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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명지대학교 인문캠퍼스 앞에는 강경대 거리가 있다. 잔학무도함으로 악명을 떨쳤던 경찰 '백골단'에 의해 생을 마감한 고 강경대 학생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명명되었다.

 강경대 열사가 산화한 장소.
 강경대 열사가 산화한 장소.
ⓒ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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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는 명지대학교 강경대 열사 추모사업회에서 진행한 제33주기 강경대 열사 추모제에 함께했다. 추모제에 노구를 이끌고 참석하신 열사의 부모님께서 연신 울먹이시는 것을 보며 수년, 수십 년이 지났어도 아들 잃은 부모의 슬픔은 지워지지 않음을 느끼며 덩달아 나도 눈물을 삼켰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대학교 앞에 있던 강경대 열사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촬영 후 동상 앞에 국화꽃을 정리하다가 말 한마디가 내 귀를 스쳐 갔다. "이 동상도 곧 철거된다며?" 믿을 수 없었다. 부모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전에 명지대학교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국화꽃과 동상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강경대 열사는 두 번 죽었다. 노태우 정권 때 백골단에 의해 한번 그리고 매정한 동상 철거로 한번.

강경대 열사 동상이 있었던 자리 자전거가 놓여져 있는 곳 앞이 동상이 있었던 위치다.
▲ 강경대 열사 동상이 있었던 자리 자전거가 놓여져 있는 곳 앞이 동상이 있었던 위치다.
ⓒ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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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세상이다. 민주화와 학원 자주화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열사의 동상은 손쉽게 철거되고,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숱한 학살을 자행한 독재자의 동상은 번듯하게 세워야 하는 건가. '반대세력 납치·탄압' 군부 통치자의 동상은 신나게 우후죽순 지어져야 하는 건가.

 명지대학교 인문캠퍼스 내부에 있는 강경대 민주광장.
 명지대학교 인문캠퍼스 내부에 있는 강경대 민주광장.
ⓒ 전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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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열사의 모교이자 그의 후배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명지대학교가 선배를 기억하지 않는 현실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현재 강경대 민주광장이 캠퍼스 안에 설치되어 있지만, 강경대 열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은 몇 안 된다.

이는 아무도 강경대 열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까? 학생의 대표인 총학생회장이 올해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교수들도 대부분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열사 없는 강경대 거리가 근 다섯 달이 넘어가고 있다. 캠퍼스의 분위기는 너무나 산뜻하고, 운동장을 조성해준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에게 감사하다는 플래카드가 잘 보이도록 걸려있다. 하루빨리 강경대 동상과 강경대 정신이 제자리를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실립니다.


#강경대#강경대열사#명지대학교#서대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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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방송통신위원회 2030 자문단, <한겨레:온>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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