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돈암서원 세계 유산 '한국의 서원' 표지판
▲ 돈암서원 세계 유산 '한국의 서원' 표지판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9월 8일, 충남 논산을 찾았다. 논산은 세계 문화유산인 돈암 서원과 명재 고택 등이 있는 유교의 중심지다. 무더운 날씨가 9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금이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라는 친구의 격려 겸 질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강이 나빠지면 여행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입덕문 돈 암 서원의 외문
▲ 입덕문 돈 암 서원의 외문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입덕이란 '덕으로 들어선다'는 뜻이다. 서원에 들어서면 덕을 먼저 깨우쳐야 한다는 의미다. 입덕문의 주춧돌에서부터 해설사 김 선생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맨 처음 기둥의 주춧돌은 사각, 두 번째는 육각, 마지막 하나는 원판을 썼다. 모나게 살지 말고 원만하게 살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돈암 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 시 살아남은 47 개중 한 곳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서원의 정신·학문·사상적 가치와 함께 조선 시대 전통 교육 제도와 교육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이 등재 이유다.

돈암 서원은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액서원이다. 평지에 전학 후묘 식으로 배치했다. 정문인 입덕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으로 응도당과 양성당이 있다. 그 뒤로 사당인 숭례사가 위치한다.

사계 김장생 (1548년 7월 8일~1631년 8월 3일)은 조선의 유학자, 정치인, 성리학자, 문신이다. 문묘에 종사된, 동방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율곡 이이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문하생으로 신독재 김집, 우암 송시열 등을 두었다. 사계전서, 가례집람, 상례 비요 등 저서를 남겼다.

응도당 유생들이 강학하던 강당
▲ 응도당 유생들이 강학하던 강당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응도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이다. 고종 17년(1880)에 서원을 현재의 위치로 옮긴 후, 옛 터에 남아 있던 것을 1971년에 이전하였다. 당시 양성당이 강학의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숲말(논산시 연산면 하임리)에 있던 위치와는 다르게 사당과 직각으로 배치했다고 한다. 강학은 스승과 제자가 문답을 주고받으며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건물 구조를 보면 정면 5칸, 측면 3칸 맞배지붕 건물이다. 옆면에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풍판을 깔았다. 풍판 아래에 눈썹 지붕을 둔 것이 특이하다. 응도당은 예를 실천하는 건축제도의 모델로 제시된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편액 '응도당'은 작자 미상이고, '돈암서원'은 응암 송시열이 썼다. 응도는 중용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고택 등 옛 건물을 찾다 보면 여러 가지 편액이나 주련(기둥에 써 놓은 글귀) 등 현판이 걸려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 뜬 봉사다.

해설사 분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가족 단위거나 한 두 명이 방문한 경우 쉽지 않아 건물 앞에서 인증 사진 찍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유명한 명필가가 쓴 글이라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휴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돈암서원에는 편액과 주련, 비문의 사진과 함께 연대, 크기, 서자 등을 소개하는 안내책자가 비치되어 있다. 비문이나 주련 등은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 원문을 읽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이렇게라도 우리 문화유산을 가까이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싶었다.

돈암서원 1634 년에 창건된 사액 서원. 조선 중기의 유학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
▲ 돈암서원 1634 년에 창건된 사액 서원. 조선 중기의 유학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내삼문 돈암서원 숭례사 내삼문, 둘레는 꽃담장을 쳤다. 담장에는 자부해암 등 12 개의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특이하다.
▲ 내삼문 돈암서원 숭례사 내삼문, 둘레는 꽃담장을 쳤다. 담장에는 자부해암 등 12 개의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특이하다.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응도당 마루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장판각, 숭례사, 양선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판각은 판을 간직하여 보관하는 곳이다. 김장생의 문집인 '사계전서', 김집의 문집인 '신독재전서', 경서변의' 등 책판을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숭례사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주향인 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춘길, 우암 송시열의 위패가 있다. 매년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있고, 둘레는 꽃담장을 쳤다. 담장에는 자부해암 등 12 개의 글자를 새겨놓은 것이 특이하다.

양선당 앞에 세워진 돈암서원 원정비는 돈암서원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다. 비문은 송시열이 , 글씨는 송준길이 썼다. 돈암서원을 세운 배경과 구조, 사계 김장생 부자에 대한 업적 등이 새겨져 있다. 1669년에 세워놓은 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고택이나 누정, 절집 등 곡선과 공간 배치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팔작지붕, 맞배지붕, 용마루, 추녀, 석가래... 우리가 쓰던 단어들이 이제는 낯설게 다가와서다. 일상에서 쓰는 용어들이 사용을 안 하니 어렵고, 어려우니 외면한다.

문화유산 답사는 건물의 구조나 배치를 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 상을 읽을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하는 역사 역사 기행이다. 돈암서원에서는 사계 김장생과 당시 최고의 권력자이기도 했던 응암 송시열 등을 만났다. 다음 행선지인 명재 고택으로 향한다.

주요 지리정보

#논산#돈암서원#사계김장생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