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엄마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얼마 전에 수영장에서 팔이 안 움직여서 혼났어."
최근에 이런저런 증상으로 병원에 다니는 게 일상이 된 엄마가 말했다.
"병원은?"
"병원 가서 물리치료받았더니 조금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도 안 좋아. 그래서 이번 추석에 음식 하기 힘들 거 같은데, 간단하게 고기나 구워 먹자. 그럼 반찬은 별로 없어도 되잖아."
"엄마가 간단하게 먹자고 얘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닌 거 같은데요? 지난 번에도 간단하게 먹자더니 고기에, 잡채에, 굴비에, 홍어무침에 나물 몇 가지에... 기억 안 나서 못 내놓은 게 있을 정도였잖아."
엄마는 몇 해 전부터 몸이 좋지 않다며 명절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래놓고는 막상 명절이 가까워지면 하루에 하나씩 미리 만들어 두면 된다면서 한 번씩 맛만 봐도 배부를 정도의 음식을 내놓았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나는, 몸 아프니 하지 말라고 말렸던 건 모두 잊고 행복해하며 먹어치우곤 했다. 언니네 가족 4명, 우리 가족 5명, 동생네 가족 4명과 그 외 친척들까지 20여 명이 엄마가 만든 명절 음식을 먹는다.
엄마는 그날 먹고 난 후 싸갈 것까지 넉넉하게 만들어서 우리는 엄마가 싸준 음식으로 며칠간 반찬 걱정 없이 지낸다.
엄마는 젊었을 때 한복점을 하셨다. 언니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어린 삼 남매를 키우기 위해 한복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그 당시(80~90년대)에는 명절이나 잔치 때 한복을 맞춰 입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마는 명절이 가까워지면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밤을 새우기도 하면서 일을 했다. 그리고 명절이 되면 남편 없는 시댁에 가서 음식을 만들었다.
엄마한테 명절은 힘든 기억이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명절이 싫지 않았어?"
"명절엔 일이 많은 만큼 돈이 많이 들어와서 좋았지. 너희들 새 옷도 사줄 수 있고. 할머니댁 가서 일하는 것도 사촌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지금은? 솔직히 음식 하기 힘들지?"
"아니, 엄마는 재밌어. 엄마가 너희들한테 해 줄 게 있다는 게 좋아."
엄마가 명절이면 이렇게 많은 음식을 만드는 건 엄마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조금은 당연하게 그 음식들을 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의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마요. 우리 그냥 외식해요."
"그래도 될까? 사위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나는 결혼한 지 20년째이고, 언니는 결혼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다. 그런데도 아직 엄마한테는 사위가 손님인가 보다. 나와 언니는 명절에 시댁에 가면 일꾼인데 말이다.
나는 명절 전날 시댁을 가서 음식 준비를 돕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명절을 보낸다. 결혼 초반에는 명절 전날부터 명절 당일까지 시댁에서 보내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편과 시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댁에는 우리가 아니면 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하지 못했다. 엄마도 결혼했으면 명절에 시댁을 먼저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셨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정 식구들과는 명절 다음날에 모이는 걸로 정해졌다.
"엄마, 사위들은 자기 엄마(시어머니)가 해 준 거 먹고 오니까 괜찮아. 내가 조금 아쉽긴 한데, 그냥 외식해요."
"그럴까? 지난번에 이모랑 갔던 식당 괜찮던데 예약되나 알아보자."
그렇게 몇십 년 만에 엄마는 명절 음식에서 해방됐는데, 내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며칠 뒤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추석 때 식당에서 바로 갈 거 아니지? 엄마가 겉절이, 열무김치랑 밑반찬 몇 가지 해놨다. 집에 들러서 싸가."
"아이고, 엄마. 팔 아프다며!"
"이 정도는 괜찮아."
이번 명절에는 간단하게 먹자고 했던 말처럼 괜찮다는 말도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엄마가 만들어 준 반찬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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