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은, 지난 삼십 년 동안 제가 나름으로 성실히 살아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 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한강의 수상 소감 중)
친구들은 나보고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48시간인 듯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삶이 단순한 나로서는 그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중에는 학교와 집만 오가고, 토요일에는 친정 부모님을 뵙고 어쩌다 생기는 시간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 단조로운 삶이라 도리어 24시간이 아닌 12시간밖에 안 된다고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시간이 길어 보인다면, 매일매일 기록하는 습관 때문일 거라고 친구들에게 답했었다. 한강은 나의 답이 불완전하고 애매함을 증명하듯, 비슷하지만 근사한 답을 수상 소감으로 내놓았다.
삶의 갈피 갈피를 짚으면서 사색했던 생각들을 글로 옮겨놓으면 그 글은 영원히 내 삶에 각인이 된다. 게다가 무늬 하나를 만들고 그 무늬는 어제 만들었던 무늬에 보태져 시간을 더 길게 만들었다.
사람을 귀찮게 할 뿐 아무도 읽으려 않는 글을 왜 쓰는가? 차라리 이 시간에 일을 더하고 잠을 더 자는 일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포기할 만함에도 나는 글을 계속 썼다.
그리고 그런 글들의 가치를 한강이 답해 준다. 글을 쓰니 전류가 흐르듯 생생하게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한 줌의 모래처럼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글쓰기는 영원에 합당한 행위라고.
틱낫한은 화를 내는 것이 나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짚었다. 타인을 다치게 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다치게 한다고.
생각해보면 글도 그렇다. 글을 읽는 1차 독자는 나 자신이다. 나를 찬찬히 돌아보게 하고 내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누군가를 위로하기 전에 나부터 치유된다.
객관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주관적 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놀랍게 변화시키는 일은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소감이었다. 일단 펜을 들고 글을 쓰면 된다고, 용기를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