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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서울 종로구 시각장애인 쉼터에서 작은 규모의 e스포츠 대회가 열렸다. 참여한 11명의 선수는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전맹 5명, 저시력 6명이었다.

나 또한 처음 참가하는 게임 대회에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도전했다. '철권 8'이라는 격투 게임을 청각과 촉각만으로 즐기는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지만 신선한 도전이었다.

게임에서 상대의 기술을 소리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단순히 청각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모든 감각과 이성을 총동원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연습이 부족했던 나는 상대의 기술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다른 참가자들의 집중력과 노력에 큰 감명을 받았다. 대회 당일 내내 여기저기서 버튼 누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현장의 열정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치열한 결승전이었다. 상대방의 공격 소리를 듣고 때맞춰 방어하는 버튼 소리, 연속기를 위해 버튼을 힘껏 치는 소리등이 울려퍼졌다.
치열한 결승전이었다. 상대방의 공격 소리를 듣고 때맞춰 방어하는 버튼 소리, 연속기를 위해 버튼을 힘껏 치는 소리등이 울려퍼졌다. ⓒ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

전맹 시각장애인으로 1등을 차지한 박규민 씨는 오랜 시간 연습하며 대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어려웠지만, 꾸준히 연습하다 보니 소리로 기술을 구분하는 것이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연습 경기에 참여한 김선영 씨는 "컴퓨터와의 대결보다 실제 사람과의 대결이 더 긴장되고 재미있다"며 시각장애인으로서 이런 기회가 많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전맹부 경기에 참여한 기자. 스스로 맞은 건지, 타격을 한 건지 분간이 어려워 금세 떨어져버렸다.
전맹부 경기에 참여한 기자. 스스로 맞은 건지, 타격을 한 건지 분간이 어려워 금세 떨어져버렸다. ⓒ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의 전석 재정위원은 이번 대회를 3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격투 게임은 상대와 마주 보며 단순한 동선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에게도 게임을 통한 성취감과 여가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대회 후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청각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참가자들은 개인 공간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요청했으며, 저시력 참가자들은 자신의 시력에 맞는 환경에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개인 맞춤 설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참가자는 '하스스톤', '디아블로4' 등 다른 게임들도 즐길 기회를 희망했다.

이러한 시도는 시각장애인의 여가 활동 확대와 사회적 참여 증대에 큰 의미가 있다.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는 이번 대회를 발판 삼아 시각장애인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게임을 통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앞으로도 게임을 통한 문화생활 참여 기회를 계속해서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 제 1회 시각장애인 e스포츠 경기대회의 개최식.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 제 1회 시각장애인 e스포츠 경기대회의 개최식. ⓒ 서울시각장애인연합회 종로구지회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철권 8'의 접근성 메뉴는 제한적이며, 한국어 음성 지원이 부족하다. 전석 재정위원은 "미국의 '더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접근성 메뉴가 잘 마련된 게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 접근성 향상을 희망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여가 활동의 다양성을 넓히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게임을 접하고, 여가와 사회적 참여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각장애#시각장애인#접근성#E스포츠#철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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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에서도 색채있는 삶을 살아온 시각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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