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지난 18일~19일 독립·민주화운동 사적지를 순례했다.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들과 친일 왜곡 역사를 바로 잡으려 평생을 바쳐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방학진 실장 등이다.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회 서울지부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일반 시민을 초청해 독립 운동의 산실인 안동을 순례지로 선택한 이유는 왜곡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으려는 의지를 새롭게 다잡기 위함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회는 해마다 상, 하반기 두 차례 민주화운동 사적지 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임태경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회 서울지부 사무국장은 "상반기는 5.18을 잊지 않기 위해 광주 망월동과 중심 순례를, 하반기 역시 광주 전남지역 민중항쟁 사적지를 중심으로 순례를 이어왔다. 이번에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경북 지역과 원주를 순례지로 결정해 안동의 임청각과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는 것은 독립·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온전히 새겨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첫 순례지 경북 독립운동의 기둥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63(법흥동)에 위치한다.
임청각은 1518년 낙향한 이명이 도연명의 '귀거래사' 싯구를 빌려 이름을 지은 조선 시대 가장 규모가 큰 양반 99간 규모의 주택으로 500년 역사를 간직한 보물이다.
임청각은 사당, 별당형 정자 군자정, 본채인 안채,중채, 사랑채 행랑채로 이뤄진 조선 시대 대표적 주택이다.
1942년 일제 강점기 중앙선 철도 부설로 88칸 건물 중 부속 건물이 철거되어 현재는 60여 칸만 남아있다.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끓기 위해 마당을 가로질러 건설한 중앙선 철로는 78년 만에 제거해 입구와 담장 산책로를 조성했고 사라졌던 가옥 2동에 대한 복원 작업 중이다.
현재 훼손된 임청각 완전 복원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며 광복 80주년인 2025년 복원이 완성될 예정이다. 임청각에 서린 민족 정기와 석주 이상룡의 시대 정신을 만날 수 있는 1박 2일 '임청각 체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 100>에 소개된 귀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이다. '이 무릎을 꿇어 종이 될 수는 없도다'라며 1910년 전 재산을 정리해 식솔 60여 명과 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와 부민단을 설립해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자유의 반대는 노예이다. 자유를 보장받고 싶은가? 그러면 노예의 습관을 고치라'고 역설했고 1911년 나라를 떠나면서 <거국음>이라는 글을 지어 남겼다.
거국음
더없이 소중한 삼천리 우리 강산
오백 년 동안 선비의 예의를 지켜왔네
문영이 무엇이기에 노회한 적 불러들여
꿈결에 느닺없이 온전한 나라 버렸나
이 땅에 그물이 처진 것을 보았으니
어찌 대장부가 제 한 몸을 아끼랴
고향동산아 슬퍼하지 말고 잘 있어라
훗날 태평성세가 되면 다시 돌아와 머물리라
- 1911년 나라를 떠나면서 지은 글
임청각에서 민족 문제 연구소 임헌영 소장의 반제, 반파시즘, 민족해방 투쟁의 문화운동을 펼친 이육사에 대한 짤막한 강연이 이어졌다.
임 소장은 이육사를 단순히 저항 시인의 틀에 가두는 왜곡된 역사를 경계했다. 이육사는 투철한 민족 해방의 투사였으며 시는 그의 생각과 신념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강철 같은 의지로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한 육사를 반제, 반파시즘, 민족해방 투쟁을 펼친 독립 투사로 기억해야 육사의 삶에 제대로 다가 설 수 있다고 임 소장은 강조했다.
임 소장은 특히 '현상이 아닌, 본질과 뿌리를 꿰뚫어 보는 역사 인식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4.3이나 5.18, 여타 항일 독립 운동가를 다루는 작가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본질을 비껴간 역사의 주인공 찾기나 사건 서술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5.18 가해자 독재자 전두환 등을 다루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유감을 드러냈다 임 소장은 "근본 원인을 찾아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한다. 4.3 이나 5.18은 식민지이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통일 반대 세력인 일본과 미국, 청산하지 못한 친일 세력과 친미 세력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역사를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임 소장은 또 "박완서는 장편소설 <오만과 몽상>에서 '매국노는 친일파를 낳고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낳고 탐관오리는 악덕기업인을 낳으며', 권력과 자본을 독식하고 '동학군은 애국투사를 낳고 애국투사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장이를 낳으며' 가난과 소외와 핍박 속에서 주변인의 삶을 살아야 함을 그려냈다"며 "이것이 역사적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두 번째 순례지 '이육사문학관'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에 위치해 있다. 육사의 출생지인 원천리 불미골에 전시관(971.75 m2), 생활관(497.28 m2), 이육사 생가(90.72 m2)로 지어졌다. 이육사 문학관은 이육사의 민족 정신과 저항 문학 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한 공간이다.
문학관에는 항일 민족 투사이며 저항 시인인 이육사의 정신과 혼, 삶을 돌아보며 바른 역사관을 정립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육사는 17번이나 감옥 생활을 하고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저항하다가 광복을 1년 앞두고 끝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한 독립 투사이자 저항 시인이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독립의 의지를 놓지 않은 육사는 웅장한 필체의 시 <광야>를 통해 민족 해방의 그날을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로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
우리의 삶은 과거의 역사의 연장이며, 오늘 기록되는 역사이고, 미래 역사의 주춧돌이 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역사를 살아내고 오월 정신은 어떻게 빛으로 부활시킬 수 있을까.
임 소장 말대로 '주인공 찾기나 사건이 아닌 본질을 꿰뚫어 보는 바른 역사 인식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현상에 주목하다 보면 본질을 놓치고 잘못 굴러가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거나 궤도를 올바르게 수정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문구는 바로 이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