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4주째 진행되고 있는 자리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피켓이 비에 젖어 찢길 정도의 폭우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딥페이크 성범죄가 공론화 된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을까.
"여성에 대한 모욕으로 돈을 버는 사회를 두고 볼 수 없다."
이날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운영위원 강나연씨는 "딥페이크 성범죄는 마치 빙산의 일각처럼, 우리 사회의 썩은 밑동에서 자라난 열매"라며 "여성을 성적으로 '능욕' 할 수 있다고 믿는 '여성 능욕 문화', 이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의 유통 구조, 무책임한 국가라는 세 축이 성 착취 구조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중 성 착취 자본시장에 대한 비판으로, 며칠 전 10대 3명이 작년부터 유명 연예인으로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제작해 1,000만원 가량을 벌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에 대해 "직접 판매하는 것 뿐만 아니라 텔레그램의 광고 수익화 기능 덕분에 성 착취물 방을 홍보하며 공범자를 계속 양산하는 구조"임을 이야기했다.
민간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사후 대처에만 의존해야 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목소리 내었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찾아가도, 디지털 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가도 방심위의 심의 후에 삭제요청이 진행된다. 플랫폼 기업의 선의에 맡길 것이 아니라, 민간 기관인 방심위가 일일이 삭제요청을 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성범죄에 신속하고 종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설계해야 합니다."
지옥이 된 대학사회를 바꾸려는 움직임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소속의 윤씨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대학 사회 내 2차 가해와 젠더 관점 부재의 현실을 짚었다. 지난주 고려대학교에서 열렸던 딥페이크 성범죄 규탄을 위한 학내 오픈 마이크 행사의 홍보 게시물이 학 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게시되자, 학내 인권 단체들에 대한 공격성 게시물들이 이어지는 일이 있었다.
윤씨는 "생활도서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캡쳐해 비방하는 게시물을 작성하거나, 생활 도서관 홍보 포스터가 뜯기는 등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행동하길, 소리 높여 말하고 분노하길 멈추지 말아 달라. 학교, 일터, 가정이든 여러분의 터전에 돌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라고 소리 높였다.
앞서 발언했던 강씨도 대학 사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이미 대학은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이 되었다"라며 디지털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과 함께 대학 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다시 시작할 것을 촉구하였다.
디지털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은 다음 주 월요일인 23일 저녁 7시, 딥페이크 대학생 집담회 <지옥이 된 대학을 구하라>를 열 예정이다.
'범죄임을 몰라서' 저지르는 딥페이크?
문제는 잘못을 앎에도 허용하는 온라인 남성 문화
참가자 김수진 씨의 발언도 이어졌다. 김씨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딥페이크 성범죄가 '기술 발전'에 의한 것이라며 정부의 책임을 회피한 것과 ,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과잉 규제가 우려된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딥페이크 성범죄의 원인을 기술의 폐해처럼만 얘기하는 것이나, 기술의 중립성을 주장하며 탈정치화하는 쪽이나 모두 허상이고 기만"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견고한 온라인 남성 문화에 적극적인 개입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 년간 온라인 남성문화를 연구하며 여러 의미로 인상 깊었던 점은 디시, 일베, 인터넷 방송 등 이른바 남초 커뮤니티 참여자들이, 자신들이 '놀이문화'라고 여기는 것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결코 모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혐오로 공고해지는 남성연대의 권력에 대항하는 적극적 개입이 필요합니다."
성차별 세상을 더 이상 물려주고 싶지 않은 여성들
청소년 시절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미투운동 등의 '페미니즘 리부트 물결'과 견고한 성차별적 사회 문화를 동시에 겪었던 여성 참가자들도 이날 발언하였다.
현재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최수인씨는 발언문 대독을 통해 "중학교 1학년일 때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났고, 중학교 3학년일 때는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N번방 성 착취 사건이 공론화되었다"라고 밝히며, "성인이 되었을 때 살아가야 할 나라가 불법 촬영과 성폭력이 일상적이고, 온라인에 올린 사진이 어떻게 합성되어 돌아다닐지 모르는 나라라는 것이 절망적이었다"는 말로 발언을 이어갔다.
그 해답으로 "한국을 떠나 좀 더 나은 나라에서 능력을 쌓는 것"이 목표이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여성 해방을 위해 함께 싸우는 사람들 곁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마음먹었다"라며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포기하지 말고, 한국을 더 나은 사회로 바꾸자"라고 촉구했다.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주씨도 학창 시절 가정과 학교에서 겪었던 부조리한 성차별 경험에 대해 언급하며 "정부는 남성 문화와 폭력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이어 "그럼에도 난 이 자리에 서 있고, 다친 나를 붙들기로 다짐했다"라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민변 여성위, "가해자의 적극적 동조자로 변한 변호사 시장,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법조계의 성범죄 방관과 동조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의 최새얀 변호사는 "디지털 성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며 잡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고 말하던 수사기관, n번방, 박사방의 '관전자'들을 솜방망이 처벌한 법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국가적 재난에 이르는 현 딥페이크 사태에서조차 '가해자의 감형'을 팔아 돈을 벌며 이윤을 챙기는 변호사 시장의 상황은 "더 이상 직업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선해할 수 없는 딥페이크 가해자의 적극적 동조자의 모습"이라고 목소리 내었다.
"우리는 성차별적 문화를 전복시킬 근본적인 법적 대책을 요구한다. 그 시작은 단연 딥페이크 성폭력 전반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다. 디지털 성폭력의 근절은 형사체계 전반의 재고를 요한다. 단서를 발견한 순간부터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대응할 권한과 책무가 명확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시끄러워지면 주범에게만 중형을 선고하고 동조자, 참여자들에게는 벌금형 위주로 선고되고 마는 양형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법조계 또한 변호사들의 위법한 영업행위를 방관하지 말고, 변호사의 윤리적 직무수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며 사법 질서 회복을 위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어지는 순서로는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라는 국가적 사회 재난의 원인이 되는 국가와 사회 각 영역의 문제들이 비처럼 쏟아질 때, 우리들의 연대의 우산을 펼쳐 이것을 막아내고 올바른 해결의 길을 만드는 희망의 목소리를 담은 '우산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은 텔레그램, 언론, 교육 당국, 경찰, 국회, 사이버렉카 등의 키워드가 적힌 상자를 우산을 향해 던지고, 우산으로 이것들을 막으며 딥페이크 성범죄에 책임지지 않는 주체들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모았다.
성범죄 방조하는 텔레그램 규탄한다!
성평등 교육 축소하고 폐지한 교육 당국 규탄한다!
못잡는다 변명하는 경찰 규탄한다!
구조적 성차별 부정하고 디지털 성폭력 대응 예산 삭감한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성별 갈라치기로 사건 왜곡하는 이준석 국회의원 규탄한다!
정부 책임 아니라며 책임 회피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규탄한다!
공동행동은 다음 주 27일에도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말하기 대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은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강남역에서 말하기대회를 이어갑니다.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소식 보기]
서울여성회 인스타그램 @seoulwom
서페대연 인스타그램, 트위터 @seoulfemi
[딥페이크 성범죄 OUT 공동행동 단체/개인 참여신청 링크]
https://bit.ly/deepfakeout
[딥페이크 성범죄 OUT 대학생 공동행동] 단체/개인 참여신청 & 9/23(월) 대학생 집담회 [지옥이 된 대학을 구하라] 참가신청 링크
신청링크 :
https://bit.ly/deepfakeout_un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