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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예술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다. 학교 예술 강사가 바로 그들이다. 전국 5천 명에 이른다. 25년 동안 학교에 있었다. 매해 학생 250만 명이 학교 예술 강사를 만나 국악, 연극, 무용, 영화, 애니, 사진, 디자인, 공예 등을 접했다. 이들의 신분은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기노동에, 1년 중 10개월만 계약하는 학교비정규직이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연차휴가, 주휴수당이 없을 뿐만 아니라 퇴직금 지급 대상도 아니며 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하더라도 정규직 전환에서 제외된다.

그런 이들이 학교에서 아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윤석열 정부가 예산을 싹둑 삭감했기 때문이다. 2023년 605억 원이었던 학교예술강사 지원 사업 예산을 2024년에는 287억 원, 2025년에는 80억 원으로 줄였다. 2년 동안 예산을 86%나 삭감했다. 더욱이 2025년 인건비는 0원이다.

부산시가 프랑스 미술관인 퐁피두의 분관을 건립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81억 원이다. 2023년 학교예술강사 예산 605억 원의 2배 가까운 금액이다. 누군가 나에게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과 퐁피두 분관 건립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이라고 답하겠다.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변현주씨

학교예술강사 변현주 변현주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 장면 중
학교예술강사 변현주변현주 1인극 '어머니 날 낳으시고' 공연 장면 중 ⓒ 변현주

변현주 학교예술강사는 연극인이다. 1996년부터 부산에 있는 극단 새벽에서 활동했다.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영화배우가 이 극단 출신으로 있을 만큼 실력 있고,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늘 정면으로 다뤘던 진지한 극단이다. 변현주씨는 학교예술강사로 2006년부터 일했다. 19년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학교예술강사지부에서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학교예술강사는 기본 교과과정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에 배치돼요. 전국의 초중고 학교장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신청해요. 매년 전국 초중고 75% 정도가 신청할 정도예요. 진흥원은 신청한 학교 대부분을 지원해 줬어요. 매년 혜택을 받는 학생 수가 250만 명에 이릅니다."

학교예술강사 사업이 시작된 것은 25년째이지만, 법적 근거가 만들어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도다. 당시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제정됐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도 생겼다. 학교예술강사가 학교에서 일하려면 진흥원의 140시간 연수를 받아야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육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학교에 배치된 학교예술강사는 주 1회 학생들을 만난다.

"저는 고등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고 있어요. 수업은 연극에 대한 기본 이해를 높이고, 창의력과 표현력을 기르는 내용이에요. 연극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과 사회성, 관계성을 길러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구체적으로는 상황극이라든지 연극놀이를 해요. 팀별 활동도 하고 개인 활동도 하죠."

국어 수업 내용 중에 희곡이 있다. 변현주씨는 교사와 협력해서 희곡을 글로만이 아니라 실제 연극을 통해 가르친다. 연극을 배운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 특이사항으로 기록할 정도로 의미 있는 배움으로 여긴다. 왜일까?

"학생들이 학교 안 시스템에 갇혀 있어요. 예술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학교 교육 안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아이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 팀워크를 통해 사회적 연대감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성적과 경쟁만이 있는 입시교육에서 연극은 생뚱맞을 수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연극과 예술은 학생들에게 해방구가 될 수 있다. 연극은 창의성과 협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혼자 자라잖아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소수의 관계로만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연극을 하다 보면 많이 투닥거리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해요. 제가 도와주면서 함께 마무리하면 그때 학생들이 느끼는 보람은 대단해요."

변현주씨는 연극의 키워드로 차별과 혐오, 학교 폭력, 환경 문제 등을 준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것을 가지고 연극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기표현을 하고, 사회적 연결을 느끼고,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변현주씨는 "장애인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들이 연극 수업을 다시 꼭 찾는다"고 말했다.

"장애 학생들에게 연극은 또 다른 의미가 있고, 특별한 교육의 목표가 있어요. 먼저 문해력을 높이는 역할을 해요. 자기 발표를 소극적으로 했거나, 못해 봤던 학생들에게 연극은 다른 기회가 됩니다. 장애 학생들이 통합반에서 다른 학생들과 연극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관계들을 형성해 나가요. 연극을 하고 나면 분위기가 달라져요. 그래서 특수교육 선생님들은 연극을 매년 하고 싶어해요."

윤석열 정부, 예술강사 사업 폐기 수순

 지난 9월 한 영화행사에 참석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
지난 9월 한 영화행사에 참석한 유인촌 문체부 장관 ⓒ 문화체육관광부

그런 학교예술강사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사업을 폐기하겠다고 나섰다. 계속하려면 지역 교육청에서 예산을 전액 투여해 알아서 하라는 것. 지금까지는 정부 예산과 교육청의 지방교육재정이 각각 50%씩이었다.

연극인 출신이며,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장관이었고, 지금도 문체부 장관인 유인촌 장관은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생각할까. 늘봄수업을 통해 학교예술강사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유인촌 장관은 학교예술강사 사업을 예술의 공공성 측면에서 바라보지 않고 일자리 사업으로만 바라보는 좁은 시각에 갇혀 있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 시절 학교예술강사 사업은 일자리 확대 사업으로 대폭 예산이 늘어났다.

"대책 없는 지역 이관은 그동안 유지한 학교 예술의 공공성을 보장하기 어렵게 합니다. 교육감에 따라 사업 계속 여부가 달라질 것이고, 문화예술교육 가치에 대한 판단도 제각각일 가능성이 커요.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이 그동안 예술의 공공성과 보편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문화체육부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건강보험이라도 가입하면 좋겠어요. 저희는 3대 보험 가입자요예요. 주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을 하다 보니 근무시간이 짧아서 건강보험은 가입대상이 아니에요."

근무 시간이 짧으면 건강보험 가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제외된다는 것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알았다. 그러면 실제 근무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일까? 아니라는 게 변현주씨의 설명이다.

"먼저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 이후에는 평가나 수업 일지를 올려요. 그런데 이런 시간들이 근무시간으로 적용이 안 돼요."

학교예술강사들은 공짜노동을 하고 있는 셈. 변현주씨는 "무기계약 전환이 되면 좋겠지만, 일단 10개월 계약을 12개월로 바꾸고, 학교예술강사도 건강보험이라도 가입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중인 한교예술강사 변현주씨
인터뷰 중인 한교예술강사 변현주씨 ⓒ 변현주

학교예술강사를 해서 한 달 버는 돈은 얼마일까? 월평균 80만 원이라고 한다. 그마저도 방학 때는 수입이 없다. 이 수입이 가난한 연극인 변현주씨의 거의 모든 수입이다. 작품을 통해서 벌이는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학교예술강사로 버는 80만 원으로 어떻게 생활을 할까? 변현주씨는 "맞춰서 생활한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의 최대 과오가 무엇일까. 부자 감세를 통한 조세 재정 국가 역량의 심각한 훼손과 후퇴가 그것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보수 정부였던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확대했던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을 윤석열 정부는 폐기하려고 한다. 605억 원의 예산을 아끼기 위해서다. 학생들과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짓밟히고 있다면 과도한 표현일까.

#학교예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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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조직국장으로 일한다. 노동조합, 노동관련단체에서 쭉 일했다. 두 아이의 아빠다. 평등육아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어색한 조합이지만, 노동과 육아가 내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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