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지난 4일 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체결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발표했다. 타결안을 보면, 협정 시작 연도(2026년) 방위비분담금은 8.3% 인상된 1조 5192억 원이며 협정 기간은 5년으로 하고 연간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에 연동하며, 미군 역외자산 정비 폐지가 제도개선의 하나로 되어 있다.
정부는 이번 타결안이 '수용가능하고 합리적인 결과의 도출'이라며 연간 인상률 기준을 전 협정 때의 국방비 증가율에서 물가 상승률로 되돌린 것을 가장 중요한 성과로 들고 있다. 또 미군 역외자산 정비 지원 폐기 등 제도 개선을 통해 방위비분담 집행의 효율성과 투명성, 책임성을 제고하였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자평은 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정부는 8.3% 인상이 "미측이 제기한 소요에 기반하여 방위비분담금 규모를 협의"(외교부 보도자료, 2024.10.4.) 한 결과라고 밝혔다. 방위비분담 인상률이 미측의 소요에 기반해 논의됐다는 것은 미국이 협상 시작 때부터 요구해온 인상률 13.9%를 바탕으로 12차 협정의 인상률 8.3%가 협상되고 정해졌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13.9% 인상 요구는 12차 협정 인상률이 전(11차) 협정 인상률(13.9%)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외에 어떤 타당한 근거도 없다. 더구나 11차 협정 인상률 13.9% 자체가 기준을 바꾸는 꼼수와 국민 속임수(관련기사 :
인상 뻔한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중단해야 할 이유 https://omn.kr/28kem)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얼토당토않다. 결국 8.3%는 윤석열 정부가 협상 시작 전에 3%를 내부 목표로 정해두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이를 관철할 의지가 없었으며 시종 미국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굴종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타당한 근거 없는 8.3% 인상 요인
정부는 2026년도 방위비분담금의 8.3% 인상의 근거로 ▲최근 5년간 연평균 방위비분담금 증가율 6.2% ▲한국인 노동자 증원 소요 ▲군사건설 분야 건설관리비 증액 소요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 미국의 대폭 인상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꼼수이거나 국민 속임수다.
'최근 5년간 평균 방위비분담금 증가율'이란 인상 기준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적용된 바가 없는 듣도 보도 못한 기준이다. 보통은 물가 상승률을 적용하고 11차 협정 때는 국방비 증가율을 적용하였었다. 최근 5년간 평균 방위비분담 증가율 6.2%는 2025년 물가 상승률 2%(정부 추정)나 국방비 증가율 4.2%(예상)를 능가한다. 높은 인상률 보장을 위해 '5년간 평균 방위비분담 증가율'이란 기상천외한 꼼수를 고안해 낸 것이 아닌가 싶다.
주한미군 고용 한국인 노동자 증원 소요도 속임수이기는 마찬가지다. 노동자 증원을 위한 방위비분담금 인상액 소요는 대략 185억 원(인상률 8.3% 중 1.3%에 해당)으로 추정되는 바, 이 정도 이유로 방위비분담금 총액을 인상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한국인 노동자는 최근 감소 추세이지만 실제 증원 소요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방위비분담금 인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방위비분담금은 총액이 먼저 결정되기 때문이다. 방위비분담을 구성하는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세 항목에 대한 배정액을 조정하면 인상 없이도 얼마든지 노동자 증원 소요에 대응할 수 있다. 더구나 이번 협상에서 미군의 역외자산 정비(주일미군 항공기)를 폐지하기로 했기에, 거기서 절약되는 돈(연간 182억 원)을 이용해도 된다.
건설관리 비용도 방위비분담 인상 요인이 될 수 없다. 정부 주장대로 군사건설비(현물 지원) 가운데 건설관리비의 비중을 3%에서 5.1%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에 필요한 액수는 110억 원(8.3% 인상 요인 중 0.8%에 해당)으로 이 정도의 금액이면 얼마든지 현물 군사건설비 안에서의 비목별 조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또 군사건설비는 많은 미집행금이 발생될 것이 예상되어 애초에 예산편성조차 되지 않는 이른바 감액분(협정액과 예산액 차이)이 2020∼2023년 사이 매년 천억 원 이상에 달하였다. 매년 수백억 원의 이월액과 불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관리비의 증액을 위해 방위비분담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11차 협정에 대한 평가를 생략한 것은 미국 봐주기
12차 협정은 11차 협정을 갱신하는 협정이고 또 미국은 12차 협정 인상률이 11차 협정 인상률(13.9%)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만큼, 미국의 소요제기가 타당한가를 검증하자면 응당 11차 협정에 대한 평가가 병행되어야 했다.
2020년 말 기준으로 11차 협정기간인 2020∼2023년 사이에 발생한 방위비분담금의 미집행금(집행 잔액 포함)은 11차 협정 2조 이월 규정(2020년 방위비분담금 1조 389억 원 중 인건비 3144억 원을 제외한 군사건설비와 군수지원비를 추후 미국에 지급토록 한 규정)에 따른 7245억 원, 협정액보다 감액 예산 편성된 5135억 원, 불용액 402억 원, 미군 보유 미집행현금 미회수분 약 2500억 원 등을 합해서 대략 1.5조 원에 이른다.
이런 대규모의 미집행금이 발생했다는 것은 11차 협정의 인상률 13.9%가 터무니없이 높았으며 그 결과 방위비분담금이 우리 국민에게 불필요하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응당 12차 협정 협상에서는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삭감했어야 한다. 그러나 한미는 11차 협정에 대한 평가를 생략하였다. 이는 물론 미국 봐주기다.
정부의 낯 뜨거운 주장
정부는 방위비분담금의 연간 인상률 기준을 소비자 물가 상승률로 하고 5% 상한선을 둔 것을 "중요한 성과"라며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연간 인상률 기준을 국방비증가율이 아닌 소비자 물가 상승률로 되돌렸다고 해서 이를 성과로 보는 것 자체가 낯 뜨거운 일이다.
물가 상승률 인상이 적용되는 2027~2030년의 방위비분담금은 8.3%로 인상된 2026년 방위비분담금 1조 5192억 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12차 협정 5년 내내 고수준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할 정도로 높은 반면 국방비 증가율은 상대적으로 둔화되어 양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2023년 기준 물가 상승률은 3.6%, 국방비 증가율은 4.4%였고, 2022년 물가 상승률은 5.1%로, 3.35%였던 당시 국방비 증가율보다 더 높았다. 일본의 경우 5년간의 협정이지만 연간 인상률을 따로 정하지 않으며 협정 첫해 방위비분담금 수준이 계속 유지된다.
정부는 "다양한 제도 개선 조치에 합의함으로써 방위비분담금 운영의 효율성‧투명성‧책임성을 더욱 제고할 수 있게 되었다"라지만, 정작 제도 개선의 핵심인 방위비분담의 결정 방식을 현행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바꾸는 문제는 12차 협정의 의제로도 삼지 않았다.
현행 총액형은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의 소요를 판단하고 결정하며 방위비분담금 집행도 통제한다. 총액형 하에서는 미국이 갑이고 한국이 을이다. 국회는 소요형으로의 전환을 10차 협정(2019.8) 비준 때 부대의견을 달아 촉구하였고, 11차 협정(2021.8) 비준 때는 소요형에 대해 국방부와 외교부가 공동으로 연구용역을 맡길 것을 부대의견으로 달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7월에야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는 총액형의 소요형으로의 전환을 12차 협정에서는 포기해버린 것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처사이고 소요형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미국에 굴종한 결과다.
정부는 주일미군 항공기 등 미군 역외자산 정비 지원을 폐지한 것을 제도 개선의 성과로 내세운다. 하지만 애초 미군 역외자산 정비는 주한미군 경비를 지원하는 개념인 방위비분담협정을 위반하는 불법이기 때문에 폐지는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폐지 결정을 우리 국민 입장에서 성과로만 볼 수 없다.
미국은 방위비분담금에 의한 주일미군 항공기 정비를 포기했지만 올 5월 말 한미 국방장관 회담이나 9월 한미 국방통합협의체 회의 등을 통해 미 국방부의 '권역별 정비거점 구축정책(RSF)'에 대한 한국의 협력을 끌어냄으로써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을 상대로 평시 작전을 수행하는 군함이나 항공기 등의 미군 장비를 한국의 민간 정비 자산으로 정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예산을 크게 절약하고 대중국 군사적 우위를 계속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한국의 정비 거점화를 통해 절약되는 비용은 방위비분담금을 이용한 주일미군 항공기 정비로 절약되는 비용(연간 180억 원 정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한국의 정비 거점화는 미국이 상정하고 있는 중국과의 전면전에 대비한 미국의 군사력 증강의 일환이다. 중국과의 전투수행을 목표로 하는 인도태평양지역 미군 전투 장비의 정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군사적, 외교적, 산업적 부담을 우리에게 지우는 것과 더불어 한국이 미군의 정비기지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외 미군 자산 정비 폐지를 요구한 우리 국민의 바람에 윤석열 정권이 진정으로 부응하려면 한국의 권역별 정비 거점 구축 정책 참여와 정비 거점화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방위비분담금이 대중 대결 비용에 쓰일 가능성
정부는 "기존 방위비분담 협정의 틀을 유지"(외교부 보도자료) 한 것을 하나의 성과로 보는 듯하다. 기존 틀을 유지했다는 것은 새로운 항목 신설이 없었고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세 항목으로 구성된 틀이 유지된다는 의미다.
11차 협정 때는 미국이 남중국해나 호르무즈해협에서의 미군 작전이 한국 방어에 기여한다는 논리로 '준비태세'와 같은 항목의 신설을 요구해 큰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틀이 유지된다고 해서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을 역외 미군의 작전비나 대중 대결 비용으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은 12차 협정 협상에 임해 시종 "한미동맹은 동북아시아와 그보다 넓은 인도태평양지역, 그 너머의 안보의 핵심축"(연합뉴스, 2024. 5. 16.)이라면서 이런 한미동맹의 힘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방위비분담금이 대폭 증액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런 미국의 입장과 태도로 볼 때, 설사 이번 협정 협상에서 새로운 항목이 신설되지 않았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방위와 상관없는 대중 대결 비용 등에 방위비분담금을 불법전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방위비분담 협정 틀이 유지된다는 정부의 말도 사실과 다르다. 11차 협정 군수지원비 항목 속에는 '일시적 주둔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해외 주둔 미군의 공공요금 일부, 위생·세탁·폐기물 용역 등 운영비를 지원하도록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는 12차 협정에도 그대로 담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외미군의 일시적 주둔 지원은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지원하는 개념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의 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의 임무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라 중국 견제 임무로 바뀌었다. 주한미군의 역외에서의 대중국 견제 임무는 이제 보통으로 이뤄지고 있다. 오산 미 공군기지의 U-2 정찰기는 2020년부터 대만해협 등을 정찰해 오고 있으며, 주한 미 공군 F-16은 주일 미 공군은 물론이고 싱가포르나 태국과의 연합연습을 벌이고 있고 2022년 8월에는 낸시 펠로시 대만 방문 때 인도네시아까지 엄호 비행하기도 하였다.
주한미군의 대중국 견제 임무 수행은 한국 방어 목적의 주한미군 경비의 일부를 지원한다는 개념의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이 더 이상 최소한의 명분조차 없음을 뜻한다. 애초 주한미군 경비를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한미 소파를 위배한 초법적인 조치이자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산물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폐지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12차 협정 타결안은 속임수와 꼼수를 통해 미국에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주권과 국익이 크게 훼손된 안이다. 정부는 마땅히 협정 타결안을 철회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평화누리통일누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