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3 학부모인 어느 시민기자가 쓴 '고3 교실 풍경'과 관련한 기사를 읽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작년 2월까지 교직에 종사했던 전직 중등 교사로서 공감하는 바가 크다.
관련기사 : 박정은 시민기자
어제는 결석, 오늘은 조퇴... 고3 교실 풍경입니다https://omn.kr/2anvt
나는 재직 시에 다년간 고3 담임과 교과 수업을 담당했다. 지금 고3 교실 풍경이 어떨지는 눈에 선하다. 해마다 2학기가 되면 고3 교실에서는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입 수시모집에서는 3학년 2학기 교과 성적이나 학교생활은 반영되지 않아, 수시모집에 지원하여 대학 진학을 하려는 학생들은 수업에 관심이 없다.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인원의 비중은 전체 모집 인원의 80%에 육박한다. 정시모집에서도 수능위주 전형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대부분이라 2학기에는 수업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떨어진다.
고3 2학기 아이들에 대한 지도의 어려움
이맘때 고3 교실에는 학생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놓여 있는 처지도 다르다. 수능과 정시모집을 대비하는 학생, 수시모집 면접과 논술, 실기를 준비하는 학생, 이마저도 해당되지 않는 학생 등이 섞여 있다. 어떤 상황이든 교과 수업에 대한 학습 동기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학생들도 저마다의 학업 수준이나 부족한 과목에 따라 학습 방식이나 내용이 달라진다. 학급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과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다. 학생들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도 정상적인 교과 수업을 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이미 교과 수업의 진도도 사실상 끝난 상태라서, 학생들의 현실에 맞추어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내가 은퇴 직전에 근무한 학교에서는 3학년 2학기가 되면 수업반을 수능 대비반과 일반반으로 편성하여 운영했다. 수능을 대비하는 수험생의 면학 분위기와 학습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수능 대비반에서는 주로 학생 개별 질문을 받아 담당 교사가 설명해 주거나 학습 분위기 조성에 힘썼다. 아울러 수능을 대비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좀 더 자유롭게 수업 시간을 활용하여 자기 발전을 꾀할 수 있는 활동들이 이루어지게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교과 수업의 학습 부담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학교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지겨워한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수시모집으로 대학 입시가 끝나는 학생들의 상당수는 졸업에 필요한 출석 일수를 채우면 등교하지 않는다. 수능이 끝나면 이런 학생들은 더욱 많아진다.
그렇다고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을 무턱대고 나무라기도 어렵다. 학생으로서 학교에 나오는 것이 극히 정상이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등교하더라도 딱히 할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3 학생들을 담당하는 선생님들도 2학기가 되면 교과 수업뿐만 아니라 생활 지도 하기가 난감해진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교육 방안을 협의하고 강구하는데도, 정규 교육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 고3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 만한 유의미한 지도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학교에서 대입 전형과 상황이 서로 다른 학생들을 온전하게 지도한다는 것이 현행 대입 제도하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성인으로 접어드는 길목, 고3에게 관심과 격려를
현실이 이렇다고 고3 아이들의 지도에 손놓고 있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성인으로 접어드는 길목,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고3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3학년 2학기, 졸업 때까지 고3 아이들 지도는 공교육 현장인 학교의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학부모를 비롯하여 정부에 이르기까지 고3 학생들의 지도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야 한다.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인 고3의 마지막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앞으로의 인생길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없다.
수능과 무관한 학생들은 대부분 이미 해방감에 젖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이 끝나면 고3 아이들은 학업 부담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더욱 들뜨게 될 것이다. 놀고 싶은 학생들의 심리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들뜬 기분으로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들이 아깝다.
많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나름대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학생들도 있다. 무엇보다 책을 펼쳐놓고 꾸준하게 독서하는 아이를 보면 그렇게 사랑스럽고 대견할 수가 없다. 학교는 학생 누구나가 독서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다. 학교 도서관에는 많은 양서들이 비치되어 있으며, 선생님들도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쌓도록 학생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책들을 고3 아이들이 지금 이 시기에 마음껏 읽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펼쳐지는 인생에서 두고두고 정신적인 자양분으로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시간들이 고3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살찌울 수 있는 적기이다.
나도 학교에서는 고3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우리집 아들딸의 고3 시기를 거쳤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아들딸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적성도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아이들의 속마음과 적성이나 성향을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의 적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대학을 진학하고 나서도 진로를 바꾸어 다시 재수, 삼수, N수를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시행착오와 시간 낭비를 줄이려면 학부모들이 고3 자녀들과 좀 더 깊이 있게 소통하고, 자녀의 적성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주변 분위기에 따라가기보다 지금 주어진 이 시간들을 잘 활용하면서 자기 소신대로 진로를 개척해 나갔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