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계산대 이용 방법을 아시는지. "계산대 이용 방법? 그냥 물건 올려놓고 돈 내면 되잖아?"라고 반문하는 법이 많으실 것 같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레일에 구매하려는 상품을 올려놓고 계산원이 바코드를 다 찍으면 원하는 결제 수단을 제시하고 포장대에서 물건을 챙겨 가면 된다. 사족인 것 같은 이 설명을 굳이 문장으로 옮긴 까닭은 그만큼 안 지키는 분들이 흔하기 때문이다.
계산대에도 흐름이 있다. 레일 쪽으로 들어와서 포장대 쪽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일하는 마트에서는 포장대가 입구를 향하고 있어서 외부 매대에서 물건을 고른 다음 곧바로 포장대에 놓기 쉽다.
레일 쪽에 다른 손님이 없는 상황이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반대쪽에 줄 선 분이 계신데 포장대에서 "얼른 계산해 줘"라고 다그치시면 곧바로 처리해 드릴 수가 없다. 사실 이건 일방통행 도로에서 역주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럴 땐 계산원이 교통경찰이 되어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전엔 얼른 해드리고 보내자는 마음으로 포장대 쪽 손님 먼저 계산했다가 반대쪽 손님에게 "제가 먼저 왔는데요"라는 볼멘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지금은 손님이 아무리 따가운 눈총을 보내도, 못마땅한 듯 손가락으로 계산대를 툭툭 건드려도, 계산 순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편이다. 한 번만 해달라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분 앞에서는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죄송한데 이쪽으로 서 주세요" 하고 최대한 건조하게 인공지능에 빙의해서 대답한다.
"죄송하라"는 손님
하루는 손님 두 분이 함께 와서 레일에 상품을 올려놓았다. 꽤 많은 양이었다. 하나하나 수량과 품목을 확인해가며 바코드를 찍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손님 중 한 분이 그 사이 밖에 나가 가지 한 봉지를 새로 가져오셨다. 다른 손님은 내가 포장대로 밀어놓은 상품을 빈 상자에 담고 계셨다. 가지를 가져온 손님이 동행에게 물었다.
"이것도 담아도 돼?"
"이거 찍으셨죠?"
가판대 있는 채소류는 상품이 아니라 포스기에 따로 바코드를 붙여놓았는데 이런 방식을 잘 알고 계시던 손님은 가지를 가져온 걸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넘겨짚고 건성으로 물었다. 나는 나대로 레일에 있던 상품을 아직 덜 찍은 상태라 포스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거기 있는 건 다 찍은 거라 담으셔도 돼요."
드디어 바코드를 다 찍고 포인트 번호를 물어보는데 가지를 가져온 손님이 화면을 훑어보며 물었다.
"가지도 찍으신 거 맞죠?"
'웬 가지?' 하는 마음에 품목을 확인해보는데 없었다. 그런데 손님이 포장해 놓은 상자 위에는 분명 가지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아, 죄송합니다. 안 찍혀 있네요" 하고 가지를 추가했다. 그러자 손님이 하는 말.
"네, 죄송하세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웃으라고 농담으로 한 말도 아니고 도도하고 업신여기는 말투였다. '죄송하다'라는 말은 형용사인데, 이는 '추우세요', '슬프세요'가 비문이듯 명령형으로 쓸 수 없는 품사이다.
이런 국어학적인 지식을 차치하고서라도 남에게 죄송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가. 더군다나 애초에 계산대 질서를 지키지 않고 곧바로 포장대로 상품을 가져온 손님의 행동에도 오해의 책임이 있었기에 내가 죄송하다고 한 말에는 진심이 절반밖에 담겨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사과도 기대하고 한 말인데 예상 밖의 말을 들으니 당혹스러웠다.
예의상이라도, 설령 속으로는 100% 계산원 과실이라 생각했더라도, "괜찮아요"라는 무난한 말로 받아줄 순 없었을까. 말 한 마디에 그리 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겨우 말 한 마디라지만 무려 사람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입에 붙은 말이 있으니 바로 "감사합니다"이다. 행복해지려면 감사 일기를 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일기 쓰는 게 귀찮다면 계산원으로 일하는 걸 추천한다.
내가 일하면서 한 말만 다 세어도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한 말이 아니라 업무 중 하나로 반사적으로 내뱉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입에 붙었는지 상황에 맞지도 않는데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놓고 손님도 나도 어색했던 적이 있다.
시쳇말로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하는데 감사하다는 말도 똑같다. 솔직히 손님이라고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직원이 으레 하는 말이라는 걸.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계산하는 시간이 아무리 짧다 해도 감사하다는 말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그 순간 분위기는 아예 달라진다. 계산원으로서 생각해봐도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저 분은 돈을 내고 상품을 사가는 손님이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어 일하는 마음가짐에 영향을 준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감사합니다"와 또 다르다. "감사합니다"는 계산이 끝나고 모든 손님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일은 애초에 많지 않다. 사실 죄송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아예 없는 게 가장 낫다.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는 의식적으로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를 쓰는 편인데, 죄송하다는 말은 그런 계산 없이도 미안함과 난처한 감정이 실린다.
"괜찮다"는 손님
마트에서 일하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릴 일이 잦아서 수시로 팔에 힘이 쑥 빠진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다른 물건과 같이 초밥을 두 줄 들고 오셨는데 각각 바코드가 붙어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바코드를 다 찍었는데 화면에 뜬 가격을 보던 손님이 이상한 걸 느끼고는 두 개 사면 할인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나도 들어본 정보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뒤 초밥을 들고 수산 코너에 가서 물어봤다. 손님의 말이 맞았다. 수산 담당자님이 할인가가 적용된 바코드를 새로 붙여 주셨고 나는 서둘러 계산대로 돌아왔다.
마음이 급한 게 탈이었을까. 바코드를 찍으려고 초밥 용기를 들어올렸는데 하필 그 때 팔힘이 빠져서 들고 있던 걸 놓치고 말았다. 초밥 용기는 정확히 위아래가 바뀐 채 떨어졌고 나는 재빨리 원상복귀를 시키며 사과부터 드렸다. 그리고 다른 걸로 가져가시라고 권해 드렸다. 하지만 손님은 별 표정 변화 없이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먹으면 다 똑같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다 똑같겠는가. 애초에 그 상태로 진열되어 있다면 누구도 고르지 않았을 초밥인데. 손님이 화난 기색 없이 담담한 어조로 말하니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도……."라고 말끝을 흐리며 다시 초밥을 확인해 보니 연어초밥 위에 있던 크림이 뚜껑에 묻어 지저분해 보였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었고 손님은 그때마다 "괜찮아요"라는 말로 오히려 나를 위로하셨다. 애초에 자신이 지적하지 않았다면 할인가로 사지 못했을 상황에 계산원이 초밥을 망가뜨렸는데도 그분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누군가 죄송하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대답해야 상대 마음이 편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의례적인 말도 듣기 어려운 요즘이다. 빈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들 지쳐 있는 걸까.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하면 어딘가 가식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인데 다르게 보면 말 그대로 예의를 지키는 말이다. 좀 의례적이면 어떠랴.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하는 그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데. 솔직히 내가 그랬다.
그 손님이 정말 무던한 성격이라 초밥 좀 망가져도 상관없었는지, 딸뻘인 나를 가엽게 여겨서 다독이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라고 말한 그 손님이 나에겐 참 괜찮은 어른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