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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책 표지 / 우: 길고양이 인식 개선을 위한 지하철 광고 배너
좌: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책 표지 / 우: 길고양이 인식 개선을 위한 지하철 광고 배너 ⓒ 김하연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출판사 지와수에서 지난 9월 출간한 사진 에세이 제목이자 지하철 광고로 화제가 된 문구다. 처음 이 말을 접하면 불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이 글을 지하철 광고에 사용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서울과 인천은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처럼 여겨지는 세상, 길고양이 평균 수명이 2~3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문구에는 사실 길고양이가 아프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 책의 저자 김하연씨는 길고양이 사진을 찍으며 이들의 실상을 알리는 사진작가다. 자신을 길고양이 찍사 겸 집사라고 소개하는 그는 고양이 눈빛을 보고 사람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카메라로 그들을 담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왜 그리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이 물음이 그가 고양이 사진가로서 삶을 시작한 동기였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김하연 작가를 만나 길고양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전쟁 같은 길고양이의 삶, 제 일은 종군기자와 비슷하죠"

 김하연 작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하연 작가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김경민

- 처음부터 사진작가로 활동한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특별히 길고양이를 찍는 이유가 있나요?

"고양이가 얼마나 훌륭한 피사체인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매일 새벽 신문을 배달하면서 사진을 독학하고 길고양이를 찍었죠. 10년 동안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길고양이를 알렸지만 한계를 느껴 2014년에 그들의 삶을 담은 사진집을 내기로 결심했어요. 하지만 출간한 후 슬럼프를 겪었어요. 처음에는 잘 팔렸지만 그 후 반응이 미미했거든요.

실패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며 반년 넘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던 중 한 독자가 블로그에 남긴 글을 봤어요. 책을 읽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하더군요. 책 속 길고양이 사진이 슬퍼서 넘기기가 힘들었다는 이유였어요. 그 글을 보고 깨달았죠. 책의 내용이 무거워서 선뜻 추천하거나 읽을 수 없었다는 걸요. 그 순간 '내가 잘못 만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이후로 다시 사진 작업과 전시에 집중했죠​."

- 길고양이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의 시선은 어떤가요?

"길고양이 옆에 있으니 사람들이 저한테도 길고양이와 같은 취급을 하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이 반말하거나 욕설을 내뱉은 적도 있고 골목에서 고양이를 찍다가 신고받아 경찰서에 간 경험도 여러 번이에요. 공모전에서 상을 타고 사진작가로 점차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저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길고양이에 대한 시선은 변하지 않았죠. 어제 어미가 먹이를 찾기 위해 잠시 떠나고 아이가 홀로 남아 플라스틱 컵과 붙어 있는 모습을 올렸는데 불쌍해하며 입양하고 싶다는 반응이 좀 있었어요. 어린 길고양이 삶의 고단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여전히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남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 사진 찍고 관찰만 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이 있지 않나요?

"제 일은 전쟁을 기록하는 종군 기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길고양이의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으니까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제 역할이에요. 이 일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보는 인식도 개선하고 나아가 동물 복지 제도를 세우는 효과도 불러올 수 있다고 봐요. 그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가끔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겨요. 그래도 되도록 직접 돕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알리는 기록자의 입장에서 애쓰고 있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세운상가에서 고양이가 길바닥에 누워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세운상가에서 고양이가 길바닥에 누워 있다. ⓒ 김하연

- 지금까지 봤던 고양이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아이가 있나요?

"2010년 세운상가에서 길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고양이를 만난 적 있어요. 당시 그 아이가 죽은 줄 알고 카메라를 내밀었는데 갑자기 고개를 들었어요.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지만 생기 있는 눈을 보고 살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아보니 심한 탈수와 배고픔으로 신장 기능이 마비됐더라고요. 그때는 치료를 위한 후원을 받을 생각도 못 하고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안락사되었는데 그 일이 아직도 죄책감이 들어요. 그 아이는 떠났지만 사진과 이야기는 남았으니 그걸 알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 책을 보면 이름이 있는 길고양이도 있던데 작가님만의 이름 짓는 방식이 있나요?

"처음 지어준 이름은 '먼로'였어요. 볼에 점이 있는 모습이 마릴린 먼로랑 닮았거든요. 갸우뚱하는 모습에 '우뚱'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이도 있고, 어떤 고양이는 항상 자고 있어서 만성 피로를 줄여 '만피'라고 지었죠. 사실 요즘은 이름을 짓지 않으려고 해요. 이름을 붙이면 책임감이 생겨서 나중에 떠나보낼 때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좋아요. 이름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그들을 가까이 느끼고 돌보는 데 협조적으로 되거든요. 이름을 아는 순간부터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가 아니라 아는 아이가 되니까요."

- 길고양이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오히려 무관심한 사람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인구를 100명으로 치면 90명 정도는 길고양이에 별 관심이 없어요. 그들에게 길고양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고양이를 좋아해서 돌보는 사람들이 길고양이에만 집중하지 말고 주변인과의 관계를 고려했으면 좋겠어요. 다툼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길고양이가 밥 먹는 장소를 불편해한다면 그들과 합의해 자리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과의 갈등을 줄이면서 고양이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길고양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요?

"연대의 힘이 중요해요. 단체를 만들어서 지자체가 길고양이를 위한 정책을 만들도록 지속적으로 건의해야 해요. 지역명을 딴 고양이 보호 단체가 전국에 100개가 넘어요. 그런 곳이 더 활성화되는 게 길고양이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실제로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가 활동하는 10년 동안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됐고 최근에는 전국 최초로 길고양이 화장실 사업도 하고 있어요. 그런 사업은 고양이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노인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등 지역 사회에 큰 도움이 돼요. 이렇게 단체 연대가 길고양이와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들면 개체수가 늘어나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어요. 고양이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1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길고양이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됐다는 자료는 나온 적이 없어요. 오히려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출혈열)과 같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전파하는 쥐를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 길고양이 개체 수가 중성화와 로드킬 등의 이유로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예요.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매년 증가하는 로드킬 중 고양이 피해 사례가 절반 가까이 차지해요. 작년에도 3만 마리 이상의 고양이가 로드킬을 당했어요. 서울만 해도 2013년 25만 마리였던 길고양이가 2023년에는 10만 마리로 줄었죠. 작년에 영등포구청역에 쥐가 나온 적 있었는데 이는 고양이 개체 수 감소로 쥐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진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길고양이가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받기를"

 김하연 작가와 길고양이
김하연 작가와 길고양이 ⓒ 김하연

- 2004년부터 시작해 길고양이 사진을 찍은 지 20년인데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길고양이가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받게 하고 싶어요. 길을 걷다가 고양이를 만나면 깜짝 놀라잖아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죠. 제가 하는 일은 길고양이와 스스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알리는 '인정투쟁' 같은 거예요. 사진을 찍어 알리는 것만 아니라 길고양이 인식 개선 홍보물(굿즈)을 만드는 등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하고 있어요. 모두 길고양이 인식 개선을 위한 것이죠. 어떤 활동을 하든 길고양이가 우리 이웃으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 최근에 낸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절실할까?'라는 질문 하나가 남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왜 20년 넘게 길고양이를 돌보며 사진을 찍고 그들의 삶을 기록했는지 궁금해했으면 해요. 이 책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그중 일부라도 책을 읽고 의문을 던지고 길고양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걸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사진을 보며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의 무게와 책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제 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바뀌는 사람이 있다면 끝까지 할 겁니다."

덧붙이는 글 | 김경민, 김효원, 이호정 기자가 공동 취재해 작성한 기사입니다. 세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
김경민 https://blog.naver.com/kkmno3
김효원 https://blog.naver.com/sa__ppy
이호정 https://blog.naver.com/hojeonglee0925


#모두늙어서죽었으면좋겠다#김하연#길고양이#사진작가#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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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잡지교육원 취재기자 미디어 에디터 27기

한국잡지교육원 취재 기자 미디어 에디터 27기입니다. / az78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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