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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그리스·로마는 우리에게 가깝지만 먼 이야기일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학창 시절 세계사 시간에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배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리스·로마는 신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문화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신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신전은 각자가 모시는 신을 숭배하는 성스러운 공간이자, 생산물이 모이고 다시 분배가 이루어지는 경제 활동의 공간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장소였다.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신'이라는 존재가 중요하다는 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회(9월 29일 종료)에서 관람하였던 여러 유물로 느낄 수 있었다.

봉헌용 그릇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에 대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수단이자 각자가 가진 소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신전에 바치는 물품이었다.

 서울 용산구 소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봉헌용 그릇'
서울 용산구 소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봉헌용 그릇' ⓒ 전대호

신심(信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저마다 가진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바친 그릇이었던 탓인지 솜씨 좋은 장인의 제작으로 보이는, 뛰어난 품질의 그릇이었다고 한다. 이 그릇 하나에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릇은 단순한 용기(容器)가 아닌 신전에 바쳐 신의 가호를 받기 원한 그들의 염원이 담긴 예물이었다.

그들의 신에 대한 마음가짐은 원통형 인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다스렸던 외래인이 건국한 카슈 왕조의 원통형 인장에는 수염을 기른 남성이 스핑크스 아래에서 경배의 의미로 오른손을 들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앞서 숭배와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였던 신전 안에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존경의 의미로 바쳤다는 봉헌용 상에서도 신성에 압도되었다는 뜻을 새겨 신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였다.

그들은 장기간에 걸쳐 많은 신을 숭배하였는데, 도시마다 초점을 두고 믿었던 신과 의례도 각양각색이었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신 중 수호 여신 라마의 비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에서 엿보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

 수호 여신 라마의 비.
수호 여신 라마의 비. ⓒ 전대호

라마 여신은 '중재의 신'으로서, 두 팔을 들어 위계가 더 높은 신에게 남성(주로 왕이었다고 함)을 데려가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메소포타미아 전시회에선 신(神)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볼 수가 없었다. '신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숭배하였던 신들은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염원을 이루어주는 역할보다는 무섭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보인다. 그들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신들을 숭배하였으나 신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장인이 만든 그릇이나 신성에 압도된 남성을 새긴 봉헌용 상을 바쳐야 비로소 신이 그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는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관계였던 것이고, 비즈니스적 관계였다고 볼 수 있다.

신에 관한 내용은 메소포타미아 전시장과 같은 층에서 열리고 있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회(오는 2027년 5월 30일까지 전시)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리스·로마 신화 자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그들의 신들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숭배하였던 잡다한 신들과 비교하였을 때 꽤 대중적인 신들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과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신에 대한 관점 및 접근 방식은 분명 차이가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하여 인간의 세계를 해석하려고 하였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마주칠 법한 문제의 해답을 '신화' 안에서 찾고자 하였다.

태초의 카오스 이후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태어난 이래 줄줄이 신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신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였고, 최고 권력에 대한 신들의 투쟁이 벌어졌다. 다툼 끝에는 제우스가 최고 권좌에 앉게 되었다.

이렇게 권력에 대한 세력 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스·로마 신들에게서 인간 세상의 향이 물씬 풍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신들의 분노와 다툼 등을 통하여 고대 그리스인들은 물리적 세계와 사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고대 그리스의 신은 고유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인격이었으며, 각자마다 관장하는 영역이 있었다.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에로스'라는 하나의 의인화된 신격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각자 신들마다 가진 영역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세상이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

로마는 본래 자신들만의 신들이 존재하였으나, 그리스 문화가 유입되면서 의인화된 신격을 지닌 그리스의 신들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로마가 자신들만의 신을 고집하지 않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수용하였기에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묶어 보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꽃이 피고 지며, 낮과 밤이 찾아오는 등 세상의 모든 현상은 그들 하나하나를 관장하는 신들의 역할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신과 인간은 서로가 가지고 싶은 것을 주고받는 관계였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단순히 신의 가호를 받기 위해 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예물을 바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간적인 고통이나 고민을 그리스·로마의 신에게 하소연하며 이를 극복하고 해결해 달라고 빌며 제물을 바치면, 신이 호의를 베풀고 다시 인간은 그 뜻에 감사하며 제사를 지냈다.

 그리스 술잔 '취한 자들의 행렬'
그리스 술잔 '취한 자들의 행렬' ⓒ 전대호

전시장에서 그리스 술잔 '취한 자들의 행렬'을 만날 수 있었는데, '취한 자들의 행렬'은 음주와 가무를 즐기는 축제인 디오니시아에서 사용하였던 술잔이다.

디오니시아에서 사람들은 이 술잔에 술을 마시며 축제를 즐기는 동시에, 자신들이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 신의 존재를 느끼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에 전시되어 있는 제의에 사용되었던 용기(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에 전시되어 있는 제의에 사용되었던 용기(국립중앙박물관 전시) ⓒ 전대호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기도에 호의를 베풀었던 신에게 감사하고 경배하는 제의 때 사용했던 용기는 그들은 개인의 삶에서 무언가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할 때 한 나라를 이끄는 리더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단을 하거나 전쟁을 선포할 때 자신들이 숭배하였던 신을 부르고 제물을 바쳤음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다.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로마 시대 모두 사실상 그들의 신들이 나라의 주인이었던 것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한 공간 아래에 펼쳐진 두 전시회에서 만났던 여러 명의 신을 통하여 당대 사람들의 심정과 생활상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차이점은 있었으나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로마 모두 신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두 전시회 속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그들의 모습에 대한 개신교 신자로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다. 당대 인간 세상 속 발생하였던 다양한 문제들이나 고난 속에서 일말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초월적인 존재를 설정하여 숭배하는 그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리스·로마 시대 신화에서 그들이 인간 세상 속 일어나는 만사를 이해하고자 했던 모습은 참신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숭배하거나 설정하였던 신들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이 그랬다. 또 경배 받는 신들이 신적 위엄은 없이 마치 인간처럼 자리에 사활을 걸고 싸우는 모습, 또 무언가를 받아야만 비로소 사람의 소원을 성취해 주는 상당히 '금전만능주의'적인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불완전한 신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들을 숭배할 수밖에 없었던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로마 사람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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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방송통신위원회 2030 자문단, <한겨레:온>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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