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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 '고 문재학'님을 묘사한 한국 수묵화 전시회 소식을 들었다. 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대한민국에 밀려온 거대한 문화 쓰나미임에 분명했다. 수상 이후 만나는 사람마다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이 대화의 소재였다.

사람들은 그 어떤 소식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며 '정말 내 생전에 이런 일이 있고만. 나도 한강 작가의 사인본이 있어'라며 자랑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중심, 도도한 한강의 물결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 마다 자긍심이 새겨진 문화기둥이 세워지고 그 사이로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이 와중에 김호석 화백의 5.18 역사 관련 전시회 소식을 듣고, 잡혀있던 선약을 물리칠 정도로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다. 광주까지 약 2시간, 오랜만에 남편과 가을 여행하는 맘으로, 일석 삼조의 계획 –여행, 관람, 글쓰기-을 가지고 전남대로 출발했다.

들판에 빼곡하던 이삭걷이가 끝나지 않은 곳이 많아서 내리는 가을 비에 농부들의 심정은 애가 탈지라도, 부풀어 오르는 안개 덕에 산과 들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한국화였다.

김호석수묵화전시회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전시회장
김호석수묵화전시회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전시회장 ⓒ 박향숙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김호석 개인전(2024.10.16~24)'의 제목은 <무등의 묵(墨), 검은 울음>. 고 문재학 님의 죽음을 다룬 <마지막 입술> 등 29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그중 21점이 1년 전부터 그린 5.18주제의 신작이었다. 전시기획을 한 김허경님은 전시회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음 글로 행사의 취지를 전했다.

가전 김호석(1957~)은 역사와 전통, 민중의 삶과 시대의식, 자연과 일상의 단면을 수북 정신으로 탐구해 온 한국 수묵화의 거장이다. 시대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적으로 표현해 온 그의 화업은 묵화의 사의적 태도에 근원하고 있다. 1980년대 군사정권의 불의와 폭력에 맞섰던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민족 민중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의 초상, 역사적 사건들을 검은 먹으로 고증해왔다.

이번 전시 <무등의 묵, 검은 울음>은 2024년 신작을 중심으로 철저한 사실성과 철학적 사유에 기반하여 민주, 인권, 평화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그래서일까. 누구든지 대적의 공간에 머무는 순간, '무등의 묵'이 함의한 '검은 울음'의 '신(神)'과 '형(形)'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김호석 화백은 한겨레 신문과의 통화에서 "단팥 빵을 먹다가 떨어뜨린 두 소년의 주검이 찍힌 사진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한 기사를 읽었다. 김 화백은 문재학 학생 시민군의 죽음을 담은 작품에 <마지막 입술>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교련복을 입고 주검으로 남은 학생 옆에 '먹다 만 단팥빵'이 남아 있었다. 이토록 오랜 세월 속에서도 빵의 흔적이 무고한 죽음의 입술 위에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림을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작품명 <마지막 입술> 한강작가의 소설 <소년이온다>의 실제 주인공 '고 문재학'님의 사진을 모티브로 한 그림
작품명 <마지막 입술>한강작가의 소설 <소년이온다>의 실제 주인공 '고 문재학'님의 사진을 모티브로 한 그림 ⓒ 박향숙

또 그 옆에 전시된 '하얀 침묵'이라는 작품은 목관 속에 안치됐던 주검들을 형상화한 그림이었다. 특히 '주검에서 나는 냄새'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전했다. 주검의 입속에 들어있던 '하얀 솜' 만을 그린 작품,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나간 아버지도 끝내 돌아오지 못해 주인을 기다리는 낫의 끝이 녹슬은 모습으로 그려진 작품, 수많은 검은 새들이 하늘을 나는 작품 등을 보면서 은유와 이미지 상징으로 표현한 작가의 의도와 5.18의 정신을 아주 조금이라도 사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명<무등> 솔개와 물고기와의 상생처럼 모두가 주인인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작품명<무등>솔개와 물고기와의 상생처럼 모두가 주인인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 박향숙

그림에 문외한인 내 눈을 주목하게 한 것은 바로 솔개와 물고기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었다. 동양고전 <시경>의 한 대목에 나왔던 '연비어약(鳶飛魚躍) -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뛰면서 연못에 노닐다'가 생각났다.

제목이 무엇인가 보니 <무등>이라고 써 있었다. 전시관을 찾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언뜻보고 솔개가 물고기를 잡아채려는 모습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림 속 솔개는 발톱을 보이며 위협하지 않고 물고기를 응시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무등'의 뜻이 계급이나 차이가 없는 세상을 의미한다면, 솔개와 물고기도 각자 참 주인의 모습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천지만물의 이치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마땅히 더 그러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김 화백이 말하는 것 같아서 '제목, 참 좋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김 화백은 전북 정읍 출신이며 동학농민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역사적 사건을 화폭에 담으며 꾸준히 미술로서 사회운동을 하는 화가 같은 이미지가 있다. 작년에도 광주 5·18기록관과 광주시립미술관기록관에서 초대전을 열었고 그를 계기로 광주시민들과의 인연이 더 깊어졌다고 한다.

이 전시회와 함께 전남대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 전도 선보이고 있었다. 단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것만으로 5.18 비극의 역사가 치유되는 건 아닐지라도, 오랜 가뭄에 비가 내리듯, 한강 작가의 수상소식이나, 김호석 화백의 전시회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조차도 엄청난 선물이다. 하물며 광주시민과 제주 사람들을 포함하여, 역사적 비극의 아픔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분명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개인전을 의뢰 받은 김호석 화백은 지난 1년 동안의 작업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실제 사진으로 작업실 전체를 붙여 놓고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함께 5월과 함께해야만 그림이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 결국은 작품은 실패해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실패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지 관람객일 뿐인데, 전시작품을 보면서 느끼는 고통과 섬뜩함, 슬픔의 강도가 높은 것은 분명 그림을 그린 화백의 진정성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해야 하고 치유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우리 사회가 희생자들의 숭고한 정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 자들의 예의가 표해지길 바라며 그림과 문학작품을 통해서나마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검은 울음' 속에서 흰 눈꽃으로 피어날 그 언젠가를 기다린다. 광주 무등에서 펼쳐놓은 김화백의 '묵의 세계'를 볼 수 있었음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작품명<혈죽> 말라버린 대나무 잎속에서 다시 솟아나는 죽순의 생명으로 희망을 전했다
작품명<혈죽>말라버린 대나무 잎속에서 다시 솟아나는 죽순의 생명으로 희망을 전했다 ⓒ 박향숙

#김호석화백#광주무등#전남대학교#김호석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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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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