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결국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닌가 싶다. 돌아보면 내 20대는 나 자신과 시간을 잘 보내는 법을 배우는 시절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거의 나 홀로였던 구간, 당시 내 내면 세계에서는 매일 싸움이 일어났다. 다행히 나 자신과 간신히 화해하는 법을 깨달았을 무렵 20대는 나를 떠났다.
30대는 아내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는 시절이었다. 다만 아내와 보내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고작 6개월의 연애, 1년 3개월의 신혼생활이었으니 말이다.
너무나 미숙한 채로 매 순간을 더듬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아내와 같이 살았을 때의 첫 느낌은 행복은 물론이지만, 살짝 어색함과 당황스러움도 있었다. 이렇게 누군가와 가까이에서 지내본 것이 그야말로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뭔지도 전혀 모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까지 뚜벅뚜벅 찾아와버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제야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내면의 나와의 다툼이 또 생겼다. 결혼하고 나니 나도 알지 못하던 내가 또 있었고, 아이가 생기니 거기서 또 알지 못하는 내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삶은 시간과 손을 잡으면 기다려주는 법이 없었다. 30대는 매 순간이 실패와 다시 일어섬 그리고 배움이었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모르게 되며 나자빠졌다. '도무지 모르겠다'를 외치니 누가 등이라도 떠미는 듯 벌떡 일어섰다. 그 두 구간을 왔다 갔다 하며 정말 많이 배웠다. 20대와 달리 30대는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보내줬다.
내가 지금 서 있는 나이 40대에는 무엇을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까. 뭘 배워야 하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단서는 30대 때 미처 다 배우지 못한 아내와 보내는 시간을 다시 배워야 하는 데 있지 않나 싶었다.
아이들이 다 커서 품을 떠나면, 그때 둘만 남은 부부가 같이 있으면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함께 하는 게 어색하다는데. 실제로 우리만 봐도 요 몇 년을 아이들을 위해서만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보냈지, 단 둘이서 보낸 시간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도 안 됐으니 말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다시금 배우고 싶었다. 배워야만 했다. 이번주 금요일 손을 잡고 오랜만에 버스와 지하철을 함께 탔다. 함께 손 잡고 성수거리를 걸었다.
오랜만에 데이트 같이 '방탈출 게임'을 했다. 서로 마주보고 차를 마셨다. 벤치에 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 오마카세라는 것도 먹어봤다. 그리고 다시 손을 꼭 잡고 돌아왔다. 밤에는 우리 부부와 가장 친한 친구 부부 둘을 만나서 아무 말이나 참 많이 했다.
얼마나 잘 보냈는지, 아내는 그날 밤 꿈나라 급행을 탔다. 나도 꿈나라행 막차에 오르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마 40대는 그동안 내가 다져온 모든 것을 불태우는 법을 배우는 구간이 될 것이고, 50대는 이제 슬슬 저무는 법을 배우는 구간이 되겠구나, 라고.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부디 그곳에 도착했을 때, 잘 살았다고 나 자신에게 꼭 말해고 싶다.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잘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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