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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싶은 밴드가 있다. 예술가, 그것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라면 응당 사회적 시선이나 가치관을 담아내야 한다는 시선이 있지만 소소한밴드는 이런 것보다 생활 속의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누기로 했다.멤버 각자가 머릿 속에, 마음 속에 담아둔 이야기, 나에게 정말 중요한 이야기, 일상에서의 경험에다 노랫말과 멜로디를 붙여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연다. "소소한 일상을 노래하지만 적어도 음악은 소소하지 않다는 이야길 하고 싶은" 구례에 귀촌한 소소한밴드의 멤버 짓다, 라윤, 태준을 만났다.[기자말]

 왼쪽부터 소소한밴드의 태준, 라윤, 짓다
 왼쪽부터 소소한밴드의 태준, 라윤, 짓다
ⓒ 임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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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밴드 멤버를 소개합니다

태준 : "기타만 합니다." 소소한밴드에서 기타를 메인으로 연주하지만, 때때로 보컬을 한다. 스무 살 이후로 소소하게 밴드 음악을 연습하다 삶의 전환을 위해 구례로 이주했다. 짓다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짓다&라윤 부부의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또래라는 걸 알고 더 가까워졌다. 언젠가 아이리쉬 음악을 하는 날을 꿈꾸지만 소소한밴드에선 안 될 것 같다고 믿는다.

라윤 : 셰이커와 멜로디언, 보컬을 맡고 있다. 방구석 뮤지션이었지만 꾸준히 공연을 하던 짓다의 연습실에 따라다니면서 '풍월 읊는 서당개'가 됐다. 앰프에 악기를 연결해 연주하는, 소위 '꽂고 하는' 음악보다는 마음의 이야기를 담은 내추럴한 음악을 추구하며 이제는 다양한 음악을 깊이 즐길 수 있게 됐다. 밴드 세션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 건반을 살지말지 고민하고 있다.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라 소소한밴드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가장 많이 이해하는 멤버일지도 모르겠다.

짓다 : 부산의 인디씬에서 오랜 기간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소소한밴드에서 퍼커션, 카주, 하모니카 등 리듬을 담당하며 통기타, 베이스, 일렉 기타 등 멤버들이 '시키는 대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지만 잘해내기는 아직 쉽지 않다. 임용고시를 핑계로 라윤과 함께 구례에 정착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구례에서도 밴드 활동을 했으나 팀에서 나와 태준, 라윤과 '소소한밴드'를 만들었다. 언젠가 제대로 된 레게 음악을 하는 날을 꿈꾸지만 소소한밴드에선 안 될 것 같다고 믿는다.

 소소한밴드의 태준
 소소한밴드의 태준
ⓒ 임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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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팔자에는 어쩔 수 없는 시골살이

음악 뒤편엔 일상이 있다. 모여보니 멤버가 모두 대학원 경험이 있었다. 대학원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들에게는 대학원으로부터 도망쳐 돌고돌아 정착한 곳이 시골이었다는, 그리고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은 음악이었다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다채롭고 소박한 삶을 꿈꿨던 세 사람이 모여 구례에서 음악을 하고 있다니, 음악 뒤에 있는 멤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태준은 학교를 '좀 길게' 다녔다. 자기 시간도 없던 대학원 생활은 졸업한다고 해도 취업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았다. 의미있는 공부,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원의 조직문화 안에서 불안감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답답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려 귀촌을 결심하게 됐다. 7년 전의 일이다.

태준: "엄청 고민을 하다가 그때 시골 가서 목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구 만드는 곳으로 목공을 배우러 다니기도 하고 회사를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휴가 받으면 혼자 지리산둘레길을 몇 번 걸었거든요.

그러면서 이 마을 좋네, 뭐 이런 데 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다녔었죠. 마침 아내도 시골살이에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서 자주 지리산권을 다녔어요. 구례를 많이 온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구례까지 오게 됐네요."

태준의 전공은 환경 생태학이다. 음악 외에 일상의 중심을 가져가는 일은 생태조사와 연구에 있다. 인터뷰 당일에도 함양으로 식생 조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구례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불리는 구례의 심원마을 식생 복원 과정 모니터링을 지속해왔고,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활동, 우리나라 토종 비둘기이자 멸종위기종인 화엄사 낭비둘기 모니터링 등 삶터 반경의 산과 강에서 생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소소한밴드의 라윤
 소소한밴드의 라윤
ⓒ 임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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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나서 결혼한 라윤과 짓다는 밤낮으로 엇갈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혼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어영부영 급하게 직장을 구한 탓이었다. "우리 결혼도 했는데, 밥 한 번 같이 못 먹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왔고, 하던 일들을 그만두고 서로의 시간대를 맞춰보기로 했다.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짓다는 임용고시든 공무원 시험이든 준비하기 위해 어딘가 짱박혀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일상을 잠시 멈추고 라윤의 동생이 있던 구례로 내려오게 됐다.

라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이 양반(짓다)이 여기에 눈을 뜬 거예요. 나는 품팔이만 하고 살아도 좋으니까 여기서 살게, 나는 몸을 쓰면서 살겠어, 하면서요. 공부 안 해! 교사 안 해! 공무원도 안 해! 나랑 안 맞아! 그러더라고요.

땡볕에 풀을 열심히 베고 와도 좋다 그러고, 벌에 쏘여도 좋다 그래서 그때 많이 싸웠어요. (웃음) 그래도 이 사람이 책임감 강하고 성실한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제가 진 거죠. 에라 모르겠다 했어요."

라윤의 동생은 오히려 도시로 돌아갔는데, 라윤과 짓다는 이곳에서의 삶이 싫지 않았다. 품팔이 역사의 시작이었다.

짓다: "품팔이로 시작해서 거기서 알게 된 과수원과 목수 팀을 만나서 목수 일도 몇 년 했어요. 그러다가 임대로 나온 과수원이 있어서 일을 하다가 지금은 과수원 면적이 좀 넓어져가지고 목수 일은 거의 못하고 과수원에 올인을 하고 있어요. (웃음)"

양육자인 세 사람은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마을학교 사업도 담당하고 있다. 보조금 사업을 학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라윤은 대표를, 태준과 짓다는 진행팀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마을 극단, 작곡 수업 등을 하며 가진 능력들을 사회와 나눈다. 시골에서의 삶은 정해진 것도 없이 바쁘다.

라윤: "그런데 도시에서 이렇게 열심히 살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시골에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지?"
태준: "나도 요즘 그 생각 진짜 많이 하지. 우린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짓다: "일단 우리 팔자에는 어쩔 수 없어." (웃음)

 소소한밴드의 짓다
 소소한밴드의 짓다
ⓒ 임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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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소소한밴드는 셋이서 한 팀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완성시킬 수 있는 매체가 되기도 한다. 각자가 자기 스타일대로 만든 노래를 다같이 부르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곡의 초기 콘셉트는 개인의 스타일대로 작사와 작곡을 해오고 다함께 곡의 구성을 논의한다.

태준: "그런데 저희가 음악 스타일이 정말 많이 달라요. 짓다는 레게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할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저는 아이리쉬 음악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하고 있다 말하고, 라윤은 딱히 하고 싶은 음악은 없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 연습할 때 짓다의 <뱃놀이>를 처음 연습하는데 코드는 단순한데 리듬을 못 치겠는 거예요. 이게 지금 읏-따다 인지 따다다 인지... 진짜 음표를 그려가면서 설명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하고. (웃음) 해본 적이 없는 리듬이었어요. 여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라윤: "여전히 그런 짓을 하고 있어." (웃음)

그렇다면 세 사람의 스타일이 합쳐진 음악은 아직 없는 것일까.

라윤: "그래도 저는 반 정도는 합쳐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짓다는 곡을 가져오면 자기가 이미 세팅이 완료된 상태에서 정확하게 나머지 멤버들이 해줘야 할 부분을 요구하는 편인데, 저와 태준은 한 80% 된 걸 던져놓고 같이 만들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혼자 만들었다고 하긴 좀 그렇고 여기서 이야길 들으면서 같이 수정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순서를 바꾸자, 이 부분은 없애자, 박자를 바꾸자 같은 거요. 짓다에게는 주로 가사를 바꾸라고 제가 강요(?)하거나, '노래를 그렇게 부르지 마! (웃음)'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연습할 때가 되게 재밌어요."

음악을 사랑하게 된 세 가지 장면

태준은 고등학교 때까지 남들 좋아하는 음악은 다 좋아하던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아주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너바나(Nirvana)'의 락을 좋아했는데, 태준에게는 시끄럽기만 했고 심지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조그마한 산을 끼고 성균관대학교와 붙어있었는데, 어느날 대학교 축제에 '시나위'가 온다고 해서 친구들 손에 이끌려 따라가게 됐다. 그때가 음악에 빠지게 된 첫 순간이었다고 태준은 똑똑히 기억한다.

태준: "그때 시나위 보컬이 김바다씨였던 때였어요. 막 들뜬 친구들한테 이끌려서 산을 딱 넘어가는데 산 너머 대학 운동장에서 시나위가 공연을 하더라고요.

저는 서울 살면서도 그런 라이브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산을 넘어서 꽝꽝꽝 울리는 그 음악이 너무 새로웠던 거죠. 그땐 사람이 얼마 없어서 무대 앞에서 공연을 보는데 너무 멋있고 너무 좋아서 홀딱 빠졌어요. 그 공연 본 후로 시나위 앨범을 사고, 주말에 기타 연주도 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음악에 대한 사랑은 서울살이를 전과는 다른 것으로 바꿔놨다. 이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서울엔 <수요예술무대>처럼 무료로 진행하는 공개방송이 많았고, 학교가 끝나면 태준은 친구들과 자우림, 박정현 같은 가수들을 보러 갔다. 성인이 돼서도 홍대에서 연습실을 잡고 음악을 만들었고, 가끔 버스킹과 공연을 했다. 일상을 음악에 바치는 '전문 음악인'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다양한 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갔다.

라윤은 팀 활동은 해본 적 없이 혼자서 노래듣기와 가사쓰기를 좋아하던 '방구석 뮤지션'이었다. 그러다 동기의 졸업작품에 악기 소리와 허밍을 넣은 OST 작업을 처음으로 음악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단히 멋지게 녹음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잡음 없는 정도로 만들어진 단순한 음악을 두고 친구와 라윤은 기뻐했다.

라윤: "그냥 음악은 나의 삶인 것 같아요. 밴드 음악, 국악, 외국의 다양한 장르 할 것 없이 어떤 음악이든 다 좋아했어요. 그런데 제가 어디 한 군데에 꽂혀서 집중하는 타입이 아니예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면 잘 시도를 안 하다 보니 특별히 음악 할 생각도 없었죠. 오히려 지금 밴드 활동을 하면서 제 귀가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요."

짓다가 밴드 공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때와 라윤이 짓다와 연애를 시작한 시기가 우연히 맞물렸다. 그때도 바빠서 같이 있을 시간도 부족했던 때라 라윤은 매번 짓다의 연습실에 놀러갔다. 그렇게 7년이나 따라다니다 보니 라윤은 좋은 음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음악을 더 즐길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라윤: "지금 생각하면 엄청 심심했는데 왜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땐 짓다도 합주할 때 말을 안 하는 캐릭터였거든요. 심지어 '꽂는 소리'도 싫어했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연습실과 공연장을 따라다니다 보니 듣는 귀가 생긴 거예요. 아, 여기선 베이스가 좀 작은 것 같고, 여기선 좀 더 살리면 좋겠네 하면서 전체 구성을 듣기 시작한 거죠.

나중에는 멤버들이 저한테 곡이나 연주가 괜찮은지 물어보더라고요.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요. 그러면서 원래 좋아했던 음악이 더 좋아졌어요. 지금도 듣는 연습은 진행 중인 것 같아요."

짓다가 음악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주 친했던 친구가 스쿨밴드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 재밌게 해. 친구가 드럼을 친다고 하고 보컬과 기타를 구했다고 했을 때도 짓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재밌게 해. 그런데 "베이스가 없어서 네가 하면 좋겠다"는 말에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밴드에 들어가게 됐다. "악기는 어떻게 해야 돼?"라는 짓다의 말에 친구는 대답했다. "사와." 베이스가 뭔지는 몰랐지만 짓다는 그날로 덥석 싸구려 베이스를 샀다.

짓다: "베이스를 샀는데 스쿨밴드 3학년 선배들은 졸업을 한 거예요. 가르쳐 줄 사람이 없어서 독학을 했어요. 처음 베이스를 쳤던 기억이 되게 강렬했는데, 2학년 올라가는 봄방학이었거든요. 한 곡 악보를 놓고 베이스, 드럼, 보컬 맞춰서 봄방학 일주일 내내 연습한 거예요. 아침에 9시쯤에 나와서 연습을 하다가 점심 때 컵라면 하나 먹고 연습을 하다가 저녁 5시에 집에 가는 걸 일주일 동안 반복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겠더라고요.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어요. 악기라고는 리코더와 캐스터네츠만 해봤던 상황에서 이 경험이 그 뒤에도 큰 울림이 있었어요. 그때처럼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텐데, 생각도 하고요. 그게 제가 음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짓다가 음악에서 받은 짜릿함은 스무살 때도 이어졌다. 거제도에서 열린 작은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마침 스쿨밴드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은 것. 마치 청춘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다시 한번 고등학교 때의 스쿨밴드 팀이 거제도로 뭉쳤다. 행사 주최 측에게 거제에 있는 한 대학의 동아리방을 연습실로 얻었다. 고등학교 시절과 같은 멤버, 같은 방식의 연습이었다.

짓다: "낮에 각자 일정이 있으니까 저녁에 만나서 산중턱에 있는 학교 동아리방에서 밤새 연습을 하고 그다음날 아침에 나오고. 그다음날엔 오후 일정을 마치고 나면 집에서 자고. 그렇게 1박 2일 퐁당퐁당 일정을 계속 했어요.

그때 또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하다가 잼하다가 운동장에서 뛰어놀다가... 하여튼 젊을 때 했던 기억들이 너무 좋아서 혼자서 음악하는 것보다는 팀으로 하는 걸 선호해요."

짓다의 말을 듣고 있단 라윤이 한 마디를 보탠다. "젊다, 젊어. 우리도 일주일만 합숙하면 정말 잘할 텐데."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클릭 혹은 터치해주세요.)

진행 / 넉넉
글 / 승현
인터뷰 일자 / 2024년 7월 19일

글쓴이 : 승현
지리산 귀촌인 인터뷰집 <어디에나 우리가> 저자.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동력으로 살아간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임팩트 그라운드'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재단법인 브라이언임팩트가 후원하고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기획, 운영합니다.


#지리산음악대#로컬뮤지션#구례#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소소한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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