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으로 35세 이상부터는 고령 산모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노산이다. 첫 출산의 평균연령이 이미 33세에 이를 정도로 출산 연령이 높아진 마당에 35세라니. 당연하게도 전체 산모의 무려 3분의 1 정도가 노산이다. 효과적인 피임 방법이 발명되기 전까지 대다수 문화권의 여성들은 대략 18~20세에 첫 임신을 시작했다. 임신, 출산, 육아가 현대인에게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한 가지는 우리의 생물학적 나이일 것이다. - 46p
엄마와 나는 같은 토끼띠로 띠동갑이다. 엄마 나이 스물다섯에 나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나도 스물다섯 살 때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막연히 꿈꾸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사랑하는 남자는커녕 우정 어린 여자 친구들도 만나기 쉽지 않았던지라 20대를 쓸쓸하게 보내왔다. 그래서인지 삼포세대라는 말처럼 나는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뇌리에서 지워간 채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왔다.
작가의 말에도 나오지만, 워낙 출산율이 바닥을 치기도 했고, 전체 산모의 3분이 1이 노산이라고 한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출산을 안 한 기혼도 많고 미혼도 꽤 많이 보인다. 통계수치가 그저 문서화 된 숫자가 아니라 실제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의 의료대란을 보면 진짜 이런 나라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의문이 든다. 당장 내가 다치고 아플 때 치료받기도 힘든데 아이는 더 발을 동동 굴러야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데...
그리하여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노산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내가 정말 궁금했던 노산의 실질적인 과정이나 방법이 나와있지는 않다(분량도 많지 않아서 가볍게 읽기 좋다).
임신이 어렵다는 판정을 받은 작가가 시험관 시술로 너무나도 쉽게 마흔에 첫 임신을 하고 마흔이 훌쩍 넘어서 의도치 않게 또다시 임신을 해서 겪게 되는 육아의 고충이 주된 이야기이다. 레즈비언 친구인 유화의 꿀벌 육아와 대비해서 이야기를 전개해내간 점도 독특하고 재밌었다.
생각해 보면 모성은 따듯하고 관대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외로움과 결핍을 베이스로 한 두려움과 설렘이 있고, 긴장과 각성을 요구하며 방어력과 초인적인 힘이 필요한, 야만적이고도 파괴적인 강력한 감정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나와 내 새끼를 지킬 수 있다. - 43p
사실 강아지만 키워봐도 매일 산책시키기도 쉽지 않고 생명체를 보살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후우울증으로 뉴스 면을 도배하는 아기 엄마도 있으니깐. 게다가 각종 혐오로 얼룩진 한국사회에서 주거지나 사회적 지위로 차별과 배제가 횡행하는 현실과 높은 사교육비는 여러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엔 은근히 딩크족도 종종 보인다. 나는 미혼이라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산간벽지 생활이 좋아도 병원 때문에 도시로 나가 산다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노산이든 늦은 나이에 육아든, 결국 그걸 헤쳐 나가는 길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밑바탕은 바로 충분한 대화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 불안함, 부담감을 함께 털어놓고 이야기 나누고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함께 찾아 나갈 때, 동지애도 싹트고 따스한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쌔근쌔근 잠자는 아기천사와 함께 모든 걱정과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게 바로 가정이 주는 안정감과 행복감이란 생각이 든다. 노산이든, 딩크족이든, 미혼이든 각자의 선택과 상황이 있지만, 모든 이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따뜻한 가정을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
잠든 태랑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인간이 천사를 상상할 때 왜 날개를 단 아기를 그리는지 알 것 같았다.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신비한 존재에 대한 찬사일 것이다. 나는 태랑의 작은 손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다가 급기야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춘다. 아이가 내쉬는 달큼한 숨 냄새를 한껏 맡았다. 태랑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 3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