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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신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같은 하늘 아래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로 잠깐 낯설다가도 곧바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음의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 고향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주간함양은 매달 한 편씩 연재되는 ‘함양 향우를 찾아서’ 특집을 통해 각지에 있는 고향 향우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기자말]


 박두양 창원세광교회 장로
박두양 창원세광교회 장로 ⓒ 주간함양

"이제 체력적으로 힘이 부치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합니다. 그만큼 봉사라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봉사를 받으신 분들은 고마움과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세요. 그런 것들 때문에 다시 용기를 내고 힘을 내고 이어나가는 것이죠."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기독인으로서 사회봉사자로서 따뜻한 행보를 멈추지 않은 박두양(69) 향우. 오늘도 경제적으로 빠듯하지만 진심과 열정으로 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의 연대로 희망의 불씨를 밝히며 어두운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창원세광교회 장로, 법무부창원출입국 사회통합위원장, (사)나눔과기쁨 경남본부장, 나눔과기쁨 창원푸드뱅크 대표 이밖에도 수많은 단체에 몸을 담으며 지역사회에 헌신해온 그도 이제 70이라는 나이를 맞았다.

어릴적부터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던 그가 걸어온 길은 어떠했을까. 그 길을 조명하고자 주간함양은 지난 9월 13일 오후 창원시에 있는 창원세광교회를 방문해 향우 박두양 장로를 만나 인터뷰했다.

박 장로는 함양읍에서 태어나 함양초·함양중·함양종고를 졸업 후 창원으로 떠났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창원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다. 고향을 떠나 성인으로 자라면서 본격적으로 봉사의 눈을 뜨게 되었는데 명확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막연하게 약자를 돕고 싶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행동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말한다.

"봉사를 시작하는 데 있어 정확히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어릴 적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사회복지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회복지사를 하고 싶다고 고백한 적도 있구요(웃음). 학교생활이 낯선 전학 온 친구들을 챙기고 왕따를 당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호하는 등 소외된 친구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성격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어머니가 아무런 보수도 없이 지역에 여러 봉사활동을 하시는 것을 보아왔고 이러한 부분들이 은연중에 저를 봉사의 삶으로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가 가르쳐서 배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소외된 이웃과의 동행

ⓒ 주간함양

앞서 밝힌 것처럼 박 장로는 현재 봉사단체인 (사)나눔과기쁨 경남본부장을 맡고 있다.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이어왔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상황과는 달리 여전히 사회에는 그늘진 곳이 많다고 말한다.

"저희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로 동행 나눔 사업이 있습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동행하자는 의미인데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 은둔해 있는 우리 이웃들을 사회로 이끌어내고자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올해는 행정기관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어려운 어르신들과 대형마트에서 함께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하는 일 등을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먹고 싶은 것 필요한 것들을 함께 고르고 의미 있는 날을 보냈죠. 엄청 대단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감동을 받고 우시는 어르신들도 계시더라고요. 주민등록상 부양가족으로 등기되어 있지만 자식이 전혀 부모를 돌보지 않는 사례가 많아요. 그래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 조건이 안되어 홀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최근에는 나눔과기쁨 창원푸드뱅크도 시작했는데 반찬 지원사업을 통해 매주 토요일 100여 분의 어르신들을 위한 일주일 반찬을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4명의 목사님을 포함 5명이서 어렵게 시작했다. 그러다 김해시 진영에 백숙집을 하는 탈북 여성 자매 2명이 자발적으로 동참 의사를 밝혔고 그들이 반찬을 만들면 박 장로는 그걸 받아와서 배분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일주일 치 반찬을 들고 낯선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아픈 박 장로다.

"올여름같이 더운 날이 없었는데 옥탑방에 홀로 살면서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살아내시는 할머니가 계셔요. 이 할머니는 항상 제가 방문할 때 커피를 타셔서 냉동실에 넣어놓으셨다가 제가 돌아가려고 할 때 건네주십니다. 다 마셔야만 보내주시는데 그만큼 저를 만나면 한 말씀이라도 더 하시고 싶은 거예요. 사람의 외로움이 제일 무서운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그 시간에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해요. 반찬을 드리고 떠날 때도 제가 안보일 때까지 옥상에서 손을 흔들고 계십니다."

고마움의 표시로 '너무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등 소리 나는 대로 쓰인 어설픈 편지를 받기도 하고 감자를 받기도 한다는 그는 "어르신들이 한명이라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더 크게 남을 돕는 분들도 많겠지만 아주 작은 일이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라며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적을 넘는 사랑

박 장로는 2019년에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는데 출입국 재한외국인들, 특히 외국 근로자와 유학생들이 한국생활에 필요한 상담 및 지원과 다문화가정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봉사, 민관의 유기적 관계연결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2018년 6월5일 브로커를 통해 건설일용노동자로 불법체류한 중국인 뇌졸중 환자를 데려가기 위해 입국한 가족들의 한밤중 긴급 도움 요청에 달려가 이들의 사정을 해결하여 무사히 출국시킨 주인공이 박 장로다. 브로커에게 그동안 받지 못한 체불 급여도 독촉하여 해결했으며 창원경상대학병원의 본인 부담 비급여 병원비도 정산해 주었다.

"사실 지난 8월 첫째 주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이전에 저에게 도움을 받았던 그분들의 요청으로 가게 되었고 만났을 때 큰 환영을 받았어요. 한 친구는 1000km를 달려와 저를 만나고는 부둥켜갖고 우는데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물론 국적은 다르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조건 없는 사랑을 주면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저 저들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도와줬지만 그들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10배, 100배의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이죠."

이처럼 지역에서의 따뜻한 행보를 펼치면서 고향에도 자주 방문한다는 박 장로.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함양의 현 상황이 안타깝기는 그도 마찬가지다. 박 장로는 출향인들이 고향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계기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우리 함양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참 많습니다. 지리산과 덕유산을 끼고 있고 지리적으로도 좋은 위치에 있고요. 사람들이 함양이라는 지역에 매력을 느낄 수 있게끔 하는데 다양한 방안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출향인들이 헌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야 보잘 것없습니다만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굉장히 크게 성공한 우리 출향인들이 많지 않습니까. 고향을 위한 역할에 대해 우리 출향인들이 계속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 (김경민.최경인)에도 실렸습니다.


#함양#향우를#찾아서#<16>#박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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