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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축구는 공통점이 많다.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려면 더 많이,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동시에 섬세함도 필요하다. 터치 하나만으로도 모든 게 달라진다. 빠르고 섬세하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 모순된 표현을 현실에서 해내려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써야 한다.

즉, 요리와 축구 모두 몸이 고될수록 고객들이 좋아한다. 팀원이 되고 싶다면 일단 튼튼해야 한다. 비리비리하면 절대 필드에 못 선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요리사들 대부분 대단한 정력가들이다. 동시에 주장이며 감독이다. 팀원들이 미적대거나 실수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한 편의 시와 같은 욕은 덤이다. "네가 튀긴 치킨은 덜 익어서 수의사가 살려낼 수도 있겠다!"

물론 두 분야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경쟁의 유무다. 본디 요리는 게임이 아니다. 맛은 주관적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객관적 기준과 규칙을 만들기가 어렵다. 평가하는 자의 해석과 가치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자칫 판정시비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결과가 누적되면 대회가 갖는 취지와 권위는 힘을 잃는다.

<흑백요리사> 열풍의 한편에선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메인 포스터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메인 포스터 ⓒ ⓒ NETFLIX

이 지점에서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는 획기적이다. 요리를 스포츠의 영역으로 승화시켰다. 모두가 인정하는 권위자의 심사, 모두가 납득할 만한 조건으로 판을 깔았다. 참가자들은 그 안에서 상대를 존중하며 경쟁했다. 여기에 계급장 떼고 서로 붙어보자는 취지까지. 흠잡을 게 없었다.

<흑백요리사>를 축구에 비유하면 어떨까? 업계 최고들이 모였으니 1부 리그쯤 되지 않을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처럼 말이다. 반면 어디에나 있는 동네 식당들은 그보다 하위리그에 속할 것이다. 허나 그들을 무시하지 말라.

상위리그가 사치재라면, 하위리그는 필수재다. SNS에 자랑할 만한 맛집에 가는 게 삶에서 꼭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퇴근 후 허기를 채워줄 국밥집이 사라지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비교적 싼 가격에 허기를 채워줄 식당들은 우리의 일상에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한국은 식당이 차고 넘치는 나라 중 하나고, 치열한 경쟁 탓에 국내 외식업의 수준은 그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안타깝게도 이 추동력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고령화 때문이다. 올해 6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영업자와 소득 불평등'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0대 이상 자영업자 비율은 36.4%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00년대 초반 60대 이상 자영업자의 비율은 약 18~20% 수준이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배로 늘어난 수치다. 조사 대상을 식당(일반음식점)으로 한정하면 이 비율은 더 높아질 것이다. 요즘 어느 식당을 가도 40대 사장님은 잘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노포(老鋪)'의 창업주들이 대개 30대 초반에 가게를 열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의 시장 상황은 꽤나 걱정스럽다.

더 이상 몸이 안 따라준다는 사장님들

실제로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더 못 하겠다'는 가게들이 여기저기 속출하고 있다. 자주 가는 중국집 사장님은 수술한 허리가 잘 낫지 않아 복대를 차고 일한다. 또 다른 중국집 사장님은 몇 년째 팔꿈치가 말썽이다. 백반집 사장님은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근다.

모두가 말한다. 이제는 몸이 안 따라준다고. 가게를 물려받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아들 딸들은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다 나가떨어졌다. 부모들은 붙잡지 않았다. "내 대에서 끝나겠지, 젊은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하겠나." 그렇게 많은 식당들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국내 외식업의 고령화는 정해진 미래다. 이는 먼 미래의 우리의 외식 생활을 완전히 뒤바꿀 것이다. 낮은 인건비와 극단적인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워 영업이익을 창출하던 식당들부터 차례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파도는 몰려오기 시작했다. 수년 전부터 많은 백반집들이 문을 닫았다. 이 파도는 점차 중국집과 국밥집 등으로 번져갈 것이다.

외식업의 고령화, 박리다매 식당의 위기

 올해 전체 취업자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선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지난 9월 30일 서울 명동 거리.
올해 전체 취업자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선 아래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사진은 지난 9월 30일 서울 명동 거리. ⓒ 연합뉴스

우리보다 고령화를 먼저 겪은 일본에선 2010년대 후반부터 중저가 초밥집과 테이쇼쿠(정식)집이 대거 문을 닫기 시작했다. 외식업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부족해진 결과다. 가게들은 각종 자동화 설비로 이에 맞서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현재 일본의 외식업은 고급 메뉴와 최저가 메뉴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던 식당들이 사라지며 양극화되고 있다.

일본 외식업의 고령화가 중저가 식당의 몰락으로 나타났다면, 한국의 그것은 저개발 시절 낮은 인건비와 단가로 승부를 보던 최저가 식당들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절반도 되지 않는 한국의 인구 구조상 시장의 변화는 예상보다 더 파괴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

가게들의 죽음은 그저 단 하나의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레시피의 죽음과, 문화적 다양성의 죽음과, 다양한 소비 선택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도 또 다른 사다리 하나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흑백요리사> 인생스토리 미션에서 '이모카세 1호' 참가자는 안동국시 메뉴를 내놓으며, 자신이 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물려받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흑백요리사> 인생스토리 미션에서 '이모카세 1호' 참가자는 안동국시 메뉴를 내놓으며, 자신이 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물려받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 넷플릭스

요리의 세계에서 월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요리사는 예외 없이 설거지부터 시작해 책임자의 자리까지 올라온다. 파인다이닝부터 동네 중국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리사는 그 자체로 '개천의 용'이다. 그 '용 중의 용'들이 1부 리그로 올라와 외식문화를 꽃피운다. 개천이 마르면 미꾸라지와 이무기, 용의 숫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10년 뒤에도 우리는 '철가방 요리사'와 '이모카세 1호'의 성공신화를 만나 볼 수 있을까? 늙어가는 식당들을 지켜보는 한편에서 벌어진 이 요리축제는 눈이 부시도록 흐드러져서 더 얄궂다.

#흑백요리사#넷플릭스#예능#요리#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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