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면민의 날 행사를 '쓰레기 없는 산내면민의 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며?"
"발전 협의회와 이장 협의회에서 올해 행사는 환경을 최우선으로 해보자고 먼저 얘기가 됐다는 거야. 어르신들 정말 대단하시네."
올해 면민의 날 행사를 환경에 중점을 두고 치른다는 얘기는 내가 사는 전북 남원 산내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지난 몇 주간 가장 자주 오갔던 대화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산내면 발전 협의회와 각 마을 이장님들을 비롯하여 어르신들께서 그런 논의를 먼저 시작한 것에 대해 많은 산내면 주민들은 여전히 놀라워 하는 중이다.
쓰레기와 일회용품 때문에
이십여 년 전, 우연한 계기로 불교와 인연이 되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고 익히던 때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道業)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절에서는 밥을 먹기 전 위와 같은 게송을 읊고 나서 식사를 한다. 처음 불교를 접했던 당시엔 이 공양게송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의문을 가진 채 한참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랬던 데에는 당시 나에게 처음 불교를 접하게 해 준 스님의 가르침도 큰 역할을 했음에 틀림이 없다. 귀한 음식을 남기면 다음 생애에 거지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주 많이 이상했다. 다시 말하면 다음 생애에 부자로 태어나기 위해 음식은 감사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먹으라는 말이다.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해도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이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의아했지만, 당시 절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과 같이 모여 밥을 먹다 보니 그동안 음식을 자주 남기던 습관은 확실히 고쳐졌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 그 스님은 우리에게 방편을 썼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후에 정토회라는 불교단체에서 활동을 했다. 그곳에서의 가르침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갈 정도로 명쾌했다. 우리 남한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이면 북한의 기아를 전부 해결할 수 있다는 걸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알려주었다(환경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1만 5천900톤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되며, 음식 낭비로 연간 20조 원 이상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
또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으면 국제 곡물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그 고통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훨씬 더 크게 받는다고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더 잘 먹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만들고, 또 남은 음식을 버리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환경을 크게 파괴하며,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더 가난한 사람, 더 힘없는 존재들이 훨씬 큰 피해를 본다는 설명과 함께 환경 실천이 뒤따라야 함을 요구하고 설득했다(전 세계 온실가스 발생원인 가운데 음식물 쓰레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연구 결과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무려 10~20%에 달한다고 하며, 탄소 배출의 세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그래,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이지 하며 당시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에게도 좋고 너에게도 좋은 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남원시 산내면은 귀촌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나도 6년 전에 이곳에 귀촌을 했다. 시골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도시 사람들과는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도시에서는 각자 생존이라는 삶의 방식이 이제는 대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지만 시골은 농사일의 특성상 함께 일을 해야 하고,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웃들과의 화합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 그런지 함께 먹고 즐기는 시간과 행사가 아주 많다.
나는 이웃들이 힘을 합쳐서 해야 하는 일에는 대부분 참여를 했지만 먹고 즐기는 자리엔 반대로 대부분 불참했다. 이유는 그런 자리가 계획의 우선 순위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너무 많이 남겨지는 음식들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또 너무 많이 사용되는 일회용품에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쓰레기 없는 것을 목표로
기후변화로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무더위라는 뉴스가 쏟아졌던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즈음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올해 면민의 날 행사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게 만들어보자, 다시 말해 환경을 최우선에 두고 행사를 치른다는 소식이었다.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친환경을 목표로 내세운 축제나 행사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활동들이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변화로 이어져 환경 실천이 확대되었다고 말하기엔 많이 부족한 게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이곳 산내면에서도 그동안 단체의 활동가들이 몇 차례 그런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을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환경운동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일인가.
그런데 산내면의 모든 계층과 세대가 어우러지는, 그것도 올해로 43회를 맞이한 오래된 행사에서 쓰레기가 없는 것을 목표로 한다니 이곳 산내면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웅성웅성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불편한 마음에 그런 자리에는 잘 참석하지 않고 피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 발 벗고 뛰고 있었다. 이곳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삶의 습관을 바꿔야 하는 일을 먼저 해보겠다고 나서 주셨다.
누군가가 애써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배만 두드리고 사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일인가. 올해 면민의 날 행사가 친환경으로 치러져 나도 그동안 가져왔던 하나의 불편한 마음을 덜고 행사에 참석해 이웃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또 다른 불편한 마음 하나가 생기고 말았으니 이곳 어르신들께 큰 숙제를 받아든 느낌이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이 행사를 주관한 산내면 발전 협의회 회장님께 화합상 심사 기준에서 환경 실천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당연히 이 자리에 모인 산내면민들 간의 화합도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화합은 여기에 없는 우리 후손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존재들까지도 포함해야 진정한 화합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