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일요일 오후, 영암 도갑사는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했다. 툇마루(광제루 회랑)에 앉아 여름비에 촉촉이 젖는 대웅보전 절마당을 바라보고 있자니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월출산을 배경으로 선 느티나무와 석탑, 절마당을 수놓은 연등과 풍경소리! 어느새 나를 다독이는 그림이 되어 위로하는 듯했다. 소박하고 한적한 이 풍경은 오랜동안 나의 고단함과 피로를 사라지게 하리라.
우연히 방문한 도갑사는 나중에 알아보니 엄청난 절이었다. 천년고찰로 신라 말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마당 한가운데 있었던 느티나무, 숙종 8년(1682)에 제작되었다는 5M 길이의 수조, 고려시대 5층 석탑, 미륵전의 석보여래좌상(보물 제89호)까지.... 아는 게 없어 보이지 않았던 많은 문화유산을 좀 더 세밀히 보지 못한 아쉬움이 크게 밀려온다.
특히 도갑사 석조여래좌상은 원래 실외불상이었는데 더 잘 보전하기 위해 전각을 세워서 실내 불상이 되었다고 한다. 여느 실내 불상이 대부분 금으로 만들어진 것과 다르게 석불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절마당에서 중층으로 보이는 대웅보전에 들어가니 내부는 통층이었다. 고개를 높이 들어 천장을 살피고 석가모니부처님을 바라보았다. 그 자애로움이 전해져 다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석가모니불만 주불로 모신 '대웅전'과 달리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과 다른 부처님을 함께 모신 곳이라 한다.
우리나라 사찰 중 중층 전각은 법주사 대웅보전, 마곡사 대웅전,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 4개뿐인데, 도갑사 대웅보전은 2009년 복원되면서 중층 전각이 되었다고 한다. 두 손 모아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우리 가족의 명훈가피를 빌며 감사 기도를 올렸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남도 답사 1번지로 등장한 도갑사 해탈문! 그곳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이 해탈문을 통과해 해탈, 굴레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정으로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며 해탈의 뜻을 새삼스레 되새겼다.
몇 번의 답사 기행으로 얻은 짧은 지식으로 해탈문의 앞면 3칸, 옆면 2칸, 주심포 양식(측면은 다포양식)을 확인해 본다. 맞배지붕인 해탈문은 국보 제50호로 기둥양식이 유일하다고 한다. 내부에는 코끼리와 사자를 타고 있는 동자상(보물 제1134호)인 보현동자상(실천을 상징)과 문수동자상(지혜를 상징)이 있는데, 모조품으로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해탈문을 지나 녹음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니 도갑사 탐방로라는 푯말이 보인다. 개울을 잇는 아치형 다리(옥룡교)와 폴짝폴짝 뛰고 싶은 징검다리, 그 너머 물빛으로 빛나는 수국 꽃밭! 보슬비 내리는 인적이 드문 이 길을 계속 걷고 싶었다. 우연히 들른 도갑사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감사하다.
되돌아 해탈문을 향해 도갑사 쪽으로 올라오니 풍경이 아까와는 달리 보였다. 여름을 알리는 배롱나무가 비에 젖어 운치를 더하고 그 너머 광제루(두루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2층 누각)가 길게 이어졌는데 무엇보다 광제루에 자리 잡은 '월출산 갤러리'가 숨은 보석인 듯 인상적이었다.
월출산을 그린 그림들 사이로 갤러리 창을 통해 보는 바깥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잠시 넋을 잃고 빗 속의 배롱나무의 액자적 풍경에 빠져드니 폭염 속이지만 정신이 맑아지고 가슴이 시원해졌다.
영암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월출 미술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는 도갑사 월출갤러리! 연중 쉬지 않고 365일 때마다 새로운 주제로 작품을 전시한다니 도갑사를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게다가 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흰둥이 강아지 '보리' 덕분에 30분을 광제루에 더 머물렀다. 처음 보았는데도 나에게 고개를 부비대며 친근함을 표현하는 어린 강아지 '보리'가 정말 귀엽고 예뻐서 한참 쓰다듬었다. '보리'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절에서 잘 지내기를 축원했다.
사찰에 들어서 법당을 향해 들어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누하진입(樓下進入)과 우각진입(隅角進入)이 있는데 '누하진입'은 누각 아래 통로로 들어가는 것이고, 우각진입은 누각 옆의 길로 들어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광제루는 누하진입하는 통로이다.
호남의 금강산이라 일컫는 월출산의 도갑사 탐방은 선물 같았다. 도갑사에서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영암의 군립하정웅미술관으로 향했다.
영암군립하정웅미술관, 문외한인 나에게는 낯선 화가였던 그의 이름이 이렇게 멋지게 고급스럽게 내 안에서 살아나다니! 한 사람의 기증으로 설립된 공공미술관, 하정웅미술관을 돌아보며 메세나의 뜻(기업이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을 새겨 보았다.
재일교포 사업가 하정웅(1938~)이 기증한 미술품이 4,500건이 넘는다고 하니 그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오랜동안 고향을 떠난 성공한 이의 꿈이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을까. 이곳 영암을 위해, 조국을 위해 발휘한 그의 선한 영향력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하정웅 컬렉션은 1년에 4차례 씩 기획전을 연다는데, 이번 전시회(7/23~9/30) 주제는 '고귀한 나눔'이었다. 그의 전시품을 돌아보며 마음을 채우는데 특히 강철수 화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야기'(2010, 캔버스 유채)라는 그림 앞에 한참 서있었다. 오누이와 엄마, 검정고무신과 단발머리, 모락모락 가마솥의 김과 아궁이의 따스한 불빛 그리고 강아지까지! 비록 고단하고 어둑한 그 시절 부엌이지만 따스함과 정겨움이 한가득 둘러싸여 있었다.
이 감동이 이어져 여행 후 며칠 동안 강철수 화가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남도의 빛'이나 '미완의 꿈' 등 나를 움직이는 그림들이 많이 있었다.
미술관 바로 옆에 있는 영암도기박물관도 방문했다. 국내 첫 고온 유약 그릇이 이곳 영암 구림도기였다니 그 의미가 남달랐다. 특히 36년 만에 영암으로 귀환한 영암 구림도기의 가치와 품위를 많이 알리고 있었다.
구림도기는 8~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온으로 유약을 발라 구워낸 그릇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작품으로 첨단기술과 창조적인 생각이 빚어낸 것이라 평한다. 고려 '시유도기', 조선 '옹기'와 청자, 분청, 백자 같은 고온 유약 도기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영암군은 1987년 사적 제338호인 군서면 구림도기가마터 발굴을 이화여대박물관에 의뢰했는데, 이때 입넓은납작병·대형항아리·주름무늬병 같은 그릇도기와 기와·토관 등 생활도기를 발견해서 이 가마터 일대가 대규모 생활도기를 생산했던 산업단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밖에 소소한 일상의 생활 자기를 빚는 작가들의 작품도 풍성하게 볼 수 있어 자기의 쓸모, 아름다움, 빛깔, 우아함, 그들의 수고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비가 내리기 전 오전에 들른 영암의 전통천연염색활동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쪽을 원료로 한 천연염색, 폭염 아래 물들이고, 주무르고, 빨고, 널고, 다시 거둬 빨고 널고. 그렇게 마련한 스카프와 고쟁이가 하늘빛과 어울려 더 파랗게 쪽빛으로 하늘거렸다. 이곳은 친구들이 모여 함께 체험하고, 함께 놀이하고, 함께 웃을 수 있어서 더 좋은 시간이었다.
호남의 금강산이라 일컫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월출산이 있는 영암, 도갑사의 품에 폭 안겼다가, 미술관과 박물관에 푹 빠졌다가, 쪽빛 천염염색에 흠뻑 물들다가 하루를 보낸 행복한 발걸음, 영암 여행을 마무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채택 후 개인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