 나서서 플랫폼 기업을 규제해야 해요. 그건 과잉규제가 아니라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에요."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왼쪽)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대화하고 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왼쪽)과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마포구에서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를 앞두고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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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장혜영이 박지현의 말을 받았다.

"대통령의 언어에 진정성이 없어요.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말하고 법무부 TF를 해산했으면서 디지털성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건 앞뒤가 안 맞거든요. 일말의 진정성이라도 있으려면 여성가족부 폐지를 철회하고 여성들의 구조적 성차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정책적인 행보가 없다면 이번 국면이 지나고 반여성 정치로 회귀될 게 뻔해요."

국회도 뒤늦게 딥페이크 관련 대책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 8월 말부터 발의된 딥페이크 관련 법 개정안은 34건이다. 대부분이 성폭력처벌법(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사람도 처벌토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처벌 범위를 넓히고 수위를 높이는 것 말고도 장혜영은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초부터 두 달간 나온 딥페이크 관련 법안들을 보면 교육 관련 법이 하나도 없어요. 딥페이크 가해자는 대부분 청소년이에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했는지, 대한민국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하는 데 왜 이토록 실패했는지 이제는 교육이 답을 해야 합니다."

장혜영 "여성들의 정당한 감정 존중받길"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왼쪽부터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원하영 고대문화 편집위원,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수진 초등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 교사,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왼쪽부터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원하영 고대문화 편집위원,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김수진 초등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 교사,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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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과 장혜영은 이날 저녁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발제자와 사회자로 나섰다. 지난 4월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두 '원외 정치인'은 이날 국회 밖에서 여성들의 실존적 위협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정치가 이들을 대변하도록 다그치는 불쏘시개를 자처했다.

이날 토론회 패널로 참석하거나 글과 영상을 보내온 여성들의 말은 활활 타올랐다. 3시간 가까운 토론이 이어졌다(온오프라인 270여 명 참석). 디지털성폭력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온라인의 특성상 온전한 피해 회복이 어렵다고, 정부가 여성들의 피해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었다.

"사건 발생 4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들 속에 살아요."(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

"여성 예술인은 현대판 기생이라 불리며 온갖 성폭력을 감당해 왔어요."(손수현 배우)

"지난달 중학생 딸이 피해 학교 리스트를 거론하며 불안함을 호소했어요."(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여성들이 살아가며 경험한 불신과 분노의 말들이 토론회에 탑처럼 수북이 쌓였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서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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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이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와 불신이 너무나 정당한 감정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여러분의 감정은 제대로 된 이름이 붙여지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날 장혜영과 박지현은 딥페이크 성범죄에서 정치의 역할을 거듭 소환했다.

"정의당 장혜영과 민주당 박지현이 이렇게 같이 목소리를 내는 건 당리당략을 넘어 공동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저희는 국회 차원의 특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요. 현재 상임위 구조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법안들을 논의하기 위한 특위 말이에요. 적어도 이런 종류의 디지털성폭력이 대한민국에서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모든 정치인이 합심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장혜영이 박지현에게 말했다. "오늘 토론회 한 번으로 끝나선 안 돼." 토론회를 마친 박지현은 관객들에게 말했다. "오늘 자리가 결코 끝이 되어선 안 돼." 성폭력이 일상이 된 여성들과 그런 일상에 저항하는 여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스스로와 다짐했다.

인터뷰와 토론회가 끝났다.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 국회 바깥 여성의 목소리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혜영#박지현#딥페이크#디지털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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