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출구가 있으며, 우리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전 세계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다. COP28 참가국들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유지하기 위해 2030년까지 석탄 연료로부터의 전환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이런 추세에 한국도 정부와 민간이 (탄소중립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매년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회를 개최한다. 이에 기자는 대회에서 수상한 에너지 자립마을 및 협동조합의 에너지 전환 활동에 대해 현장 취재 및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탄소중립 현황을 짚어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총 2회에 걸쳐 보도한다.[기자말] |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까지 5년 남짓 남았지만,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31일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다. 2년마다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10차 전기본과 다르지 않은 수치다.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2030년 발전량은 '10차' 대비 증가하였으나 발전 비중은 유사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탄소중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모두 필수라는 입장이다. 한국을 포함해 몇몇 국가들은 원전을 신설하거나 이전 계획보다 원전 비중을 크게 두는 추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발전 설비용량이 2022년 대비 약 22% 증가한 후 2050년까지 약 2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원자력 발전 설비용량은 고성장 시나리오의 경우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약 24% 증가하고, 2050년에는 약 140%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 리서치의 <원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응답자에게 적절하게 생각하는 에너지믹스를 물었을 때 신재생에너지 42%, 원자력 23%, LNG 17%, 석유 10%, 석탄 7% 순이었다. 정부가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 에너지원 비중을 원전 31.8%, LNG 25.1%, 신재생 21.6%, 석탄 17.4%, 수소 암모니아 2.4%, 기타 1.7% 순으로 둔 것과 사뭇 다르다.
원자력, 해답일까?
서울 은평구에서 6년째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이하 태바에협)을 이끌고 있는 최승국 이사장(이하 최 이사장)은 원자력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원전이 탄소를 적게 배출하지만, 여전히 위험한 에너지라는 것이다. 한국인은 신재생에너지를 선호한다. 한국 리서치에서 한국인은 신재생에너지 86%, LNG 64%, 석유 34%, 석탄 28%, 원자력 26% 순으로 원자력이 신재생에너지, 화석연료보다도 위험하다고 인식한다.
원자력이 아니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위험성에만 있지 않다. 최 이사장은 "재생 가능 에너지는 자연으로부터 반복해서 나오고 원자력은 우라늄을 채취합니다. 원자력이 재생 가능한 건 아닙니다"고 덧붙였다. 원자력은 화석연료와 비슷하게 자원무기화나 고갈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최 이사장과 시민들은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지역으로부터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보급받기 위해 태바에협을 창립했다. 태바에협과 같은 에너지협동조합은 에너지 자립마을과 비슷하듯 상이하다. 시민이 직접 참여해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은 같으나 차이가 있다. 태바에협은 지역 단위로 탈핵을 생활 속에서 행하기 위해 햇빛발전소라 불리는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한다. 서울시 은평구를 중심으로 9개 발전소를 관리하며, 발전설비용량은 총 610 kW이다.
최 이사장은 공동체 단위의 에너지 전환 실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혼자 힘으로 자가에 태양광 패널을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에너지협동조합에 가입해 공동으로 태양광 발전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지역 사회 전체가 이용하는 에너지원이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은평구 갈현동 소재의 10가구가 거주하는 빌라 옥상에도 3 kW의 태양광이 시공되어 있습니다. 지난 8월에서 9월, 약 한 달간의 전력 생산량은 250 kWh이며, 공동전기 사용량은 128 kWh입니다. 옥상 태양광을 통해 122 kWh의 잉여량이 발생합니다. 이렇게 남은 잉여량이 9년간 약 12,134 kWh나 되고 계속해서 생산된 전기가 쌓이고 있습니다. 월별 전력 생산량이 소비량보다 많기 때문에 기본 전기 요금만 지불하고 실제 전기 사용량에 대한 요금을 충당할 수 있습니다. 태양광이 없다면 19,868원 정도의 전기 요금을 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에너지 사용량이 늘어나는 사회 현상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해도 소비를 따라가기 어렵다.
에너지 전환, 중앙에서 지역으로
사람들은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무관심하다. 한국 리서치 인식조사에서 한국인은 기후변화를 90% 넘게 인식했지만 탄소중립, RE100 등 관련 용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처음 들어봤다는 응답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런 현실에서 에너지 사용 문제는 차치하고 원자력, 화석연료도 소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 이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시스템을 문제로 짚는다.
"지금 우리는 한전을 중심으로 중앙정부가 에너지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대규모 중앙 집중형 에너지 공급 체계에서 소규모 지역 분산형으로 바꿔야 합니다.
중앙 집중식 에너지 체계는 하나의 전력망으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전국적으로 통합 관리하면서 수요지와 공급지의 불균형을 초래하게 됩니다. 예시로 밀양 송전탑 사태와 같은 사회적 갈등을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지역별로 에너지를 생산해서 소비하는 것에 비해 많은 예비 전력을 생성해야 되는 측면도 있고 전기는 늘 어디선가 공급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리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지역별 에너지 자립이 이루어진다면 수요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전력 생산 설비를 추가로 건설해야 하는 부담이 줄겠죠. 또 전력 수송 절차에서 에너지 손실을 방지합니다. 지역에서 쓰는 에너지는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책 결정 과정도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잇따랐다.
"정부가 했던 정책 결정을 지역으로 이관하고 지방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 아래,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형성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주민도 주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마련됐을 때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탄소중립이 실현된다고 봅니다."
"국가 전체, 광역 단위 에너지 기본 계획이 있습니다. 기초 단위는 에너지 기본 계획이 의무는 아닙니다. 탄소중립 계획은 기초까지 의무적으로 설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방정부 기초의 권한이 별로 없습니다. 정부에서 위임하는 사무를 주로 처리합니다. 책임과 역할이 적으니 지역 단위에서 에너지정책을 해보려고 해도 예산이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중앙정부에서 자체 계획을 설계하고 실행과 세부적인 계획들은 지역 단위로 위임해서 지역에서 웬만한 것들을 다 이끌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 맞춰서 예산도 지역으로 배분하면 지역이 훨씬 더 의욕적으로 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중앙정부가 이행하는 계획에 시민들이 일일이 관여할 수 없고 대표성을 갖기도 어렵습니다. 기초에서 전문가나 협동조합, 에너지 자립마을 이해관계자들이 같이 거버넌스를 결성해서 계획을 세우고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면 훨씬 더 실행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각 지자체에서 기후환경과, 환경과, 녹색에너지과 등 소속 공무원들이 에너지 관련 업무를 합니다. 환경 관련 전반적인 업무, 도시가스 관리, 전기 요금 관리와 같은 법정 사무를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지금은 문제가 되는 기후 문제나 에너지 전환 사무를 담당하는 부서를 둔 지방 정부가 많지 않아요. 공무원들에게는 이 에너지 전환 업무는 곁다리가 되고 부가적인 업무가 되는 거죠. 사명감으로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지역에서 에너지 계획을 확립하고 거기에 맞는 실행 부서를 두고 최소한 에너지 전환팀, 기후 위기 대응팀 정도를 편성하면 훨씬 더 실행력이 높아질 거라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중앙정부가) 위임 사무의 범위를 더 넓혀주고 특히 재생에너지는 주민들이 뜻을 모아야지 지역 단위로 실천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업무들은 지방정부로 이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어설픈 지자체 에너지 사업
현 지자체 사업은 어떨까.
서울시는 2020년부터 에너지 자립마을을 각 지자체 주도로 전환했다. 2022년 마지막으로 공개된 현황에 의하면 서울시 전체에 총 31개 에너지 자립마을이 있다. 정보공개 청구 결과 2024년 9월 기준으로 2023년, 2024년에 추가로 지정된 에너지 자립마을은 없었다. 에너지 자립마을은 줄어들 일만 남았다.
투명 페트병-종량제 봉투 친환경 교환 사업에 대해 최 이사장은 "은평구도 '그린모아모아 사업'을 통해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들을 직접 분리 배출합니다. 자원 순환이나 플라스틱을 줄인다는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탄소중립 관점에서는 기대하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재활용 쓰레기 비중은 아주 작다.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은 건물 부문 66.5%, 수송 부문 18.1%, 폐기물 11.8% 순이다. 폐기물 부문에서는 매립과 소각에서 온실가스가 상당수 배출된다. 수도권 기준 배출량이 매립 75%, 소각 16%를 차지한다. 매립과 소각에서 배출량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탄소중립의 본질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라는 최 이사장은 "사람들은 에너지원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에너지원이 '재생에너지냐, 원자력이냐'라는 논쟁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에너지 수요 관리와 구조를 바꾸는 것들이 함께 가야 됩니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도착지를 향해 뒤늦게 발 뗀 정부
후발주자의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정부가 제도나 정책을 통해 시민들이 탄소중립에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협동조합을 통해 시민이 생산한 재생에너지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전기를 고가에 매입하거나 정부 소유 부지를 임대하여 지역 단위 에너지사업을 지원하는 것도 유의미합니다. 재생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여 이익이 생기면 이를 지역사회에 공유하도록 하는 이익공유제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겠죠. 그리고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과도한 태양광 발전에 대한 이격거리 제한 규정을 폐지, 완화하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후 위기 대응이나 에너지 전환은 모든 국민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보수·진보, 여야가 따로 없어야 하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정책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어렵게, 사실은 매우 늦게 에너지 전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지금 경기도는 좀 다르지만, 서울시나 정부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사실 후퇴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탈출할 수 있는 주체는 인간뿐이다. 2050 탄소중립이란 목표를 향해 정부와 민간이 따로, 또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민 참여는 필수불가결한 전제다. 서울시에서 주관한 '친환경실천 우수아파트 선발대회', 태바에협의 에너지 전환 활동 등 각자의 자리에서의 노력이 모여 운전대를 지지할 것이라 기대한다.
최승국 이사장은 누구? |
최 이사장은 에너지정책 연구에도 앞장서고 있다. 에너지분야 전문가로서 지방정부의 지역에너지 계획 구축이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사단법인 '은평상상'의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최근 서울혁신파크에 개발 위험이 있어 '혁신파크 지키기' 활동도 병행하고 있으며, 이처럼 지역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