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천 청라 아파트 차량 화재가 큰 화두였다. 전기 차 화재가 발생한 뒤로, 전기 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는 주차가 힘들어졌다고 했다. 친구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주차장 입구 현수막에 적힌 글귀였다. '전기 자동차 지하 주차 금지' 였다.
친구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차장 입구 현수막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주차할 때마다 눈치가 보이고, 세울 곳도 없어서 막막하다고 했다. 주차할 곳이 없어서 전기 차를 산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전기 차 타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고민한다는 친구의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평소 아파트 주차장도 공간이 적어 주차하기 힘든데, 전기 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로 아파트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씁쓸하기까지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친구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녀는 자동차를 판매하는 일을 했다. 이번 달은 유난히도 힘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최근 인천 청라 자동차 화재로 전기 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고, 전기 차를 사겠다는 고객마저 계약을 취소한다고 말했다. 한 달간 전기 차를 탔는데. 혹시 취소할 수는 없는지 문의 전화도 자주 온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전기 차를 탔으면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2024년 8월 1일 인천 서구 청라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기 차에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23명의 입주민이 연기를 흡입하여 병원으로 이송 되었고 주차장에 주차했던 차량 87 대가 불에 타 재산 피해를 보았다.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정상으로 작동되지 않아 피해가 커져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화재 사고 이후 일부 아파트에서는 주민들이 전기 차를 지하 주차장뿐만 아니라 지상 주차장에도 주차하지 말라고 항의하고, 주차장 입구에 '전기 차 주차 금지'라는 현수막을 건 아파트도 등장했다.
소방청 전기 차 화재 현황 통계(3년간)에 따르면 2020년 화재 건수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4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유는 친환경을 이유로 전기 차를 타고 사는 사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전기 차 화재 발생 원인은 미상, 전기적 요인, 부주의다. 대부분 화재 원인 미상이다.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자동차 화재를 많이 보았다. 현장에 출동하면 이미 불이 나고 골든 타임이 지난 뒤가 많기에 전소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주차한 차량에 불이 나는지 인지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메케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나고 난 뒤야 불이 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소방서로 화재 신고가 들어오기 때문에 피해가 큰 편이다. 화재 사실을 누군가에게 알릴 수 있는 황금 시간 확보 시스템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자동차 화재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전기 차 화재가 내연차 화재보다 불 끄는 시간이 걸리지만 진압은 가능하다. 화재가 언제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조장하기보다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전기 차 화재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전기 차 화재를 줄이는 방안으로는 아파트 주차장에 습식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배터리 인증제 도입 방안이 있다. 전기 차 화재 발생 시 배터리 특성 및 충전 상태와 구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 내연 기관 자동차보다 화재 전이 속도가 빠른 경향이 있고 전기 차 배터리의 경우 일단 불이 붙으면 더 많은 열을 만드는 '열폭주'가 순식간에 일어나 일반 분말 소화기로 화재 진압에 한계가 있다.
이유는 분말 소화기로 외부 화염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지만, 실제 배터리 내부에 침투하기 어렵고, 냉각 효과는 거의 없기에,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에는 부적절하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시, 주변 배터리로 전달되는 열을 차단하여 열 폭주 확산을 막는 데에는 냉각 소화가 적절하다. 화재가 발생 후, 주차장 내에 스프링클러가 작동할 수 있다면 초기 화재 진압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전기 차 화재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자동차 관리법에서는 자동차 부품 자가 인증 제도를 도입하듯, 전기차 배터리 이력을 공개하여 불안을 해소하고, 배터리를 관리한다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전기 차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분말 소화기로 무리하게 불을 끄기보다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 이유는 화재 시 유독 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분말 소화기로는 화재 진압이 어렵기 때문에, 119에 신고하여 화재 장소를 정확히 알려야 한다. 전기 차를 지하 주차장에 주차하지 말라는 것은 임시 대응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부와 소방, 전기 차, 건설업 전문가들이 모여서 근본적인 화재 대책이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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