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싸놓은 똥은 치워야지 않것소> (도서출판 말)는 김우창, 이태옥 두 작가가 탈핵운동 활동가 10인과 인터뷰한 글을 엮은 책이다. 알고 보니 2023년 2월부터 오마이뉴스 '탈핵 잇-다[시즌1]'로 연재됐던 글이다. 시즌2 인터뷰글도 이미 5편이나 올라와 있었는데, 일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대를 이어 실천하고 있는 탈핵 이야기에서 인생을 배운다.
그동안 게을러서 알지 못했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위험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왜 방관하냐고, 왜 싸우지 않냐고 죄책감을 묻지 않는다. 대신 누구나 당연하게 누려야 할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싸워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 전기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나의 삶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고 제안한다.
갈등조차 "품자"는 사람들
책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핵발전소 주변 제한구역이 아니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족을 경주 나아리로 불러들인 황분희씨는 코피 흘리는 손주를 볼 때마다 두고두고 미안하다. 나아리에서 태어나 자란 다섯 살짜리 손주의 몸에서 높은 수치의 삼중수소가 발견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졌다.
"내가 애들한테 여기에 와서 같이 살자는 말만 안 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항상 미안하지"(28쪽).
"뭣하러 위험한 그곳에 사느냐?"는 말은 걱정이 아니라 마치 그곳에 사는 것을 탓하는 말처럼 들린다. "안전할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말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앞에서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황분희씨는 미안함과 절망을 넘어서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고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며 10년 째 관을 끌며 상여 시위를 한다.
김용호씨 역시 기장군의 해수담수화 사업의 위험성으로부터 가족과 지역을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그는 떠나지 않고 10년을 공부하며 싸우고 있다. 울진의 이규봉씨는 방폐장 유치를 막아냈지만, 공은 고사하고 이웃들에게 "너희들 때문에 금덩어리를 빼앗겼다"는 원망의 소리를 들었단다.
탈핵운동 하다가 구속이 되고, 욕 먹고, 몸이 고달픈 것은 자신이 선택하고 각오한 일이다. 정작 힘든 건 지난 40년 동안 한수원에서 지역에 낸 돈들로 종속된 지역경제 때문,에 핵발전소가 아닌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 지역주민에게 어떻게 탈핵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떻게 '나'가 아닌 '너'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보고, 듣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분노하고 피로감이 쌓일 만도 한데, 책 속 10인의 탈핵운동가들은 한결같다. 이들 앞에서 길을 막아서는 이들도,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웃도, 핵발전소가 싫어서 신규 핵발전소 유치를 찬성해야 떠날 수 있다는 이웃도 함께 "품자"고 말한다.
핵발전소로 인한 부수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생각이 다른 그들 역시 같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조직적으로 위험을 은폐하고 '안전이 아닌 이권'을 알려주는 이들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함께 갈등을 넘어서 연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위험과 싸우는 사람들
'싸놓은 똥'은 핵발전소를 40여 년 이용한 대가로 떠안은 방사능 폐기물을 말한다. 핵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어 왔다.
영광 한빛 핵발전소 1~6호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배수로 이미 영광 앞바다는 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용접도 허술하고 구멍까지 뚫려 영구 폐쇄되어야 할 1-3호기가 최대 20년까지 수명이 연장된다고 한다. 그 소식에 노병남 영광군농민회장은 농사짓다 말고 서울 탈핵 집회 현장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쥔다.
"서울 사람들은 안 무섭소? 영광에서 핵발전소 사고 나면 영광사람들만 죽지 않아요!"(182쪽)
"핵발전소가 싸놓은 똥이 무섭지 않냐'고 안전을 호소하는 그는 싸우기 위해 농민회원들과 코피 터져가며 핵공학자에 뒤지지 않을 만큼 공부했다.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이 거짓이란 것을 삼척 젊은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옥분씨는 '삼척평화' 계정을 만들어 탈핵, 탈송전탑, 탈석탄을 외치며 삼척평화를 만들어 간다.
월성 원전 1호기 핵연료 저장수조의 차수막 파손으로 핵폐기물이 지하수로 유출됐다는 것은 월성 핵발전소 내부 공익제보자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법으로, 글과 사진으로, 미디어로 참여하는 활동가들도 그 길에 함께 "잇-다"(있다). 지는 재판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김영희 변호사는 한빛 1·2호기 수명연장 위법성을 가리기 위해 법으로 싸운다.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장마리씨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이 "거대한 성벽과 단단한 방패들"로 가려진 문제이기에 어떻게 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가서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핵 문제를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기 위해 타인의 고통에 주목하는 사진작가 장영식씨는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 고리 탈핵 현장을 담아 사진으로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 간다. <탈핵 신문>을 만들고 탈핵 이야기를 전하는 용석록씨, 그리고 핵 개발을 추진해 온 역사와 속임수에 대한 글을 쓰며, 국제 탈핵 활동을 하는 오하라 츠나키 씨도 탈핵 현장에 "잇-다"(있다).
1년 전, 국민의 대다수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반대했지만, '오염수가 안전하다'며 일본 정부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던 정부는 이제는 일부 우려하는 국민들을 '괴담 유포자'라며 몰아세우는 상황이다.
지난 주말, '907 기후정의행진'에 모인 시민들은 "기후 말고 세상을 바꾸자"고 외쳤다(관련 기사:
[기후정의 행진] 강남대로 2만 인파 "기후가 아니라 세상 바꾸자" https://omn.kr/2a3mr ). <싸놓은 똥은 치워야지 않것소> 책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안전과 위험' 사이에서 무엇이 정의인지를 알려준다.
이 책을 통해 탈핵의 의미와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서명과 후원, 댓글과 공유로 지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처음에는 방관자였다가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생기고, 안전한 삶을 만들어가는 그 길 위에 함께 하는 행진러들로 탈핵 운동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다. 그들 틈 어딘가에 나도 "잇-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