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높은 곳에 두지 마세요. 작은 손거울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가끔 꺼내어 그것으로 자기 모습을 비춰보세요. 나를 살피는 도구로 시를 활용하세요."
"손거울처럼 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세요"
정담북클럽을 찾아온 이문재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오기 일주일 전, 우리는 정담북클럽 '작가없이뒷담화'에서 <혼자의 넓이>(이문재, 2021, 창비)를 함께 읽었다. 시가 낯설고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서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두고 토론했다.
지난 24일, 군산을 찾아온 시인은 '작가두고앞담화'의 첫 고민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이어갔다.
"저도 그렇지만, 국어 교사가 잘못한 거죠. 시를 시험 문제의 대상으로만 만나는 것은 범죄라구요. 좋은 방법은 어릴 때 시를 많이 외워두는 겁니다. 나중에 삶의 한 모퉁이에서 불현듯 떠오른 시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어줄 수 있지요."
모래언덕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에서 석유를 파내는 것과 황해 바다를 메우는 것이 다르지 않다
덕분에 사막의 아들딸은 비행기를 타고 우리의 아들딸도 자동차를 몰지만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모는 아들딸의 잘못이 아니다
전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이다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모든 아버지가 아들딸의 미래를 끊임없이 훔쳐온 것이다
청년의 미래를 보란 듯이 줄기차게 착복해온 것이다
'삼대' 일부
<혼자의 넓이>(이문재, 2021, 창비) 중에서
시를 사용하라고 했지만, 시의 '쓸모'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진가가 드러나는가 보다. 우리가 나눈 다른 고민도 시간이 지나면 잘 익어서 해결되어 있으면 좋겠다.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소용'이 있을까. 세상의 온갖 좋은 책을 읽어도 내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삼대'의 시 구절처럼 기후와 미래를 걱정하면서 막상 자동차 타고 비행기 타는 나의 일상에 변화가 없다. 이대로 괜찮을까.
10월 정담북클럽의 주제인 '문학과 길'에 대해 물어보았다. 문학에게 힘이 있을까, 문학으로 길을 낼 수 있을까.
좋은 시는 질문을 던지는 시...
"시는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시는 일상에서 하지 않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제 죽었다면'이라는 제 시를 아침부터 단톡방에 올려서 반응을 기대하신 분이 있다니, 그것은 무리입니다. 그래도 두 분씩이나 답을 주셨다니 평소 인간관계를 잘 다져 놓으셨나 봅니다.(웃음) 그분들이 이 시를 두고 무섭다고 하는 건, 고정된 생각에 묶여 다른 질문과 다른 생각을 낯설어 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전환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공멸입니다.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소모임이 중요합니다. <리추얼의 힘>(캐스퍼 터 카일, 2021, 마인드빌딩)에도 나오지만 책을 매개로 하거나 기초 예술을 함께 하는 것이 전환의 기폭제, 촉진제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관계를 선악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두고 글을 써보십시오. 자신을 선으로, 타인을 악으로 고착 시켰던 과거의 일방적인 관계를 재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 던져진 존재
우리를 키운 것은 구할이 이야기다
이야기를 바꿔야 미래가 달라진다
*
심청이 아빠에게
공양미 삼백석 영수증을
건네며 말했다
다음엔 아빠가 빠져
'전환학교' 일부
<혼자의 넓이>(이문재, 2021, 창비) 중에서
농사를 하는 참여자 한 분이 마이크를 잡았다. 멀쩡하던 무릎이 아프고 눈이 침침하던 차에 '녹슬었다'라는 시에 위로를 받았단다. 그는, 시인이 우리 몸처럼 고장난 것은 바로 '민주주의'라고 시에서 짚어 말한 이유를 물었다.
시인은 지금의 대의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냐고 반문했다. 민중이 스스로를 통치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할 것인데, 지금 우리는 우리 삶의 필수 요소인 사법체계, 에너지 공급 문제, 심지어 식량 문제에도 스스로의 의견을 투입할 수 없다. 시인은 우리가 민주주의에 예민해지기를 바란다면서 <민중의 이름으로> (이보 모슬리, 2022, 녹색평론사)를 강력 추천했다.
이문재 시인은 젊은 시절에 '전자오락 세대의 상상력'이라는 평을 듣는 작품을 썼다. 뒤늦게 사회에 예민해지며 생태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게 김종철 선생과 그가 출판한 계간지 <녹색평론>은 등대와 같았으리라. 60+기후행동 활동을 비롯해 생태적 상상력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지금의 모습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시 '남녁 사십구재'는 '김종철을 보내며, 김종철들을 맞이하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종철 추도시를 읽은 참여자들은 과연 우리가 '김종철 이후의 김종철들'이 될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봤다.
뜨끔하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환하기를 바란다면, 무엇인가에 간절하다면 우리는 기도를 한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오래된 기도' 연작시를 발표하고 최근 동서고금의 기도시를 모은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이문재 엮음, 2024, 달)를 출판한 시인에게 물었다.
"그것이 참 어려워요. 오래 전, 아이가 아파서 간절한 마음에 무작정 조계사에 들어갔어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나왔지요. 나중에 박완서 선배님이 알려준 가톨릭의 화살기도를 배웠어요. 올해 수경스님이 <기도>(수경스님, 2024, 엘도브)라는 책을 내셨어요.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를 했던 이야기와 함께 이렇게 말씀하셔요. 만사가 기도라고. 행동하고 실천해서 내가 달라지는 간절함이 기도라고.
소로우가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2011, 은행나무)>에서 온전한 삶을 위해서는 자기성찰(고독), 우애(친구방문), 환대(손님), 이렇게 세 가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은 기도가 아니에요. 내 아이와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위해서, 세상과 모든 생명 존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해요."
정담북클럽이 이어지는 동안 무선 마이크가 참여자들 손에서 손으로 이어졌다.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시집을 못 읽고 왔다고 미안해 하기도 하고, 새로운 사회적 제안을 꺼내 놓기도 했다. 시인만이 아니라 참여자 모두가 목요일 저녁의 주인이 된 모습이었다.
시인이 마지막으로 당부한 '시 이어쓰기'가 암송이나 필사보다 시를 깊이 읽는 방법인 까닭도 그것에 있다. 몇 줄이라도 이어쓰기 위해서 시를 여러 관점으로 반복해 읽고 들여다본 독자가 저자로 거듭나면서 시의 주인이 될 것 아닌가. 내 삶에서도 주인으로 살도록 틈틈이 주머니에서 시 거울을 꺼내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정담북클럽은 국립군산대학교 국립대학 육성사업으로 인문도시센터와 이야기그릇담이 함께하고 있다. 이문재 시인은 2024년 10월 24일 인문학창고 정담(군산시 해망로 244-7)에서 여러 시민들과 '문학과 길'에 대해 나누었다.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