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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뮤직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영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친구들이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대해서 흥분해서 이야기를 할 때도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 페스티벌 티켓을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몰랐던 나는 함께 가자는 친구들의 초대를 몇 번이나 거절했었다.

내 머릿속에는 페스티벌에 대한 설레임 보다는 축제기간 내내 야외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잘 씻지도 못하고 머물러야 한다는 걱정뿐이었다. 히피문화와 반문화의 영향을 받은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자연과의 조화와 자유롭고 공동체적인 캠핑이 축제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은 4박 5일 동안 지속되는 축제기간 동안 폭우 때문에 텐트가 물에 잠겨 진흙탕 속에서 지내는 일이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제를 즐겼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 열광하는 걸까?

전 세계의 사람들이 글래스턴베리의 작은 농촌마을인 필튼(Pilton) 근처에 위치한 농장, 위디 팜(worthy farm)에 모여드는 이유는 단순히 음악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소위 '글래스턴베리 스피릿(Glastonbury Spirit)'이라고 불리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독특한 분위기, 축제기간 동안 참여자들과 함께 나누고 만들어가는 공동체 의식과 경험이 바로 사람들을 작은 농촌마을로 끌어들이는 힘이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자 아이콘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에 축제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시작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미국 뉴욕주 베델(Bethel)의 한 낙농장에서 열린 전설적인 음악축제인 우드스탁 페스티벌(Woodstock Festival)에서 영감을 받은 농장주인, 마이클 이비스(Michael Eavis)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3일간의 평화와 음악(Three days of Peace & Music)'이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었는데, 1960년대의 반문화 운동과 히피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서구사회는 베트남 전쟁, 인종차별, 사회적 불안 등 여러 갈등이 있었던 시기였다. 젊은이들은 전통적인 가치에 반대하며, 평화, 자유, 사랑을 추구하는 히피 운동과 반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축제였다.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참가자들 사이의 유대감과 공동체 정신은 이후 여러 음악 축제에 영향을 주었으며, 음악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 전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창시자인 마이클 이비스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모델삼아 음악과 공동체 정신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페스티벌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공동체 정신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페스티벌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회적, 문화적, 환경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70년에 필튼 팝 페스티벌(Pilton Pop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농장인 워드 팜에서 첫 번째 축제를 열었다. 약 1500명의 관객이 참가했으며, 티켓 가격은 단 1 파운드였고, 우유 한 병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작은 농촌마을의 농장주의 소박한 꿈에서 시작된 축제는 오늘날 20만 명의 관중이 참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 축제로 발전했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의 성공요인

오늘날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그의 모델이 되었던 우드스탁 페스티벌보다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작은 농장에서 시작된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첫 번째는 음악적 장르의 다양성이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에는 록, 팝, 힙합, 일렉트로닉, 인디, 포크 뮤직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최고 수준의 아티스트들이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각기 다른 취향을 만족시켜준다. 하나의 축제에서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페스티벌의 정체성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와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의 연결을 목표로 하는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음악축제를 넘어 환경 보호, 평화, 인권 등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영감을 줄 뿐만 아니라 지역과 국가를 넘어선, 지구라는 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경험을 제공하게 된다.

세 번째는 상업성에 대한 경계다. 마이클 이비스는 페스티벌의 본질을 상업적 수익보다는 음악과 공동체 정신에 두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페스티벌이 상업적인 압박에 의해 그 가치를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문화와 사람들 간의 연결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축제들과는 차별화된 독특한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네 번째는 지속가능성의 추구이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지속가능성을 축제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페스티벌의 지속 가능성과 환경보호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 감소 및 재활용 촉진 등의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워디 팜과 주변 환경을 회복시키기 위해 5년에 한 번씩 축제의 '휴식기(Fallow Year)'를 갖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축제가 열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다 섯번째는 사회적인 책임이다. 그린피스(Greenpeace), 워터에이드(WaterAid), 옥스팜(Oxfarm) 등의 자선단체와 협력하여 환경문제와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수익금의 상당 부분을 이들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여섯 번째는 공동체의식의 체험이다. 글래스턴베리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사람들 사이에 강한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참여자들은 농장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 기간 동안 넓은 자연환경 속에서 캠핑을 하며 공연을 즐기게 되는데, 이는 일상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페스티벌에 참여함으로써 대규모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비슷한 열정과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해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

일곱 번째는 다양한 경험의 제공이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음악 공연 외에도 예술전시, 워크숍, 영화 상영, 코미디 등 다양한 행사들이 열려 참여자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페스티벌 관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 관객이 아닌 축제의 일부로 느끼게 된다.

여덟 번째는 유연한 운영방식이다. 음악산업의 변화와 관객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매년 행사 프로그램과 참여 아티스트들을 업데이트하며, 축제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유연한 운영방침은 페스티벌의 지속적인 성공을 가능하게 한다.

아홉 번째는 지역사회와의 협업이다.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 활동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로 페스티벌에 함께 참여하여 지역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축제를 통해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서로 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지역 주민들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페스티벌에 대한 지지를 강화시키고, 지역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마지막으로 열 번째는 리더십이다. 농장을 운영하던 평범한 농장주였던 마이클 이비스는 거대한 재정적 지원 없이, 자신의 음악적 열정과 공동체적 비전을 바탕으로 자신의 농장을 기반으로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페스티벌이 성장하면서 점차 수익이 발생했지만, 그 수익을 주로 자선활동과 사회적 책임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적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페스티벌 참여자, 지역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해오고 있다. 마이클 이비스의 리더십은 작은 농촌마을을 독창적인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킴으로써 성공적인 지역변화와 사회적인 영향력을 전 세계에 미칠 수 있게 되었다.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이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음악과 예술이 사람들의 내면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한 농부의 비전과 이를 꾸준히 실천한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역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직면한 지역소멸 위기는 단순한 인구감소 이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전반의 활력저하와 미래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위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단지 4~5년 동안의 '나의 성과'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50년, 10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하는 진정한 리더가 필요하다.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농촌마을#지역소멸#리더십#매력적인도시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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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출간, 주택, 도시, 그리고 커뮤니티를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다소 낯설지만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의 여러 도시들을 탐색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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