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즈
유신준의 일본정원사 입문기 https://omn.kr/247gv 후속 기사 1편에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 마자 할배가 현관 앞 그늘에 대자로 눕는다. 잠시 후 숨소리가 정연해진다. 몸이 피곤하니 금방 잠이 든다. 여든을 눈 앞에 둔 나이. 전정가위 쥘 힘만 있으면 언제까지든 먹고 살 수 있다는 게 정원사의 장점이라지만 나이는 속일수 없는 거다.
잠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짠하다. 어제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목소리까지 변해서 깜짝 놀랐었다. 괜찮냐고 물으니 걱정 말란다. 나이에 지지 않으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고 있는 할배를 존경한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 여유로운 시간
할배가 깰세라 살금살금 뒷마당으로 도구들을 옮겼다. 뒷마당에는 3미터가 넘어보이는 코니파 두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코니파는 상록 침엽수의 총칭이다. 정확히는 에레강테시마와 챠보히바가 각각 한 그루씩이다.
뒷편으로 철쭉도 몇 그루 보인다. 오후 작업으로 만만치 않은 양이다. 어느새 깨었는지 할배가 왔다. 코니파 가리코미는 이 땅에서 너를 따라올 자가 없다며 추켜세운다. 노련한 할배. 일 시킬 줄 안다.
코니파 원통형 가리코미 작업은 아래서부터 둥글게 깎아 올라간다. 둥근 면을 정확히 감지하는 조형 감각이 필요하다. 일단 손이 닿는 곳까지 바리캉으로 밀면서 돌고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사다리를 세우고 위쪽을 마무리한다.
상단의 돔형 마무리는 이 작업의 핵심이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이니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 정성을 들인 만큼 솜씨가 돋보이는 곳이다. 내려와서 살펴보니 방금 낳은 달걀처럼 매끈하게 잘 빠졌다. 흡족하다. 정원사들은 이런 맛에 전정가위를 놓지 못하는 것일 게다.
할배는 앞쪽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는 정원 작업의 시작이며 끝이다. 잘 다듬어 놓은 정원수들은 깔끔하게 청소된 바닥을 배경으로 서 있어야 비로소 빛이 난다. 정원 작업의 마무리는 청소에서 결정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무리 청소에 정성을 들이려면 시간이 걸린다. 정성들인 시간만큼 결과가 섬세해지기 때문이다. 섬세함이 곧 품질인 거다. 섬세한 정성은 시간으로 환산된다. 시간은 돈이다.
결국 정원에 얼마나 비용을 들이느냐가 정원 품질을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아무리 정원사가 출중한 실력을 지녔더라도 그걸 제대로 발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건 여유로운 시간이다.
정해진 예산이 적으면 그럴 여유가 없다. 정원의 품질을 최종 결정하는 중요한 청소가 시간에 쫒겨 대충대충 끝나게 된다. 마무리가 잘못되면 작업 품질이 떨어져 버린다. 정원주도 그걸 안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원 작업에 청소 클레임이 없다.
작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즐거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자동차 엔진이 꺼지고 서로 수고했다는 말로 고된 하루를 마무리한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워부스로 직행해서 땀투성이 작업복을 벗어 던진다.
하루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면 샤워를 마치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선풍기 앞에 앉았을 때일 것이다. 작업 현장에는 한 점도 없던 바람이 한꺼번에 떼거리로 몰려온다. 인간의 기술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꿀맛같은 휴식. 이 맛에 고된 정원 작업을 계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삽목 배양실을 완성하다
한 달 걸러 한국을 오가고 있다. 지난 달에는 한국에 머물면서 중고 하우스 파이프를 얻어 작은 삽목 배양실을 완성했다. 조경사 자격 때문에 뒤로 밀린 삽목 작업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준비중이다. 조경사 자격을 따고 지난해 일본에 건너오게 된 계기가 삽목 공부를 시작하면서였다. 결국 돌고 돌아 처음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된거다.
왜 다시 삽목을? 정원사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건너오니 할 일이 없었다. 일본은 정원 없는 집이 없지만 한국은 정원 있는 집이 드물다. 금수강산 천지가 정원이니 구태여 집안에 정원을 만들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정원 타령이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삽목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된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도서관 가는길 옆 하우스에서 삽목 전문가 아카시씨를 만났다. 30년 동안 삽목 사업으로 일가를 이룬 삽목 달인이다. 그의 하우스 안에는 수천 본의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고 있다.
요즘은 진초개(천리향)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번에 순을 따서 물올림하는 걸 봤는데 한 달 만에 뿌리를 잡았다. 포트마다 비료를 두 알씩 올려 준다. 파릇파릇 천리향 어린 묘들은 올 가을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작은 생명들의 웅성거림이 있는 이곳이 나는 좋다.
일이 없는 날은 아카시씨에게 삽목을 배운다. 그는 바쁜 일과 중에도 귀찮아 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가르쳐 준다. 아카시씨를 보고 있노라면 삽목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시도 쉬지 않는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다. 얼굴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면서도 삽목장을 떠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일만 하느냐고 물었더니 내 손을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생명들이 아직 많아서란다. 신의 손이다.
나는 이곳에서 인복이 많은 사람이다. 요시다 선생 표현을 빌리자면 호박이 세트로 굴러들어 온 특별 케이스다. 정원사면 정원사, 디자인이면 디자인 선생에 삽목 달인까지. 물론 현실을 타개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내 노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노력한다고 세상 일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던가.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 깊이 감사할 일이다.
어렵게 배운 정원사 일이 한국에서 쓰임새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이었다. 돈이 많으면 삶이 물질적으로 더 풍성해지겠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덜 쓰면 된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내 삶의 목적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삶의 즐거움을 찾는 일이다. 이 길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려 한다. 새로운 시도는 늘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