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할까?"
출퇴근 전쟁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한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실으며 오늘도 실존적 위기를 느낀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우리의 하루는 '이동'의 연속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이 '이동'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교통 철학자 전현우와 노년의학자 정희원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 책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를 집필했다. 두 사람은 반복되는 출근 전쟁과 거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닌 도시 구조와 정책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지난 18일, 폭우가 쏟아지는 신길역 도보다리에서 전현우 작가를 만났다. 창밖으로는 서울 올림픽대로 위 차량들이 빽빽하게 이어졌다. 그는 자신을 '철도에 미친 자'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한국의 교통 상황과 문제를 언급했다. 인근 카페로 옮겨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두 분이 공통의 주제를 발견하셨나요?
"채널 예스에서 연재를 제안 받고 '저속노화'로 유명한 정희원 선생님과 교류했어요. 두 사람 모두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이동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어요. 정 선생님이 물음을 던졌고 제가 답을 채우는 식으로 작업했어요.
서로 전공이 다르지만 '움직임'이란 키워드와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이동을 중요하게 신경쓰지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했죠. 그래서 '이동'을 주제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이렇게 정 선생님은 신체적인 이동성에, 저는 교통수단의 이동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 현대 사회에서 거대도시로 집중이 심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경제적 구조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어요. '정보화 시대'가 오면서 과거 도시 경제 중심이었던 제조업이 줄어들어 도시 외곽이나 해외로 이전하고 그 빈자리를 고차원적인 생산자 서비스업(법률, 금융, IT 등)이 차지했죠.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였어요. 그 예시로 서울 여의도는 금융과 법률 서비스의 중심지가 되면서 관련 기업과 일자리가 몰렸어요.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를 하거나 재택근무를 하는 등 분산형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대도시가 정보와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면서 도시로의 집중이 더욱 심화됐죠. 이는 대도시가 경제 활동이 중심지가 되어 사람이 계속해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 결과예요. 서로 다른 직종의 사람이 얼굴 보고 모이기 쉽다는 것이 대도시가 가진 큰 이점이죠."
- 거대도시의 과밀화와 교통 혼잡이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심각한 교통 체증으로 출퇴근 시간이 늘어나 도시민은 큰 고충을 느껴요. 이동 시간이 길어지면서 개인 여가시간이 줄어들어 삶의 질이 떨어지죠. 가족이나 주변인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기에 인적 네트워크가 파편화돼서 관계 유지도 어려워져요.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부담돼요. 출퇴근이나 이동에 쏟는 시간이 길어지면 실제로 더 많은 돈을 벌어도 생활비나 시간적 제약 때문에 경제적 여유를 느끼지 못 하게 되는 소위 '노동자 스프레드 스퀴즈 현상'을 심화시키죠. 이 때문에 육아 같은 일상 활동이 어려워져요.
'노동자 스프레드 스퀴즈 현상'이란?(<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 163p) |
정희원 작가가 책 속에서 사용한 현상 용어이다. '스프레드'는 원유를 정제, 가공하여 판매할 때 판매가격과 제조 비용 사이의 이익을 의미하고, '스퀴즈'는 경제적, 지정학적 상황 등으로 원가는 상승하고 판매가격은 감소하여 이익이 줄어든 상황을 뜻한다. 노동자 스프레드 스퀴즈는 경제, 사회 환경의 변화로 노동자가 가족을 형성했을 때 지속가능한 경제적 잉여가 발생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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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통 혼잡과 과밀화로 도시민은 신체적 피로를 느끼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느끼고 삶의 질은 떨어져요. 이는 저출산 문제를 촉발하는 요인이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시의 교통 정책 개선 뿐만 아니라,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구조적 접근이 필요해요."
"단순한 운임 할인보단 근본적인 개선 필요"
- 서울 지하철 9호선처럼 대중교통의 혼잡이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울 지하철 9호선은 늘 승객들로 붐벼서 '지옥철'이라고 불리죠. 승객들은 매일 불편을 겪어요. 그래서 현재 6량인 열차를 8량으로 늘리려는 계획이 자주 논의돼요. 2018년에도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했는데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쉽게 말해 투자하는 돈에 비해 효과가 부족해요. 일반적으로 비용 대비 편익 비율(Benefit-Cost Ratio)이 1이상이면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데요. 이 계획은 그 수치가 0.18에 불과했어요. 이처럼 열차 증편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 그러면 결국 돈이 안 돼서 지옥철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는 건가요?
"꼭 그렇다고만 볼 순 없어요. 그러나 열차를 더 늘려도 추가 요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죠. 해결책은 두 가지예요. 첫째, 비용 편익 비율이 낮더라도 승객들이 심각한 불편을 겪고 있으니 무조건 시행하자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승객들이 추가 요금을 얼마나 부담할 의사가 있는지를 보다 정확히 평가하여 이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겁니다.
이전 조사에서 승객들은 혼잡을 줄이기 위해 약 4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릴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어요. 이 4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할 방법을 찾는다면 혼잡 문제 해결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도 크게 향상될 거예요. 예를 들어, 출근 통행을 업무 외 시간인 비업무통행으로 분류하는 현행 기준을 개선하여 출근 통행의 중요성을 더 반영하면 혼잡 해소를 위한 타당성 비중이 증가할 수 있죠."
- 시간을 단축하려면 GTX를 많이 놓으면 되는 건가요?
"GTX는 10km정도 정차역을 두고 도시와 도시(동탄-서울)를 잇는 게 역할이죠. GTX 최고 속도가 시속 180km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표정속도(정차시간을 포함해 계산한 평균속도)는 시속 100km예요. 무궁화호와 속도가 비슷하죠. 시속 100km도 역간 거리를 20km씩 두어야 나는 속도입니다. 20km면 경기도에선 시 2개 중심지 사이 거리이기 때문에 경기도에서 철도가 시속 100km 내는 건 어려워요. 게다가 승강장이 지하 40~50m에 있고 역간 거리도 길어서 환승 시간이 오래 걸리죠.
이렇게 열차를 타지 않고 소비해야 하는 시간을 저는 '마찰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GTX는 마찰시간이 완행 열차나 급행 열차보다 길어요. 그렇기에 한 30km 정도를 이동해야 GTX가 의미가 있기에 서울 내에선 의미가 없죠. 수원-서울 또는 인천-서울쯤은 되어야 의미가 있고 운임료도 높은 편이죠."
- 국토교통부가 올해 5월 대중교통 15회 이상 이용시 20%환급해주는 K패스 사업을 실시했습니다. 이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순한 운임 할인보단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해요. 자동차 이용 비용을 늘리고 그 재원을 대중교통에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가계 지출 구조를 분석하면 예를 들어 5000만 원 버는 가정은 가계의 10%인 약 500만 원을 자동차 비용에, 1%인 약 100만 원 정도를 대중교통 비용에 사용해요. 대중교통을 비싸서 안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요. 중요한 건 서비스와 품질 문제죠.
대중교통을 개선하기 위해선 '수요 관리'가 필요해요. 도심에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자동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혼잡 통행료'를 도입해야 합니다. '혼잡 통행료'는 도시 중심부로 들어오는 차량에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예요. 런던과 같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이 제도를 활용해요. 차량이 많이 몰리는 지역에 요금을 부과해서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이렇게 얻은 수익은 대중교통 인프라에 재투자할 수 있어요. K패스와 같은 단순 할인 정책보단 시스템을 강화하고, 수요관리 차원으로 승용차 이용을 줄여야 합니다. 줄어든 승용차 도로를 활용해서 버스 전용 차로로 전환할 수 있어요."
- 자동차와 대중교통의 이용 비용 차이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시민들이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걷기 좋은 도시를 구축해야죠. '15분 도시'란 말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는 게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범위가 약 1km, 걸어서 15분이에요. 직장, 병원, 상점, 공원 등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이 몰려 있다면 사람들이 굳이 차를 타고 이동할 필요가 줄어들어요.
15분 도시의 핵심은 전철역이에요. 늘 다니는 동네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로 가기 편해야 다양한 인프라를 누리겠죠. 대중교통을 계속 이용하는 사람들이 유리하도록 판을 짜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서 15분 도시의 핵이 전철역이 돼야 하죠. 도시 핵심 시설을 밀집시키고 걷기 공간을 연결시키는 수단이 철도입니다. 도시 전체로 걷기 공간을 확장시키는 수단은 승용차보단 철도와 버스라는 경험을 시민에게 선사해야 합니다."
- 철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보행 환경 개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보행자를 단순한 '통행인'으로 여기지 말고 그들의 보행권을 보장해야 해요. 철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선 단순 교통 인프라 확장만이 아닌 보행자가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하도록 연결성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해요.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보행로를 충분히 확보하고, 기존 보행 경로가 끊기지 않아야 하죠. 대규모 아파트에서 단지내 통행을 주민만 이용할 수 있게 막는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보행자 접근성을 저해해요. 보행로를 개방해 이동 경로를 단축하는 조치가 필요해요.
대규모 빌딩 같은 상업용 건물에서도 보행로를 차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보행자가 이동 경로에 불편함을 느끼면면 짧은 거리라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밖에 없거든요. 건물 사이의 통행로를 확보해 보행자가 효율적으로 철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통로를 개방하면 상권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죠. 따라서 철도역과 주변 상업 지역, 주거 지역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크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전동 킥보드 같은 전동 모빌리티가 보행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최근 전동 킥보드 같은 전동 모빌리티가 급격히 늘었지만 인프라는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어요. 현재 전동 킥보드는 보행자나 차량과 같은 공간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동 경로와 주차 문제가 심각하죠. 이를 해결하려면 전용 주행로를 만들고 보행자가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해요. 특히 주차 거치대가 부족해 킥보드가 아무 곳에나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주차 공간을 마련해야 하죠. 보행 환경과 이동 인프라를 함께 정비해야 전동 모빌리티 이용이 더 편리해질 거예요."
- 책에선 '깍지형 도시'가 조화로운 도시라고 말씀하셨어요. 코펜하겐을 예시로 들어주셨는데요. 코펜하겐은 자전거 친화 도시로 알려졌습니다. 서울도 자전거를 많이 활용하는 정책도 효과적일까요?
"코펜하겐과 서울시의 기후와 지형, 면적이 달라 서울을 자전거 친화 도시로 만드는 건 어려워요. 코펜하겐은 반지름 5km, 서울은 15km입니다. 한국은 지형이 산지로 이루어졌고 여름과 겨울의 비중이 많아 자전거가 주력 교통수단이 될 순 없어요.
대신 서울 전체가 아닌 구(區) 단위로 적용할 수 있죠. 구 한 개는 반지름 약 3km로 코펜하겐 크기와 비슷합니다. 송파구, 영등포구, 마포구는 지형이 평지라서 자전거 사업을 활용해 볼만해요. 실제로 이 지역 구민은 자전거를 많이 이용해요. 반대로 산이 많은 관악구에선 마을버스가 그 역할을 대신하겠죠."
- 한국의 대중교통 서비스 품질을 어떻게 높여야 할까요?
"운임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대중교통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을 해소해야죠. 대중교통은 내 시간을 차 운행시간에 맞춰야 해서 불편해요. 눈 앞에서 차 놓치면 짜증 나잖아요. 비수도권에선 운행 시간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망이 붕괴하고 있는 중이고요.
대중교통 배차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시간표를 철저히 관리하면 승객들이 편리해요. 독일과 스위스에선 배차간격을 설정하고 만든 시간표인 탁트(Takt)를 활용하는데, 한국이 이 사례를 참조해서 후속 작업으로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언론에선 '외국인이 서울 지하철의 시스템을 칭송한다'며 '서울 지하철은 다른 나라에 비해 깔끔하다'고 말해요. 첫 번째 책 <거대도시 서울 철도>(워크룸프레스, 2020)에서 전 세계 인구 1000만 이상 도시 50여 개를 분석했는데, 서울 지하철은 B-등급이 나왔어요. 이는 지역과 지역이 끊어져 철도 개발이 어려운 뉴욕, 중국 충칭과 같은 등급입니다."
"교통 불편, 관심 가지고 더 나은 방안 모색해야"
- B-등급은 어느정도 수준인가요? 그 등급이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B-등급은 애매한 수준이에요. 서울은 50개 거대 도시 중 21위를 차지했어요.
철도를 세 종류로 분류해요. 한 도시 시내를 잇는 도시철도, 주변 위성도시를 연계하는 광역철도, 전국을 잇는 전국망 철도. 서울 시내를 연결하는 도시철도는 꽤 괜찮은 편이에요. 그러나 광역철도망, 수도권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망은 어중간한데 고속철도로 대표되는 전국망 역시 최소한의 시설에 구겨넣고 있는 현실이죠."
-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광역철도나 전국망 철도 같은 외곽 노선은 서로 연결하는 노선망을 더 늘려야 해요. 사실 서울 시내는 병목 현상으로 인해 정체가 심각한 상황이죠. 그래서 철도를 단순히 지하로 옮기는 방식은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대신, 고속열차나 GTX 같은 빠른 열차 정도만 지하로 보내고 접근하기 쉬운 지상역을 유지하면서 광역철도 열차를 늘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면 서울과 외곽을 오가는 이동이 더욱 편리해질 것입니다."
- <왜 우리는 매일 거대도시로 향하는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해요. 단순히 교통 문제에 불만만 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힘이 필요해요. 그 힘은 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에요. 그런데 그 관심 자체가 없으면 사실 변화는 힘들거든요. 교통이 내 삶을 피곤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준다고 생각하면 이것을 덜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지 같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어요."