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우려, 비판이 오갔던 제주 차 없는 거리 행사가 9월 29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진행되었다. 행사장에 필자가 도착한 시간은 11시 즈음. 연북로 메가박스 사거리에서 제주문학관까지 약 2km 구간의 차량이 통제되는 행사였는데 메가박스 사거리로 진입해서 행사장에 들어갔다.
역대급 폭염이 지나간 제주는 여전히 낮의 햇살이 따가웠고, 한여름만큼은 아니어도 6차선의 드넓은 아스팔트는 달궈져 있었다.
그리고 왕복 6차선의 광활한 아스팔트 도로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당황했다. 물론 간간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자녀들과 함께 걷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단조롭고 뜨거운 공간에 선 그들의 표정은 도로를 점령했다는 활기를 담고 있지 않았다.
조금 걷다 보니 그나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했다.
30명 정도 되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풍선을 가지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는 이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참여자들은 아스팔트에 앉아 뙤약볕을 그대로 맞고 있었다. 주변에는 잠시 들어가서 시원하게 목을 축이거나 행사를 만끽하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상가도 마땅치 않았다.
참여한 이들은 이 행사를 어떻게 느낄까?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들과 참여한 여성 2인에게 행사 참여 계기와 느낌을 물었다.
"뉴스를 보고 참여했는데 행사장에 너무 아무 것도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마침 가까운 아라동에 살고 있어서 걸어서 행사장에 왔는데 이걸 위해서 6차선을 막고 이 행사를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수, 아라동)
"가까운 학부모가 알려줘서 참여했다. 애월에 살고 있어서 한라도서관까지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행사에 참여했다. 좋은 취지의 행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품권을 받기 위해 접수하는 줄이 너무 길어 아예 신청하지 못 했다. 홍보가 잘 안 돼서 많은 시민들 참여가 없어서 아쉬웠다." (양신순, 애월)
이날 행사에선 이례적으로 걷기 코스를 완주한 이들에게 탐나는전 상품권 5000원을 지급했다. 이 예산은 어떻게 마련했을지 궁금해졌다.
조금 더 걸어가니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부스들이 보였으나 사람들이 없기는 매한가지여서 북적이는 행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를 업고 나온 젊은 부부에게 참여 소감을 물었다.
"현수막 보고 참여했다. 아라동에 살고 있어서 걸어올 수 있었는데 조금 거리가 있고 아기가 있어서 결국 한라도서관까지 차를 타고 갔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서 아쉬웠고 접근성이 떨어진 곳에 행사를 하는 것이 아쉬웠다. 충분히 주민들과 소통하고 잘 조율해서 접근하기 편한 곳에 했어야 했다. 그리고 너무 사람이 없다." (송진민, 아라동)
제주도가 행사 당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제주도민, 관광객, 공직자, 동호회 회원 등 사전 접수된 4000여 명과 당일 참여한 6000여 명을 포함해 총 1만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며,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참여자들이 환하게 웃으면서 걷는 사진이 담겼다. 오영훈 지사가 참여한 개막식에는 꽤 많은 참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2시간 차이로 행사장에서 느껴지는 온도 차가 너무 컸다. 참여자들은 왜 9시에 몰렸을까? 행사를 자발적으로 즐기는 민간 참여자들이 그만큼 없었다는 의미는 아닐까.
충분한 소통과 준비 없이 진행된 행사
어쩌면 이는 예상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는 지난 9월 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 행사 계획을 알렸다. 제주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28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제주시 연북로 일부 구간에서 차 없는 거리 걷기 '걷는 즐거움, 숨쉬는 제주!' 행사를 개최한다"며 "도로가 자동차만의 전유물이 아닌 보행자, 자전거·인라인스케이트 이용자 등 모든 도민이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보도자료는 행사의 취지만 거창하게 소개할 뿐, 도민들과의 공론 과정을 통해 이 행사를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는 계획은 담지 않았다.
제주도는 이 행사 추진을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범도민 걷기 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9월 6일 첫 회의를 열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행사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오영훈 지사는 9월 6일 진행된 '제주특별자치도 범도민 걷기 추진협의회' 1차 회의에서 "불편하지 않으면 자동차 사용이 줄어들지 않는다"며 자동차 사용자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 자동차를 줄이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제주도가 모델로 삼았다는 시클로비아처럼 차 없는 도로가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공론 과정을 통해 도민들이 취지에 공감하여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
제주도는 이번 행사에 대해 사전에 공론 과정도 진행하지 않고 계획 먼저 발표했다. 짧은 시간에 행사를 준비하고 치러내기 위해 상대적으로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주택가에서 멀어서 주민 반발이 적고 통제가 쉬운 외곽 장소를 고른 것일까.
도심 외곽을 행사 장소로 정하다 보니 당장 차 없는 거리 행사에 가기 위해서 차를 가지고 가야 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었고 제주도는 행사를 위해 500면의 임시 주차장을 조성하기도 했다.
행사 장소는 가구점이나 대형 마트, 장례식장 등 대부분 자동차를 타고 이용하는 상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고 행사 참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권은 없는 곳이었다. 오영훈 지사가 "걷기 좋은 도시가 돼야 도시의 활력이 높아지고 골목상권이 살아난다"고 말했던 취지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걷기 편한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브라질의 유명한 생태 도시 쿠리치바의 자이미 레르네르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쿠리치바 중심가의 자동차 전용도로를 보행자 전용 도로로 바꾸었고, 지금은 그곳은 꽃의 거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변 상인들의 시위와 협박이 있었지만 상인들도 어린이들이 그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사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제주의 차 없는 거리 행사를 보고 자동차 타기에 불편함을 느낀 도민들이 과연 차를 버리고 걷기와 자전거, 버스 이동 등을 선택할까? 제주도가 이 행사를 왜 한 것인지, 그 취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