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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연상된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 마주 보며 달리는 형국이다. 어느 한쪽이 방향을 틀지 않으면 정면충돌은 피할 수 없다. 그 결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 끔찍한 장면은 따로 있다. 2000명 의대 정원을 내지른 윤석열 정권과 의사단체가 정면충돌했을 때 매일 접하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살릴 수 있는 응급환자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현실을 매일 전 국민이 지켜보는 비극, 바로 완전한 의료 파국이다.

문제는 의료 파국이 이미 현실화했다는 데 있다. 정치권은 뒤늦게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큼 중차대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유력 신문사 사설들도 하나같이 '여야의정 협의체'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모양새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올해 입시가 확정된 상태에서 2025년도 의대 정원은 양보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반면에 의사단체는 '올해 의대 정원도 논의해야 한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협의체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누구 말이 옳고 누구 말이 틀렸을까? 평범한 시민이 보기엔 올해 의대 정원부터 다시 논의하는 게 옳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미 3000명이 유급된 상황에서 내년 신입생까지 더하면 7000명이 의학을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는 의대 교수들이 다양한 경로로 여러 차례 항변했듯이 의학 교육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일본조차 의대 정원을 2017년까지 10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23% 정도 늘렸을 뿐이다. 윤석열 정권처럼 지방의대 정원을 1년에 73% 이상 늘리는 건 누가 봐도 문제가 크다. 무엇보다 의학 실습을 비롯해 의학 교육 시설 환경이 미비하고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을 가르칠 교수를 단번에 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학 교육 시설이든 교수 양성이든 모든 일은 순차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의료체계가 붕괴해 이미 파국이 현실화하고 있다. 다가오는 한가위 명절 인사가 '아프지 말자'라고 한다. 의료 강국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런 지경으로 추락했을까 싶다. 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응급실 붕괴를 넘어서서 중환자실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윤석열 정권이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정말 살리고 싶다면 의료전문가인 의사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총선 두 달 전 의대 증원 여론을 등에 업고 일방적으로 2000명을 내지른 뒤 '나몰라라' 할 문제가 아니다. 더더욱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을 모욕주고 겁박하며 돈만 밝히는 속물 인간처럼 대하는 태도를 당장 멈춰야 한다.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표현이나 "피를 흘려도 전화할 수 있다면 경증"이라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의 발언은 기가 찰 노릇이다. "군의관 등 대체인력을 투입하고 있다"며 아직도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이는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 수석비서관도 마찬가지다. 현실 인식이 잘못돼 있고 너무 안이하기 그지없다.

의료 파국을 막는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주당 80~100시간씩 노예노동에 시달려 온 전공의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원점에서 재논의하되 합리적인 의사 수 추계 기구를 만들어 의대 증원 여부를 과학적으로 추계해야 한다. 나아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료 노동을 강요당한 전공의들의 노동환경과 처우를 일대 혁신해야 한다. 오직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안전만 보고 점진적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의료시장을 민영화해서 미국처럼 의료빈곤층을 무한대로 양산하는 방식이다.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를 중심으로 의료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길 촉구한다. 의사를 준공무원으로 대우하는 북서유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오늘의 의료 파국을 주도한 보건복지부 장·차관과 교육부 장관에 대해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묻고 경질해야 한다. 그리고 2000명 의대 정원을 고집하며 7개월 동안 전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의료 파국을 초래한 주체인 윤석열 정권 스스로 국민을 향해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극심한 모욕감과 짓밟힌 자존감으로 상처받을 대로 상처받은 의료인들의 상한 마음을 달랠 수 없고 의대생,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9월 7일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2/3(64%)가 의료대란 정부 정책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 파국은 이제 정치권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사가 돼버렸다. 의료 파국이 턱밑을 조여오는 지금 이제 시간이 없다. 어느 보수 논객의 표현대로 윤석열 정권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겨레온>에도 실립니다.


#의료파국#의료공공성#의료민영화#윤석열정권명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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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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