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은 그 쓰임새가 주로 날것 보다는 바람에 말려 굳어진 건어물로 소비되는 대표적인 해산물 중 하나다. 바닷가는 물론 육지의 깊은 산속에서도 생일이면 으레 말린 미역을 물에 불려서 손쉽게 끓인 미역국으로 생일의 의미를 함께 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식생활 문화와 깊게 관련한 소중한 식재료다.
1920년 7월 31일자 중복일(中伏日), 1921년 7월 16일 복날(伏日) <동아일보> 기사에는 미역의 쓰임새를 시원한 물이 흐르는 물가 산신에게 기도를 위한 제수 용품으로 쓰인다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생일상 미역국으로 소비되기 보다는 제수용품 중 하나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26년 6월 4일 <조선일보>는 '산파 청할 수 없는 산모의 복음'기사에서 총독부 조산부과를 졸업하고 종로 청진동에서 전치의원(全治醫院)을 운영하는 리남재씨의 선행사례를 소개하며 "~ 더욱이 한 되의 쌀과 한 조각 미역조차 준비치 못하고 남의 집 젓방에서 해산하는 부인의 그 슬픔을 동정하는 뜻으로~"라는 기사를 썼는데 이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당시 미역국은 아이를 낳은 산모의 해산을 위한 음식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의 뒷받침은 1928년 12월 23일 <동아일보> '다시마와 미역은 불로장수의 약' 기사에서 당시 다시마와 미역 등 해초류의 섭취가 부족함을 주장하는 기사에서 "~ 집안에 해산한 사람이나 있어야 미역국 혹은 미역 반찬을 흔하게 먹게 되는 모양입니다"를 통해서도 당시 미역국은 생일자보다는 주로 산모의 해산을 위한 음식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미역국은 주로 아이를 낳은 산모의 회복을 돕기 위한 음식으로 활용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생일자를 위한 음식으로도 사용된 듯 보이는데 <조선일보>의 1938년 3월 6일자 동화 <똘똘이방송국>과 <동아일보> 3월 19일자 '돌상 차리는 법'에서 생일상에 미역국이 올라가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1938년 5월 11일자 동아일보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첫날 저녁상에도 미역국을 올린다는 내용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생일날 미역국은 오늘날까지 우리 생활에 소중한 식문화의 하나로 정착되어 왔다.
결국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일날 미역국은 케이크와 함께 당연한 음식이 되었다. 즉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의 의례를 통과하는 의식과 같은 의미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점차 간단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네 어머니가 만들었던 그 조리법은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미역국 레시피를 검색하면 거의 대부분이 ① 짧게 자른 마른미역을 물에 불리고 ② 고기와 함께 참기름(또는 들기름)을 넣고 볶다가 ③ 적당량의 물 또는 쌀뜨물을 넣고 끓이다 ④ 마늘과 간장으로 간을 하여 마무리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레시피는 대한민국의 한식을 국내외에 소개하는 한식진흥원은 물론 농촌진흥청 등 정부 기관의 공식적인 요리 정보에서도 위와 같은 방식의 간단한 미역국 조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역국 레시피는 우리 전통의 조립법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록에 의하면 "미역국을 끓일 때는 먼저 양지머리나 사태살을 푹 곤 뒤 여기에다 깨끗하게 빨아 부드럽게 불린 미역을 넣는다. 간은 간장으로 맞추고 참기름을 약간 넣는다"고 소개한다. 즉 인터넷 레시피와 비교하면 만드는 방법의 순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① 소고기를 삶아 고아낸 육수에 ② 물에 불린 미역을 넣고 끓이다 ③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다 ④ 삶아낸 고기를 손으로 찢어 깨소금과 고춧가루로 양념한 뒤 ⑤ 그릇에 담은 미역국 위에 고명으로 얹어낸다"와 같다. 이 중 ④번과 ⑤번의 과정 설명이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조리법은 필자의 어머님께서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과 집안 어르신의 생일마다 접했던 생일상 미역국 조리법과 동일하다. 즉 미역국의 최고봉은 역시 양념 된 소고기 양지머리 고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린 시절 접했던 미역국의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점차 간편한 미역국 레시피가 일반화 되면서 조리 과정은 생략되고 조리의 편리성만 강조된 연유다.
필자의 부친은 식구 중 누군가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퇴근길에 동네 정육점에 들러서 국거리용 소고기 양지머리를 사오셨다. 어머님은 다음날 아침 일찍 그날의 생일자를 위해 미역국을 준비했는데 그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제법 많은 시간과 노동이 요구되는 방법이다.
경기도 포천, 김종선 여사의 미역국 끓이는 법 |
① 찬장에 보관해 놓았던 생일 미역을 꺼내 물에 불린다.
② 양지머리를 맑은 물에 한 번 씻은 후 곰솥에 넣고 끓인다.
③ 불린 미역을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른 뒤 물기를 뺀다.
④ 곰솥에서 잘 삶아진 양지머리를 꺼내 식혀둔다.
⑤ 양지머리가 고아진 곰솥의 끓는 물에 미역을 넣고 끓인다.
⑥ 식은 양지머리는 손으로 찢어 고명으로 양념할 그릇에 따로 담아둔다.
⑦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간장, 참깨, 쪽파 등 갖은 고명 양념을 준비한다.
⑧ 손으로 찢은 양지머리에 준비한 고명 양념을 넣고 간을 맞춘다.
⑨ 곰솥의 미역국에는 빻은 마늘과 국간장으로 최소한의 간을 한다.
⑩ 그릇에 미역국을 담아내고 그 위에 양념 된 양지머리를 고명으로 올린다. 실고추 몇 가닥을 함께 올린다. |
이처럼 필자가 아는 미역국은 어머니의 노고와 생일자를 위한 정성이 들어간 특별한 날에만 먹는 그런 음식이었다. 특히 양념 된 양지머리 고기 고명의 맛은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손맛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가 먹을 수 있는 미역국은 간소화되고 일반화된 레토르토(retort pouch) 미역국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인터넷에서 일반화된 미역국 조리법은 너무도 간단하게 소개되고 있다. 물론 전통의 조리법이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 다소 복잡한 과정이 요구되는 방법일지라도 생일은 소중한 기념일인 만큼 제대로 된 미역국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 오히려 필요치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