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등) 화석연료 보조금의 일몰*을 연장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예산은 대폭 삭감된 추세다. 예산상에서 탄소중립이나 에너지전환에 (한국이) 진심을 다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일몰: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여 일정기간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법률.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의 임현지 부연구위원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예산·세금 제도개선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토론회는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파주시을)이 주최하고, 녹색전환연구소·나라살림연구소·랩2050 등 3개 기관이 공동으로 주관했습니다.
임 부연구위원은 "화석연료 보조금을 지속하면서 기후대응 예산을 쓰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그런데) 한국은 화석연료 보조금과 관련한 집계 자료도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날 그는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수행한 국내 화석연료 보조금 현황 분석 자료를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보조금 규모 화석연료 > 재생에너지… 10배 이상 차이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는 2년(2023~2024년) 동안 국내 중앙행정기관 11곳을 대상으로 화석연료·재생에너지 관련 정부 지원 내역을 모두 조사했습니다. 기관별 세부사업 예산과 관련 법에 따른 조세 감면액을 중심으로 분석이 이뤄졌습니다.
화석연료 보조금에는 ①석탄 ②석유 ③가스 ④전력(화석연료 비중 61.2%) ⑤화석연료(복합) ⑥CCUS(탄소포집·활용·저장) ⑦정의로운 전환 ⑧수소(그린수소 제외)가 포함됐습니다.
분석 결과, 올해 화석연료를 지원하는 국내 세부사업은 158건으로 조사됐습니다. 보조금은 10조 5,100억 원에 달합니다.
같은기간 재생에너지를 지원하는 세부사업은 69건에 그쳤습니다. 보조금도 1조 1,40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전년 대비 32%나 줄어든 것이라고 임 부연구위원은 꼬집었습니다.
화석연료 보조금 중 석유 지원금이 7조 2,508억 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어 가스(1조 1,762억 원)와 석탄(1조 1,237억 원)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원유형별로는 세금혜택이 6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7조 2,000억 원입니다. 이어 ▲직접이전 28% ▲연구개발(R&D) 3% 순이었습니다.
"화석연료 보조금? 실효성 정책 맞는지 확인해야"
임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국제유가 상승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에 대응하고자 화석연료 관련 세금 인하가 많은 점을 꼬집었습니다.
일례로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만 올해 기준 약 4조 1,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전체 화석연료 보조금의 약 39%를 차지합니다.
그는 막대한 조세수입 감소가 예고된 상황에서 이같은 화석연료 보조금이 물가안정 등에 실효성 있는 정책인지 확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임 부연구위원은 이같은 화석연료 보조금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기후문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할뿐더러, 화석연료 소비를 오히려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부처별로는 기획재정부가 약 6조 8,000억 원 규모의 화석연료 보조금을 운용해 가장 컸습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약 2조 원), 국토교통부(약 1조 2,000억 원), 환경부(약 4,000억 원) 순이었습니다.
난방·수송 보조금 다시 생각해야…폐지 기한 설정 필요
특히, 그는 화석연료를 고착화하는 석탄과 가스 중심의 난방 지원 정책도 꼬집었습니다.
먼저 국내 무연탄 생산부터 사용까지 전반적으로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습니다.
한국은 2010년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2020년까지 연탄제조보조금을 폐지할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석탄기업을 지원하는 연탄보조금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단, 석탄(연탄)예산은 여전히 편성되고 있습니다.
올해 전력기금사업에 '국산 무연탄 사용발전소 한시적 지원사업'이 대표적입니다. 사업예산으로 약 159억 원이 책정됐습니다. 임 연구위원은 이름만 바꿔가며 유지하고 있는 석탄 보조금을 꼬집었습니다.
도시가스 역시도 지적됐습니다. 한국 도시가스 보급률은 85%로 세계 2위입니다. 정부는 현재 도시가스 기반시설(인프라)를 더 확충할 계획입니다.
그는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은 인구밀집도가 대부분 낮은 에너지취약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며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면서 도시가스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것은 좌초자산을 늘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유럽연합(EU)처럼 히트펌프나 태양광 패널 설치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또 5등급 노후경유차 폐지 시 지원하는 보조금을 전기자동차 전환 조건부 보조금으로 틀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습니다.
노후경유차 폐차에 지원되는 예산은 6조 2,000억 원입니다. 임 부연구위원은 이 예산의 50%가 3·4등급 경유차 구매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수송 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한 보조금이 또다른 배출량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임 연구위원은 "단계적으로 (화석연료) 보조금을 어떻게 폐지할지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며 "폐지 기한도 설정해야 한다"고 피력했습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2027년까지 연장? 대전환 필요"
한편, 다른 발제자인 윤형중 랩2050 대표는 교통·에너지·환경세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은 휘발유·경유 등 에너지 소비에 대해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2023년 걷힌 교통·에너지·환경세는 10조 8,436억 원입니다. 유류세 인하 조치로 인해 2022년 대비 2.5%(2,728억원)가 줄었습니다.
이렇게 걷은 세금은 도로 건설·유지 보수 등에 주로 활용됩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한시 운영될 계획이었으나, 7차례에 걸쳐 일몰 기한이 연장됐습니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폐지 법률안에 따라 2010년에 사라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올해도 다시 연장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이 경우 2027년 12월 31일까지 연장됩니다.
이에 교통·에너지·환경세의 교통시설특별회계 비중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윤 대표는 제언했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 또한 탄소중립의 사회기조 변화에 따라 교통시설특별회계의 집행 효율화 검토를 요구한 한 바 있습니다.
또 교통세와 에너지·환경세로 분리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현재 교통·에너지·환경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마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윤 대표는 궁극적으로는 탄소세를 도입하는 옳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무역장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윤 대표는 현행 에너지세제가 복잡하게 얽힌 누더기 세제란 점을 꼬집었습니다. 그는 "추후 탄소가격 정책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세제가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예결위원회 위원장인 박정 의원은 "재정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기후대응) 정책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며 "화석연료 보조금, 교통·에너지·환경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등이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박 의원은 토론회 내용을 참고해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